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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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방송 연예 종사자를 위하여

1.

연예인들이 세상의 인기와 명예보다 더 고결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건강한 대중문화가 실현되게 하소서

2.

크리스천 연예인들이 담대히 예배의 현장에 나오게 하시며 방송계에 건강한 믿음의 공동체가 세워지게 하소서

3.

방송 연예계의 우상 숭배와 미신의 관습이 끊어지게 하시고 음란하고 퇴폐적인 죄의 문화들이 방송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소서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행9:2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울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이었습니다. 행9:15의 말씀대로 사울은 “주의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주의 그릇”이었습니다. 그래서 사울은 특이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려고 다메섹에 가던 중 홀연히 하늘로부터 강한 빛을 받아 쓰러지게 됩니다. 바로 그 때에 예수님의 음성을 두 번 듣습니다. 첫 번째 음성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두 번째로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하는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일어나려고 보니 사울은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 후에 사울은 삼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성령님께서 또 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시는데 그 분이 바로 다메섹에 살고 있는 아나니아라는 사람입니다.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동시에 사울을 만나기 위해서 존재했던 사람입니다. 성경에 그 사람이 나타나는 순간은 아주 짧았습니다. 이 만남은 단순한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나니아가 사울을 만난 바로 그 사건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계기와 동기를 부여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삶이 아나니아처럼 숨겨져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삶은 제한되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기만 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의 만남을 통하여 세계를 변화시키는 어떤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사울은 아나니아를 만나서 안수를 받습니다. 그때 성령이 강하게 임하게 되었고, 동시에 그 눈을 가리고 있었던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막고 있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다. 귀를 막고, 눈을 막고, 우리의 마음을 막고, 주님께 가는 것을 막는 것들이 성령의 놀라운 능력으로 전부 다 떨어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음식을 다시 먹고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참 놀라운 일입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이렇게 놀랍고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사울의 생애에 개입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개입된 역사는 새로운 역사입니다. 예수님이 개입된 개인은 새로운 인간이 됩니다. 예수님이 개입된 가정은 변화된 가정이 됩니다. 교회라고 다 교회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주인이 아닌 교회, 예수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 모르는 교회가 있을 수 있습니다. 건물은 있습니다. 사람은 많이 모이나 예수님이 안 보이는 교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교회 안에 예수님이 주인이 되셔서 개입하시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울은 그 자신 안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의 종교, 인생철학, 사회적 소속은 물론이고 남은 생을 통해 걸어가야 할 인생의 여정마저 그 방향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습니다. 그가 얼마나 달라져 버렸는가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행9:20

이렇게 변화받은 사울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변화 받은 후에 즉시 각 회당을 돌아다니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사람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가장 파렴치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울이 자신의 입으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행9:23

여기서 사울을 죽이려고 하는 한 세력이 나타나는 것을 봅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를 만났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이제 그가 핍박자를 만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사울이 핍박자를 만나기 전에 일어난 중요한 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갈1:16-17에 기록된 사건입니다.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오직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갈1:16-17

예수를 믿고 난 사울은 먼저 아라비아로 갑니다. 그리고 아라비아에서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다메섹으로 돌아와서 지금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아라비아로 가 있는 기회와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습니다.

예수를 만난 사건은 그에게 굉장히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보통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엄청난 사건을 재정리하고 해석하고 그리고 이것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바로 그 때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이 그의 안에 오셨을 바로 그 때에 이러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 아라비아로 가려고 할 때 사울은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사실, 부모 형제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해산의 고통을 통하여 나를 세상에 낳아서, 그 때부터 먹이고 재우고 입혀서 이렇게까지 나를 키웠다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부모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중요한 일들은 보통 부모님들이나 또 형제들과 의논해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갑자기 어떤 여자를 데리고 와서 결혼하겠다면 부모가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부모하고 의논하지 않고 사업을 한다든지, 공부를 하러 떠난다든지 했을 때 부모는 상처를 받습니다. 자신들과 의논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부모하고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울을 보면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두 번째 그가 또 거부한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먼저 사도된 자들과도 의논하지 않았다고 쓰여 있습니다. 영적인 일이라면 혈육은 그만둔다 하더라도 이 열두 사도, 예루살렘에서 초대 교회를 일으켰던 그 사도들과 의논을 하고 충고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혈육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12사도들과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결코 교만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교만하거나 고집이 세거나 자기 개성이 강할 때 이렇게 합니다만, 사울의 경우는 자신만만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교만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그는 자기 생애에 그리스도가 개입한 이 엄청난 사건을 자기가 직접 시간을 들여서, 하나님과 일대일로 만나서 그 문제를 확인하고 결정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문제는 사람하고 의논해야 하지만, 어떤 문제, 특히 하나님과 관계된 어떤 문제는 정말 기도하면서, 금식하면서, 사람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직접 하나님께 여쭈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영적인 일들이 있습니다.

