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분열된 한국 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 교회가 기도함으로 영적 위기를 돌파하게 하시고 멈추어버린 전도의 사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행9:19-2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행9:19사울이 그리스도인으로 거듭한 후에 단지 영적으로만 회복된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도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의 일꾼은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적으로도 강건해야 합니다. 만약 사울이 영적으로만 강건하고 육적으로는 쇠약했다면 그 많은 선교 여행과 목회 일정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분별하게 열심을 내다가 건강을 잃어버려서 결국 사역을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영혼 뿐 아니라 육체도 잘 돌보아 건강한 몸으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울은 다메섹의 제자들과 함께 며칠 동안 머물렀습니다. 다메섹에 있던 제자들은 사울이 이전에 지었던 죄와 허물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어 주었습니다. 제자들은 사울을 용서했고 이들은 주님 안에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역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완전히 파괴되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인간관계까지 회복시켜 주십니다. 서로 원수 관계일지라도 그 관계를 회복시켜서 친구가 되게 하고 형제자매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사랑이 있고 용서가 있습니다.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행9:20-21사울에게서 일어난 첫 번째 변화는 무엇입니까?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다메섹에 올때까지만 해도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예루살렘에 끌고 가려고 했던 사람인데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자기가 핍박하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자로 변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이런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불을 통과한 사람, 성령의 불을 통과한 사람,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 변화를 받은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자꾸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 밥을 먹든, 공부를 하든, 잠을 자든, 강의를 하든, 일을 하든, 언제나 그 사람의 머리 속에는 예수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을 얘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충만해져서 그 분이 자신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 안에 충만해야 예수님이 입 밖으로 나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바닥난 상태에 있습니다. 마구 펌프질을 하고 야단법석을 떨어야 겨우 예수 한 마디 합니다. 그게 잘 안 됩니다. 예수님 얘기를 하라고 하거나 전도하라고 하면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할까 말까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포기합니다. 예수님 말하기도 힘들고, 예수님 자랑하기도 힘들어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틈만 나면 예수님 얘기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 사울은 드디어 예수님을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멸하려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그들을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 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행9:21그러나 사울은 유대인들의 이러한 차가운 반응에도 불구하고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행9:22사울은 유대인들의 차가운 반응에 기가 죽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더 적극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했습니다.
사울이 이처럼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님께서 사명만 주신 것이 아니라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함께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시고 그 후에는 우리 힘으로 알아서 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사명을 맡기실 때는 그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만한 힘과 능력도 함께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사울은 누구보다도 많은 능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런 인간적인 능력으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능력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사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롬15:18-19어디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전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곳이 신학교인지 대학교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교회인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불려지는 곳, 예수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이것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신학교에는 예수 이름이 별로 없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쳔 대학교에도 예수 이름이 없습니다. 세미나에서 환경에 대한 얘기는 있고, 사회 정의에 대한 예기는 있고, 민주화에 관한 얘기는 있어도 예수 이야기는 없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계셔야 됩니다. 교회는 많지만 예수 얘기를 안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다른 이야기만 합니다. 그건 교회가 아닙니다. 신학교가 아닙니다. 크리스쳔 대학도 아닙니다. 예수를 말하는 곳, 그 곳이 교회요, 그 곳이 신학교요, 그 곳이 기독교 학교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예수를 말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이 날마다 풍성하게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도 바울의 회심은 특별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흔히 '사도 바울의 회심'이라고들 말합니다. 그가 회개해서 새사람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회심이란 영어로 con- version입니다. 완전히 새로워졌다, 새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회심이라고 합니다마는 어느 모로 생각해보아도 바울 그가 회심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바울 그가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뉘우친 흔적조차 없습니다. 두려운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중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바울의 인간성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바울의 인격을 말해주는 것도 아닙니다. 바울의 회심을 놓고, 바울 한 사람의 그 회심사건을 통해서 바울을 너무 높이 볼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선택한 회심이 아니니 그렇습니다. 그의 인격에 의해서 기독교인이 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공부를 많이 해서 깨달음으로 된 것도 아니요, 인격적인 수양을 하면서 예수를 발견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의 구도자의 자세에서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 포로된 것일 뿐입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보아도 바울은 회심한 일이 없습니다. 회심을 생각한 일도 없습니다. 바울 자신의 회개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회심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신앙을 여러분 자신의 것이라고 믿습니까?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체험을 놓고 보더라도 어쩌면 나는 예수를 안 믿으려고만 했던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에서 자꾸 멀어지려고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될 수 있는 대로 멀리멀리 가고자 하는 못된 성향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셨습니다. 사도 바울만이 그토록 드라마틱한 체험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내 길을 가로막으시고 강제로 붙드셔서 그리스도인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신앙을 지키도록, 그러지 않으면 안되도록 역사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