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늘 겸손한 자세로 나라를 이끌어가며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리더가 되게 하소서
이 땅의 위정자들이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며 이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사라지게하시고 소통과 화합을 통해 분열된 국론이 하나 되게 하소서
이튿날 그들이 길을 가다가 그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그 시각은 제 육 시더라 그가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들이 준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행10:9-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하나님은 먼저 환상 중에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 되었으니 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래서 고넬료는 집안 하인 둘과 부하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이 일을 다 이르고 욥바로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은 고넬료에게만 환상을 보여주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에게도 아주 적절한 시기에, 아주 정확한 시간에 나타나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환상을 좀 더 살펴보기 전에 이 말씀에서 배울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기도하는 사람에게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뜻을 게시하려고 할 때 우리가 기도하는 시간에 오셔서 계시하십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는 그 시간에 하나님이 역사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베드로를 생각할 때 굉장히 활동을 많이 하고, 기적과 능력이 있고, 설교도 잘하고, 아주 담대한 사람을 상상합니다.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죽은 사람을 살린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정말 용감하고 위대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실 베드로는 능력의 사람 이전에 기도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행3장을 보면 제 구시에 그는 성전에 올라가서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려고 성전에 올라가다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인 한 사람을 만나서 그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베드로가 하는 설교 한 번에 3,000명이 돌아왔고, 기적이 일어났지만 사실 그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그는 정오에, 하나님과 약속한 그 시간에 지붕에 올라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는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여러 가지 많은 기적과 기사를 행하셨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나병환자를 고치셨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셨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셨고, 귀신을 쫓아 주셨고, 노도 광풍을 말씀 한 마디로 잠잠하게 하셨고, 물 위를 걸으셨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이런 위대한 사역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좀 더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예수님의 그 위대한 사역 뒤에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대면하는 경건의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 의해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올 때, 하늘에서 문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성인 남자 5,000명을 먹이고도 12 바구니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고 난 다음에 사람들은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하셨습니다. 심지어 제자들도 다 보내고 나서 기도하시려고 홀로 산으로 가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밤새도록 기도하셨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그의 생애에 가장 큰 위기인 십자가를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그것도 제자들과 떨어져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일생에 가장 큰 위기의 순간 앞에서 갈등했을 때에도 ‘아버지, 이 잔을 꼭 내가 마셔야 합니까? 하는 그 갈등하는 심정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여러 차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사역을 많이 했습니다만 그 이면에서 기도를 많이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16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기도처를 찾으러 가다가 루디아 라는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가 처음부터 빌립보 교회를 세우려고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러 갔다가 루디아를 만나게 되었고, 그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집에서 예배를 드린 것이 빌립보 교회의 시초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데살로니가에 가서도 자기의 규례대로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그는 그저 회당이 있으면, 성경을 가르칠 만한 공간이 있으면, 누구든지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가 3주 동안 한 곳에 머물면서 성경을 가르치다가 생겨난 것이 데살로니가 교회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언제나 그 내면 생활 속에 기도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을 하십니다. 능력 있는 사람과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아무리 능력이 있고, 돈이 있고, 열심이 있고, 헌신했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는 사람과는 하나님이 같이 일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과 일하십니다.
사도행전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의 사람들은 기도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기도하는 사람인 것을 믿습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내면적인 기도 생활을 갖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말한다면 그 기준이 기도에 있을 것입니다. 얼마나 기도하느냐가 내 신앙의 성공과 실패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참 재미있는 분이십니다. 꼭 기도하는 그 시간을 쫓아다니면서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이 기도하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이 말씀하실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읽지 않고 있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자기의 마음을 계시해 주실 수가 있겠습니까? 성경을 계속 읽고 있어야 하나님이 어떤 말씀을 통해 내게 말씀하시지 않겠습니까? 기도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음성을 들려주시고 환상을 보여주시기 않겠습니까?
두 번째 여기서 배우는 교훈은 하나님은 언제나 적절한 때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분 내키는 대로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에 굉장히 예민하십니다. 시간에는 사람의 시간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땅의 시간이 있고, 하늘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시간표에 의해 움직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계획을 따라 일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한데 자기 시간표에 좀 맞추어 달라고 떼를 씁니다. “하나님, 이때요, 이때 꼭 응답하여 주세요.”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시지 않으면 응답이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응답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때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인간은 벌써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실망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아무 때나 오신 것이 아닙니다. ‘때가 차매’ 여인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 나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모든 예언이 성취되기까지 시간을 재고 계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 때가 죽지 않습니다.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꼭 죽을 때가 있습니다. 병 들었다고 일찍 죽는 것도 아니고, 교통사고 났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부도 났다고 망하는 것도 아닙니다. 때가 되면 죽는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열심히 사십시오. 죽고 싶어도 죽음이 나를 피해 갑니다. 그렇게 함부로 죽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 인생은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 성령을 체험한 사람들은 이 시간을 의식합니다. ‘내가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구나. 지금은 구원의 날이구나.’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 믿고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지금이 때입니다. 이 시간을 잡으십시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성에 가까이 갔을 그때 하나님은 절묘하게 베드로의 기도 시간을 이용해서 나타나셨습니다. 이게 다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연처럼 보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시간을 계산하고 계셨고 일을 계획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섭리라고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묵상을 하다가, 성경 공부를 하다가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하여 나를 변화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그 말씀이 내 영혼에 들어와서 나를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올 때 더러운 귀신이 나가기도 하고, 병이 치료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말씀이 내게 살아서 역사하기도 합니다. 성경을 읽다가 분노를 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때는 친히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십니다. 어느 날 한 순간에 설명할 수 없는 어떤 특별한 감동을 받습니다. 성령 안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환상을 보여 주시고 하시고, 어떤 때는 환경을 이용하기도 하십니다. 어떤 일이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안되는 것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런 일에는 다 어떤 뜻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연히 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환경과 역경을 통하여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더불 체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양쪽에서 동시에 확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다가 들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환경을 통해서 확인됩니다. 하나님이 고넬료에게만 환상을 주셨다면 베드로가 얼마나 당황했겠습니까? 반대로 베드로가 아무 예고도 없이 고넬료의 집에 찾아가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구원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라고 했다면 고넬료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은 고넬료에게 환상을 보여주시고, 베드로에게도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더블 체킹 하신 것입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할 때 이 본문에 나타나는 두 가지 원칙을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표현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이 일하실 때는 언제나 양면 작전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쪽에만 계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다른 쪽의 응답을 통해 확인시켜 주십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불완전한 이성과 우리의 불완전한 느낌을 보완해 주시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