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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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1.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가게 하소서

2.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3.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행9:27-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행9:27

사울에게는 바나바가 얼마나 고마운 사람이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의심합니다. 거리를 두고 자기를 관망하고 있었을 때 바나바가 바울을 사도들에게 데리고 가서 추천해 줍니다.

교회 안에서나 사회에서 누구를 추천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서로 신뢰하기가 어렵고 겉모양만 번지르하게 꾸미기를 좋아하는 세상에서는 더더욱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을 수 있고 능력이 있고 인품이 갖추어진 사람을 추천하려면 바나바처럼 영적으로 사람을 분별하는 눈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바나바는 영적으로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못 보았으나 바나바는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의심했습니다. 그러나 바나바는 사울에게 영적인 신뢰가 생겼습니다. 사울의 회심이나 체험이 사실이고 진실이라는 점을 그는 누구보다도 먼저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람을 의심하게 되는 것은 너무나 많이 속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잘해 주었다가 돈을 뺏기고, 잘해 주었다가 배신을 당하고, 잘해 주었다가 큰 봉변을 당하는 일을 겪어 보았기 때문에 이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사람을 믿는 것이 굉장히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바나바의 이런 통찰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하나 바나바에게서 발견하는 것은 화해자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명히 옳은 줄 알면서도 손해를 볼 경우에는 행동을 하지 못합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손해보지 않는 안전지대에 있으면서 예수를 믿습니다. 자기 시간이 뺏기지 않을 것, 자기 사생활이 간섭받지 않을 것, 존경을 받을 수 있을 것 등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정말 여러분이 진정한 그리스도의 사람인가는 여러분이 얼마나 손해를 보았느냐로 결정됩니다. 시간에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가, 재정에 얼마나 손해를 보았느냐, 내 인격에 얼마나 손해를 보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너무나 좋아서 그런 것들을 기쁘게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손해나고 뒷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은 옳은 줄 알면서도 하지를 못합니다.

바나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그는 오해를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뛰어들어서 사울을 변호해 주었습니다. 교회에는 사울 같은 사람이 아니라 바나바와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선교지에는 능력있고 위대한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나바와 같은 온유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는 큰일을 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을 격려하고 세운사람입니다. 바나바는 사울과 마가를 훌륭한 주의 일꾼으로 세웠습니다. 그 사람이 정말 선교사인 것입니다.

대개 선교지에 가면 좋은 말로 해서 개성이 강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선교지까지 갔겠습니까? 남의 말을 잘 안 듣습니다. 자기 일은 잘합니다. 그러나 남과 함께하는 일에는 손을 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일하는 것보다는 인간관계가 더 어렵습니다. 서로 섬기고, 서로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바나바를 보면서 제 마음이 얼마나 따듯해 졌는지 모릅니다. 바나바가 참 좋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에서는 아나니아의 도움을 받게 해 주셨고, 예루살렘에서는 바나바의 도움을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혼자 일하게 하지 않으시고 다른 사람들과 동역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과신한 나머지 독불장군처럼 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하고, 모든 일을 혼자 힘으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사랑과 신뢰로 협력하기를 원하십니다.

사울이 기독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아나니아와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나 혼자 잘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섬기면서 아름다운 동역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행9:28-29

사울은 이렇게 바나바의 도움을 받아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축복을 갖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격려하고 인정해 주고 도와줄 때 사람은 꽃을 피우게 됩니다. 그때 그가 힘 있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제 그가 받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히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도를 할 때에 담대히 전해야 합니다. 믿고 안 믿는 것은 우리 책임이 아닙니다. 우리 책임은 담대히 전하는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

헬라파 유대인들은 외국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사울이 헬라어를 잘 하기 때문에 헬라퍄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할 수 있었습니다.

변론 : 행6:9에서 스데반이 어떤 자들과 변론했다고 했을 때와 똑같은 말입니다.

