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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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1.

펜데믹으로 인해 위축된 선교지의 현장을 속히 회복하여 주시고 폭발적인 복음 증거 사역이 일어나게 하소서

2.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3.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모든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행9:32-3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행9:32

사도행전의 맥락을 보면 전반부가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초대교회 이야기이고, 후반부인 13장으로부터는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행8:26-9:31까지입니다. 이렇게 보면 행8:26-9:31까지의 내용은 베드로와 상관이 없는 삽입된 사건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즉 행8:26-40까지는 빌립이 핍박을 받아서 예루살렘을 떠나 사마리아와 유대 지방을 돌아다니면서 전도하는 중에 에디오피아 내시를 전도하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 행9:1-31까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러 다메섹까지 갔던 사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을 위한 사도로 변화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두 사건이 여기에 삽입되었는데, 왜 누가는 베드로의 이야기를 하다가 도중에 빌립과 사울의 이야기를 개입시켰을까요? 한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 그것은 빌립의 사건이나 사울의 사건이나 베드로의 사건이 모두 이방인을 향하여 복음을 문을 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절묘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복음이 이방인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전통적으로, 역사적으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실은 그들도 그러한 일이 자기들을 통하여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셔서 빌립을 통하여, 사울을 통하여, 베드로를 통하여 지금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문을 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리고 환경을 사용하십니다. 누가는 이러한 이야기를 중간에 삽입하고 나서 다시 베드로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냅니다. 그들이 사마리아로 가서 성령 받기를 기도하고 안수하니 그들에게도 성령이 임합니다. 두 사도가 사마리아 사람들을 격려하고 도와준 이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마리아 여러 촌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8:25을

"두 사도가 주의 말씀을 증언하여 말한 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새 사마리아인의 여러 마을에서 복음을 전파하니라"

행8:25

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마리아 여러 마을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파했는데, 바로 그때 그들은 사마리아 땅과 유대 땅 중간쯤 되는, 해변에 가까운 룻다라는 지역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에게서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데 됩니다.

그것은 베드로가 흩어진 성도들을 심방하고 도와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이미 여러 곳에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순식간에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갈릴리 지방으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 공부했던 행9:31절이 그것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행9:31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아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미 룻다와 사론과 욥바에도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간 것을 보면 분명히 다메섹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그 후 아라비아에까지 간 것을 보면 거기에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은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핍박 때문에 더 힘 있게 멀리 전파되었습니다. 사단은 사울을 앞세워서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면 복음을 전하던 수많은 제자들이 벙어리가 될 것이고, 교회도 문을 닫을 것이라고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핍박으로 복음은 더 빨리 사마리아, 갈릴리 그리고 다메섹까지 번져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어느 나라에서나 핍박이 교회 부흥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불똥과 같은 것입니다. 불이 폭발하니까 그 불똥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더니 그 불똥에 성령의 불이 또 붙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복음은, 예수의 복음은, 성령의 복음은, 십자가의 복음은, 부활의 복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마치 잡초가 번식하듯이, 불똥이 튀듯이 역사하는 것입니다. 불똥이 튀어나가 떨어지기만 하면 그것은 또 하나의 불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이 복음이 물이 흐르듯이 흐를 수 있는 곳까지 계속 흘러갑니다. 국적과 인종과 문화와 전통을 초월하여 이렇게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핍박을 부정적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당하는 작은 핍박일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동남풍이 불면 불수록 가시밭의 백합화는, 가시에 찔린 백합화는 그 향기를 더 멀리 날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확신이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 중에 핍박 당하는 형제 자매가 있으면 격려하고 기도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사도들은 흩어진 성도들을 심방하러 다녔습니다. 사도행전은 어떻게 보면 심방의 책입니다. 1차 전도, 2차 전도, 3차 전도 모두 다 심방의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여러 통 썼습니다. 그것이 신약입니다. 편지를 왜 썼습니까? 흩어진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마귀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쓴 것입니다. 그들은 도와주기 위한 일종의 심방편지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들은 연약한 형제들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정말 그들이 지금 기도를 잘하고 있는지, 겉으로는 예수를 잘 믿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집을 떠난 양처럼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홀로 울고 외로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앙을 다 까먹어 버린 것은 아닌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들을 찾아다니면서 다시 믿음을 굳건하게 하고, 타협된 믿음을 다시 순수하게 만드는 그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의 특징은 심방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려면 지도자와 지속적으로 만나 교제하는 일을 등한히 하거나 피하면 안됩니다. 요즘 아무 간섭 받지 않고 교회를 다니기 원하는 사람들이 자꾸 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가 교역자의 전화나 방문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본인을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양떼들은 목자와 자주 접촉해야 안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심방을 하다가 중풍병자를 만나게 됩니다. 8년 동안이나, 자기 스스로 옷을 입을 수 없고, 먹을 수 없고, 화장실을 갈 수가 없어서 누군가에 의해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도 내려갔더니 거기서 애니아라 하는 사람을 만나매 그는 중풍병으로 침상 위에 누운 지 여덟 해라"

