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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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이단 세력을 물리치기 위하여 기도합니다.

1.

세상과 교회를 어지럽히는 신천지와 이단 세력들의 거짓된 정체를 밝히 드러내사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익한 구원자이심을 모든 사람이 알게 하소서

2.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복음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거짓된 말과 유혹에 성도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말씀의 능력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하소서

3.

교회와 가정을 무너뜨리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는 이단과 사이비 세력, 그들을 조종하는 더러운 세력이 무너지게 하소서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행9:17-1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 (직가라 하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 들어가서 그(사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9:17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16절과 17절 사이에는 휴식 시간이 없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행9:16-17

아나니아가 주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즉시 순종했던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신 그 집, 사울이 머물고 있던 집을 (직가라 하는 거리에 있는 유다 집) 찾아가 안수하여 이르기를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하였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찾아 만날 때에 뭐라고 말합니까? "형제 사울아" 합니다. 첫마디가 그렇습니다. 이 말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이 웬수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제 사울아 - 보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시므로, 주님의 마음으로, 주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대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형제관계입니다. 얼마나 은혜스럽습니까? 있을 수 없는 이야기가 그리스도 안에서 있어지는 것입니다. 신앙적으로, 오직 신앙, 오직 은혜로, 오직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제 사울아"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불러주어라 하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나니아의 마음은 그러했습니다. 왜입니까?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그도 사랑하십니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께서 그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나를 강권적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도 강권적으로 부르십니다. 다 함께 은혜 안에 있기 때문에 처음으로 만난 사람이지마는, 전혀 낯선 사람이지마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예수 믿는 사람을 핍박했던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제 사울아” 하고 따뜻하게 부르는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겉으로 마지못해 순종한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실함으로 순종한 것입니다. 이로써 아나니아가 주님의 참된 제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에 절대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씀 앞에 자신의 모든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고후10:4-5

종교 개혁자 칼빈은 “말씀이 가는 곳까지 가고 말씀이 멈추는 곳에서 멈추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말씀대로만 살면 주님께서 우리 삶을 든든히 붙잡아 주십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을 주셨을 때 망설이거나 의심하면 쓰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한 아나니아를 통하여 사울을 변화시키고 충성된 그릇이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라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 또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본문을 보면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안수했다고 했습니다. 안수하는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은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성령 세례를 받아 성령 충만함이 임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놀라운 법칙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언제나 하나님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성령 사건이 먼저 왔다는 사실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를 믿었다고 할 때에도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성령 받기를 기도하며 안수했더니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것은 고넬료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열두 사람이 되는 제자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이 임한 것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논쟁을 계속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다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살아 계신 그 역사를 여러분의 삶 속에서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예수를 지식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2,000년 전에 계셨던 팔레스타인 땅의 그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의 존재는 사실이었고, 실제였지만, 그 분은 다시 살아나셔서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고, 말씀하시고, 운행하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십니다.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행9:18

우리는 여기서 또 한 가지 사울에게서 독특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니까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졌고 그는 다시 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어나서 그는 무엇을 받았습니까? 세례입니다. 이것은 무슨 세례일까요? 물 세례였습니다.

그러니까 성령 세례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물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성령 세례와 물세례가 같이 올 수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물세례를 먼저 받고 나중에 성령 세례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경우에는 성령 세례가 먼저 왔습니다. 성령의 역사들이 먼저 일어난 것입니다. 고넬료의 경우에도 성령 세례가 먼저였습니다. 베드로가 “누가 능히 물로 세례 줌을 금하리요?”라고 말했던 것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러운 것은 물세례를 받았지만 성령을 깨닫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에는 이런 분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들은 성령의 깊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진리의 깊은 데로 이르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16: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14:26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2-13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이런 부분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무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었지만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오늘 우리 시대에 말씀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한 여러분의 주님으로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세례가 사울에게 먼저 임했고 그 후에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졌습니다. 이것이 떨어지고 나니까 사울은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의 안수를 받은 사울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지고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육신의 눈과 함께 영적인 눈이 열린 사울은 자리에서 일어나 세례를 받았습니다. 사울은 이제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릇된 신념과 야망이 아니라, 자신을 구원하신 주님의 은혜로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라는 찬송가 288장의 가사처럼 사울의 눈은 이제 주님만 향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눈을 뜨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는 불신앙과 죄악의 비늘이 벗겨져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다 보면 복음을 비웃는 사람들을 자주 만납니다. 우주여행이 멀지 않는 이 시대에 천국이 어디 있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그들의 눈에서 불신앙과 죄악의 비늘을 벗겨낼 수 없습니다. 그들이 영적인 눈을 뜨고 진리를 바로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뿐입니다.

특별히 다음 세대를 이끌어 갈 청년들이 세상의 유혹과 타락한 문화에 빠져 주님을 멀리 떠나지 않도록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다. 청년들에게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복음의 일꾼으로 거듭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박해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던 사울도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변화를 받고 귀하게 쓰임 받았습니다.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성령이 임하니까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서 다시 보게 되었는데, 사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비늘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무언가 할 것 같은데 안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뭔가 봐야 할 것은 다 볼 것 같은데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느낄 것 같은데 느껴지지 않습니다. 움직일 것 같은데 안 움직여집니다. 용서할 것 같은데 용서가 안됩니다. 용서하려고 하면 막 화가 납니다. 신경질이 납니다. 용서해야 하는 사실은 다 압니다. 사랑해야 하는 것도 다 압니다. 분노를 품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다 압니다. 죄를 지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면서도 죄를 짓게 되는 걸 어떻게 합니까? 내가 원하는 것은 안하게 됩니다. 하기 싫은 것만 자꾸 하게 됩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이것을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롬7:19-20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절제를 못 합니다. 잘 되지 않습니다. 비늘 같은 것이 눈을 거리듯, 죄가 그들의 영혼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귀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을 막고 있습니다. 손은 있는데 움직일 수 없고, 발은 있는데 갈 수 없고, 마음은 있는데 느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은 올무에 갇힌 것입니다. 자유하시기 바랍니다. 올무를 끊어 버리십시오.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을 떼어내야 합니다. 그래야 보입니다. 그래야 들립니다. 그래야 말하게 됩니다. 그래야 움직이게 됩니다. 지금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비만증에 걸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되어 버린 사람처럼, 앞으로 가긴 가는데 기우뚱거리고, 말을 하긴 하는데 힘이 없고, 찬송을 부르긴 부르는데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이 비늘이 떨어졌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비늘이 다 떨어지기를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여 여러분 마음 안에서, 기쁨이 없는 그 곳에서 샘물처럼 기쁨이 솟아나고, 의욕이 솟아나고, 수많은 역사들이 여러분의 삶에서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는 다시 보게 되었고, 음식을 먹게 되었고 건강해졌습니다. 그러나 예전의 그는 아니었습니다. 뭔가 달라졌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뭔가 예전과는 달라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불을 통과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통과한 것입니다. 외형적으로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똑 같습니다. 그 사람의 족보가 달라졌습니까? 코가 두 개 생겼겠습니까? 손가락도 그대로 열 개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닙니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듯이, 여러분이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속이 변해야 합니다. 본질이 변해야 합니다.

2023년 8월 29일 오전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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