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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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 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능력의 종이 되게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더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사역 환경의 위기 속에서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그들의 수고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대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행10:10-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종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더라"

행10:10-12

9절에 보면 베드로는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갔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붕은 평평해서 채소를 말리거나 기도하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낮은 매우 덥지만 습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지붕에 차양 막을 쳐 놓고 그 아래 있으면 집 안에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시원했을 것입니다. 그 시간이 제구시 정오였으니 베드로는 배가 고팠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기도하는 베드로에게 음식 냄새가 풍겼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하늘 문이 열리고 네 귀를 맨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보자기 안에는 여러 종류의 짐승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 안에 있던 짐승들이 이상하게도 성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부정하고 속된 짐승들만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육지의 모든 짐승 중 너희가 먹을 만한 생물은 이러하니 모든 짐승 중 굽이 갈라져 쪽발이 되고 새김질하는 것은 너희가 먹되 새김질하는 것이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러하니 낙타는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사반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토끼도 새김질은 하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므로 너희에게 부정하고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레11:1-8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하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음성이 들렸다는 것입니다.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 하거늘"

행10:13

베드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이런 것들을 한번 만졌다 하면 옷도 빨아야 되고, 다시 깨끗해지려면 여러 가지복잡한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보면 자세히 나옵니다. 그런데 그걸 잡아먹으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자기 귀를 의심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자기 귀를 의심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꼭 내가 해야 합니까? 거기에 꼭 내가 가야 합니까?’ 하고 질문하지만 하나님은 자꾸 가라고 하십니다.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남의 얘기로 들으면 좋습니다. 그런데 내 얘기가 되면 심각합니다. 신앙은 그런 것입니다. 신앙은 어떻게 보면 자기 존재의 근거와 기초 뿌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정면으로, 일대일로 대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심각한 상황에 들어가는 것이 신앙인 것입니다.

그 상황에 들어가지 않으면 신앙이 아닙니다. 신앙은 온실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의 터전과 그라운드를 그냥 놓아두고 하나님을 믿는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앙의 입문도 아닙니다.

신앙이란 바로 이렇게 고향을 떠나는, 자기 근거를 뿌리 채 흔들어 놓는 경험 끝에 오는 것입니다. 내 인생을 다시 근본적으로 시작할 수 밖에 없는 이런 절대 위기 앞에 서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러한 위기 앞에서 하나님이 과연 하나님이신가, 거기서 하나님이 과연 나를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분인가, 변함이 없으신 분인가, 식언하지 않으시는 분인가, 당신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인가 하는 것들이 체험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북에서 피난 나온 사람들이 예수를 잘 믿습니다. 아니, 상황적으로 잘 믿게 되어 있습니다. 피난도 안 가고 잘 믿는 분들은 아주 대단한 분들입니다. 숟가락 하나 들고 여기 가서 밥을 먹고, 저기 가서 잡을 자야 하는 처지라야 예수를 잘 믿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가 막혔습니다. 그래서 거절을 합니다. 베드로는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14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대"

행10:14

베드로는 가끔 이런 엉뚱한 발언을 합니다. 굉장한 믿음의 발언을 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섭섭하게 하는 일도 가끔 합니다.

레위기 11:1 이하에 보면 지상의 동물들 가운데 먹어서는 안되는 동물들이 열거되어 있습니다. 육지의 짐승 중에 낙타, 사반, 토끼, 돼지는 먹으면 안됩니다. 바다의 고기 가운데는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것을 먹으면 안됩니다. 하늘에 새 중에 독수리, 솔개, 어응, 매 종류, 까마귀 종류, 타조, 다호마스, 갈매기, 매 종류, 올빼미, 부엉이 같은 것은 먹으면 안됩니다. 곤충 중에는 날개가 있고 기어 다니는 것은 먹지 말라고 했고, 땅에 사는 것 중에 쪽제비, 쥐, 도마뱀 종류, 철면석척 등은 먹으면 안된다고 했습니다. 그 시체도 만지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 율법입니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겠지만 레위기를 공부해 보면 먹지 말라고 한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한 음식들을,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으라니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인들 베드로가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여기에 갈등이 있습니다. 율법은 누구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기록된 율법에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것을 이제 와서 잡아먹으라고 하니 얼마나 갈등이 많았겠습니까.

여기에 나타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여기 나오는 부정한 음식들은 바로 이방인들을 의미합니다. 부정한 음식은 구원받을 수 없는 이방인들을, 거룩한 음식은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걸 먹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려져 가니라"

행10:15-16

베드로가 한 번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또 생깁니다. 베드로는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베드로는 “내가 속되고 깨끗하지 않은 물건은 먹어본 일도 없고 먹을 수도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더럽고 부정한 짐승들을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을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써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깨끗하게 했는데 왜 네가 못 먹겠다고 그러냐는 것입니다. 세 번씩이나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방인이나 이스라엘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이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막힌 담을 허시고, 휘장을 찢어버리시고, 둘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이 환상의 의미는 너희들이 짐승처럼 취급하고, 구원이 없다고 생각하는 그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복음이 있다, 구원의 복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을 만한 사람들입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구원했냐 하면 요즘은 유대인이 이방인 같고, 우리가 꼭 이스라엘 같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완벽하게 구원하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전통과 문화라는 것입니다.

전통과 문화는 그 자체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로 말미암아 생긴 유산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하나의 진리가 그 시대에서 문화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진리가 그 시대에 전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통과 문화는 언제나 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재해석되고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전통 안에 하나님을 가두어 두려고 합니다. 문화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데, 인간은 자기의 문화 안에 하나님을 제한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슨 불교 전통이니 무당 전통이니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모든 전통으로 하나님을 억압하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우상입니다.

우리는 전통을 존중합니다. 문화적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화나 전통은 상대적 가치이지 절대적 가치가 아닙니다. 전통과 문화는 자꾸 재해석되고, 변화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조 되어야 하고, 진리에 의해서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화가 전통은 우리를 억압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유교 문화를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 왔던 전통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나라 전통 문화라고 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제한할 수는 없습니다.

이 문제를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제일 잘 믿는 사람으로 자처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 바리새인의 전통, 유대인의 전통으로 예수님을 해석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안식일 문제를 놓고 논쟁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셨습니다. 사람들은 그 병이 치유되는 데는 관심이 없고, 왜 안식일에 병을 고쳤느냐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하나님의 율법을 전부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안식일에 바느질을 두 번 하면 죄가 안되고 세 번하면 노동이니까 죄가 되고, 몇 Km까지 걸어가면 죄가 안되고, 몇 Km를 넘으면 죄가 되고, 글자를 두자 읽으면 죄가 안되고, 세 자 읽으면 죄가 되고, 이렇게 해서 율법을 규칙으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만들어 놓은 규칙을 지켜야만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해석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런 식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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