행9:32-33

베드로가 중풍병자를 만나러 간 것은 아닙니다. 심방을 하다 보니까 이런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로 도와야 할 사람들, 위로를 해 주어야 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다 훌륭해 보이고, 문제가 없어 보여도, 그 영혼에 깊은 고독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심방을 하다가, 교회를 돌보다가 바로 8년 된 한 중풍병자의 가정을 심방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 대 곧 일어나니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행9:34-35

우리는 여기서 베드로가 이 중풍병자를 주님의 능력으로 일으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성도들을 돌보다 보면 기적들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그런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 8년된 중풍병자를 고쳐 주었는데, 여기 우리가 몇 가지 주의하면서 관찰할 부분들이 있습니다.

1이 애니아를 낫게 하신 분은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이었다는 점입니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을 시작합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신다”

이때 베드로는 어떤 환상을 보았거나,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시간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고쳐 주신다는 성령님의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베드로가 그 8년 된 중풍병자를 보는 순간 예수님께서 고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음성을 들었는지, 환상을 보았는지, 어떤 감동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중풍병자를 고치리라는 분명한 주님의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2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이런 확신을 받았을 때, 그 사실을 그대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데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내 인간적인 신념이나 철학이나 지식대로 행동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건 자기 생각입니다. 자기 경험에 불과한 것입니다.

참 믿음은 기록된 성경의 말씀에 근거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예수님께서 오늘 내게 해 주시는 그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믿음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존이, 현존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셨을지라도 우리는 순종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강력한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지금 일어나게 하라” 하셨는데도 “예수님 어떻게 8년된 중풍병자가 일어날 수 있습니까?” 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성적으로,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을 듣는 귀가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많고, 자기 말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기도할 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깊은 감동에 사로잡힐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그것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의 깊은 감동을 받고서 어떤 일을 해야겠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고 나면 끝입니다. 다 잊어버립니다.

성령이 말씀하실 때, 그것을 믿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이성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것이 현실적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없어 보여도, 그 일이 너무나 힘들어 보일지라도 순종하십시오. 내 형편을 생각하고, 내 직장과 가정을 생각해 보고, 환경을 고려하면 그런 일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애니아는 즉시 일어났습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어떻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이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시 일어났습니다.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이 사실을 목격하고 나서 어떤 말을 했으며, 어떻게 되었습니까?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행9:35

베드로가 지금 8년 동안이나 중풍병으로 누워있던 애니아를 일으켰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다 베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었는데, 오늘 이 말씀을 보면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오니라 했습니다. 이것이 참된 기적입니다. 이것이 참된 기적의 열매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신 것마저도 그 영광을 자기가 가로챕니다. 목사에게 영광 돌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에게 영광 돌리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람에게 영광을 돌리면 머지않아서 망하게 됩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그 신앙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8년 된 중풍병자 애니아의 기적은 하나님의 영광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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