이때 그 사람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묘합니다. 베드로가 설교하면 사람들이 어찌할꼬 하며 거꾸러지는데, 사울이 전도하면 죽이려고 합니다. 사울은 옛날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했거든요.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가 장차 그 자리에 설 줄 어떻게 알겠습니까? 사울이 복음 증거자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행9:30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이 사울이 더 이상 유대인의 위협 아래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울을 데리고 가이사랴로 함께 가서 사울의 고향인 다소로 피신시켰습니다.

사울을 믿지 않고 배척했던 예루살렘의 제자들이 사울이 죽음을 무릅쓴 전도 활동을 보고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울의 생명을 보호해 주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면서 박해 가운데 서로를 돕고 보호해 주었습니다.

또한 사울은 후에 이 때의 일을 다음과 같이 돌아보았습니다.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행22:17-18

여기서 우리는 사울이 예루살렘을 떠나기로 한 것은 형제가 된 예루살렘 그리스도인들의 도움도 있었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기도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살해의 위협을 피하기 위함이었지만, 내면적으로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한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사울은 교회와 긴밀히 협력할 뿐 아니라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훌륭한 주의 종으로 성장했습니다.

이후 사울은 바나바가 그를 방문하기 전까지 다소에서 몇 년 동안 머물렀습니다. 사울이 다소에서 보낸 시간은 마치 기도 굴에 들어간 것과 같았습니다. 사울은 그곳에서 주님과 홀로 교제하면서 신앙을 더욱 성숙시키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다소에서 출생한 사울은 예루살렘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헬레니즘을 경험했고, 유대주의를 경험했고, 로마를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가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후에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그의 인생이 180도 변화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기쁜 교제를 하기 위하여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다메섹에서 예루살렘으로 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다시 자기가 태어났던 고향 다소로 돌아오게 됩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삶의 장소를 이동하게 됩니다. 한국에서 살다가 라스로 오고, 또 다른 데로 옮깁니다. 여기에 선교의 깊은 비밀이 있습니다. 이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냥 왔다 갔다만 합니다.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냥 왔다 갔다 합니다. 그러나 선교에 뜻을 둔 사람들, 성령을 받은 사람들, 예수를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이 왜 이곳에 나를 보내 주셨을까? 여기에 하나님의 놀랍고 오묘한 신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구나. 여기에서 무슨 일이 생길까?’ 이런 기대와 흥분과 감격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는 자격이 필요합니다. 사울처럼 헬라니즘과 헤브라이즘과 로마 문화를 모두 경험하는 것과 소위 혈통이라는 것도 다 중요합니다. 사실 그런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사울은 바울이 되어서 신약 성경의 1/3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지적인 준비가 안되어 있었더라면 그렇게 많은 편지들을 못 썼을 것입니다. 이런 인간적인 자격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적인 자격이 있습니다.

1주님의 일을 하려면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단순한 지식과 단순한 결정을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보통 세상 학문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학문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인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경험이 없는 사람이 어찌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에 대해 공부는 할 수 있습니다. 설교도 할 수 있습니다. 가르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위해서 죽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이 부분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대한 얘기는 합니다만 예수를 위해서 죽을만큼 헌신되어 있지는 않은 것입니다. 주님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오늘 혹시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 세례도 받고 직분은 있지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격 속에서, 내 삶 속에서 체험하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이것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울처럼 영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영적인 훈련 없이 영적인 일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서울은 성령을 체험하고 아라비아에 가서 3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3년 동안 그가 무엇을 했는지 아무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는 분명히 말씀을 많이 묵상하며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갔을 때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찌할 수 없이 다소로 가서 후에 바나바가 그를 찾기까지 준비하여 기다렸습니다.

은혜를 받았다고 당장 날뛰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다리십시오. 인내로 기다리면서 준비하십시오. 말씀을 많이 묵상하고, 훈련을 받으십시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훈련은 성품이 변하는 훈련입니다. 인격이 변하는 훈련입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하여 하나님은 여러분을 준비시키시고, 준비된 여러분을 귀하게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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