9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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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1.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2.

영적인 민감성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성숙한 리더십과 사랑으로 모든 성도를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하소서

3.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행10:19-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행10:19-20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그들을 보내었으니라” 하였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을 성령께서 보내셨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고넬료의 명령을 받고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이었지만, 이 일의 주관자는 성령님이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성령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인류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권세가 돈을 가진 사람들이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의심이 많았더라면 아까 본 환상이 뭡니까, 무슨 뜻입니까, 이 사람들이 나를 찾은 것과 환상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좀 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분석적 이해는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으니라 하시니 두 말하지 않고 따라가게 됩니다.

사실 세상에 반론 없는 이론은 없습니다. 의심하기로 들면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든 저렇게 생각하든 의심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에 의심할 것 없다고 생각했더라면, 잠시라도 확신을 가졌다면 그것은 의지적인 것이지 논리적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베드로는 의심을 몰아냈습니다. 신앙적 의지로 의심을 극복했습니다. 지적인 욕구를 잠재시키고 맙니다. 더는 알 필요 없습니다. 오직 주신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그리함으로 의심이 고개를 쳐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점을 본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은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한번 계시 받았다고 해서 누구처럼 이거 좀 부족한데요, 계시 한번 더 봐야겠는데요, 내일 아침에 한번 더 보여주시죠, 내 의심이 사라질 때까지 이런 사건 봐야겠고 저런 계시 봐야겠고…… 이렇게 저렇게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면 그러다가 세상 다 가고 맙니다. 아무 일도 못합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감당할 때 주님께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면서도 의심이 생길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이 주의 일을 감당할 때 가장 큰 적은 의심입니다. 의심이 생기면 순종하기 어렵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지체됩니다.

베드로는 성령님의 음성 앞에 모든 전통과 모든 문화와 선입견을 내려놓고 순종을 했습니다. 그가 환상을 볼 때는 포기하지 못했지만 성령님의 음성을 듣자 포기했습니다. 그 결과 이방 선교의 문이 열리고 이 일에 귀하게 쓰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순종하는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했으며, 고넬료는 환상 가운데 말씀하신 주님의 명령을 온전히 따랐으며, 그의 종들도 주인의 명령을 잘 지켰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더 이상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의심을 어떻게 극복했습니까?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 이 명령에 순종함으로 베드로는 의심을 극복하고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행10:21-22

그 사람들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으로 고넬료의 하인 둘과 부하 한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종들의 신분입니다. 그런데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좋은 주인을 모시고 있다는 자부심입니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자기 주인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우리 주인은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는 사람입니다. 저희가 이런 분을 모시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상관이 다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상관을 모시고 사십시오. 그런 상관이 되십시오. 그런 남편이 되십시오. 그런 아내가 되십시오. 그럴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이 행복한 공간이 됩니다. 고생이라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의미가 있다면 내가 죽기도 합니다. 포기하고 손해도 봅니다. 언제 시간 맞추어 일합니까? 내가 좋으면 밤을 새지요. 너무 좋으니까요? 우리가 주님을 전하고 살 때 이 종 같은 마음으로 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성령님의 음성이 순종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행10:23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따뜻하게 맞이했습니다. 구약 시대부터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유대인의 중요한 관습 중에 하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맞아들인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방인이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집으로 들인 것은 정말 파격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행10:28

그리고 베드로가 그들을 집으로 들여 하룻밤을 머물게 한 것은 먼 길을 온 그들을 쉬게 하고, 또 다시 가이사랴로 돌아가야 하는 그들을 진심으로 배려한 행동입니다. 베드로는 마지못해 형식적으로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정성을 다해 진심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이튿날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과 함께 길을 나섰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함께 가이사랴 행을 선택한 일행이 더 있었습니다. 욥바에서 온 형제들입니다. 베드로가 욥바에서 온 형제들과 동행한 것은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다른 형제들에게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직 유대적인 율법 의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를 오해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의 행위가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의 명령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임을 증언해 줄 형제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선을 행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오해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당한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마음으로는 덕을 세우거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지혜롭게 행동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자들이 가버나움에서 성전세를 내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입니다. 성전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데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유대인 남자들이 일 년에 한 번씩 반 세겔씩 내는 돈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성전세를 내실 필요가 전혀 없으셨지만 예수님께서는 마17:27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마17:27

예수님께서는 성전세를 걷는 자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성전세를 내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이 윤리는 자기중심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아무리 정의롭고 선한 일을 한다고 할지라도 그 정의로움과 선함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하게 만들고 실족하게 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죄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전8:9-12

선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오해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강한 자보다 약한 자에게, 부요한 자보다 가난한 자에게 시선을 두고 말하고 행동할 때,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향기가 흘러나가게 됩니다. 우리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마음에 감동을 받고 교회 문을 두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 사역은 함께 하는 사역입니다. 위대한 전도자 바울도 선교 여행을 할 때 혼자 가지 않았습니다. 마가, 바나바, 실라와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전도 여행을 보내실 때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주님의 일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함께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사장 가야바의 뜰에서 심문 당하실 때 베드로는 혼자였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다 도망가서 믿음으로 하나 되지 못했을 때, 베드로는 그만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하와가 홀로 있을 때 뱀이 찾아와서 하와를 유혹했고 하와는 그만 그 꾐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세벨의 위협을 받은 엘리야도 사환과 함께 도망하다가 혼자 있을 때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하며 좌절과 실의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4:12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하나되어 전진할 때 위대한 승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녀들의 삶에는 우연이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하신 뜻대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함으로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 가십시오.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믿음으로 가득 채울 때 의심이 들어올 자리가 없게 됩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만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축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승리의 길은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혼자 갈 수도 없는 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합니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고, 기도해 주고, 도와주면서 함께 가는 길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함께 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강한 믿음으로 주의 길을 가는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크신 능력이 부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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