사울이 아라비아로 갔는데, 왜 갔으며 그 곳에 가서 무엇을 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거기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연보를 보고 계산해 보면 아라비아에 가 있던 햇수가 한 3년 정도 됩니다.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 기간 동안에 그가 무엇을 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능력을 받아서 사울이 전도하러 그 곳까지 갔다고 말하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 여러 곳을 찾아보면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발견됩니다.

분명한 것은, 사울이 주님과 더 깊은 교제를 하기 위하여, 직접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훈련하기 위하여 그 곳에 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40일 동안 마귀와 싸우기 위하여 광야에 가서 금식하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사울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하여 그런 시간들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대부부의 경우 사람은 은혜를 받으면 즉시 무엇인가 행동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몹시 위험한 일입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일을 보면 기다리지 못하고 뛰어드는 그런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보면 언제나 실패를 합니다. 준비 없이 일을 하면 일한 만큼 손해를 봅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준비가 얼마만큼 되었는가에 따라서 열매가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준비하는 자에게는 놀라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주인의 뜻을 모르고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주인의 뜻을 모르고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일은 많이 했을지라도 주인의 뜻과 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히려 주인에게 해를 끼치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인의 뜻을 생각하기 보다는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낭비되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열매가 없어 보이는 시간,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시간이 우리에게 있지만, 바로 그 시간이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는 시간이요, 물이 포도주가 되는 시간이요, 하나의 알이 새가 되는 그런 시간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사울의 숨겨진 이야기를 통해 우리 개인에게 이렇게 준비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 사명을 받은 사람들은 선교지나 사역지에 나가기 전에 최소한 2-3년 정도는 이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면 아라비아라는 말이 또 한번 나옵니다. 바울 사도는 자유하는 여자와 계집 종 하갈의 이야기를 비유하면서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시내 산이라 함은 모세가 율법을 받았던 바로 그 산입니다. 사울이 아라비아에 갔다면 분명히 그 시내산에 갔을 것이고, 만약 그 곳에 가서 3년 동안 있었다고 한다면 바로 그 곳이 말씀의 학교요, 기도의 학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갈4:25에

갈라디아서의 메시지와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사울은 그 율법의 산에서 율법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성령을 따라 은혜의 자리에 들어가는 체험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사울이 개척한 모든 교회나 편지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보면 이러한 일들이 얼마나 깊이 있게, 다양하게 표현되는지 모릅니다.

사울의 경우를 보면 두 가지가 확실합니다.

첫째 부름 받은 확신입니다. 누가 선교지로 가야 합니까? 누가 사역에 뛰어들어야 합니까? 부름이 확실한 사람이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희미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안 그런 것 같기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부름을 받지 않았는데도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관찰해 보면, 그 사람이 선교사로 간 것은 현실 도피였습니다. 현재 삶이 고통스럽고, 가족 관계라든지 직장 관계라든지 현재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별로 재미가 없을뿐더러 스트레스와 열등감이 많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누가 선교 얘기를 하니까 “아, 이게 내가 갈 길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현실 도피의 수단으로 선교지를 택한 것입니다. 현실 도피의 방법으로 선교사로 헌신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깊은 내면 속에는 열등감이 있고 현실 도피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런 것들이 다 드러납니다. 고난이 오고 핍박이 올 때 결국 이런 것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쓰러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의 경우는 그에게 분명한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너는 이방인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는 부르심입니다.

둘째로, 사울은 부름을 받고 나서 그 부름에 합당한 훈련을 최소한 2-3년 받았습니다.

사울이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바로 일을 했다면 그렇게 위대한 편지들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엄청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울은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고 살 소망까지 끊어지는 비참한 상황에까지 들어갔습니다. 그가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았습니다. 태장을 맞았습니다. 강도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 등 말할 수 없는 위험들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엄청난 시련 속에서 그가 일생을 보냈는데 만약 준비되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울은 이런 엄청난 것들을 다 감당할 수 있도록 준비하기 위해서 아라비아로 갔던 것입니다. 이것이 사울이 바울 되게 하는 아주 결정적이고 중요한 시간이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이 길을 막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는 꼭 가야되겠는데 길이 열리질 않습니다. 다 됐는데 마지막 도장 하나가 안 찍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인이라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더 기다려야 한다. 더 훈련 받아야 한다. 더 준비되어야 한다고 하는 하나님의 사인일 수 있습니다. 준비된 만큼 열매를 맺습니다. 변화된 만큼 열매를 맺습니다. 말씀으로 무장한 만큼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이런 시간을 갖고 나서 사울은 다메섹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여러 날 이라는 것은 계산할 수 없는 날들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날이 지나서 다시 다메섹에 돌아왔을 때 사울을 죽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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