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9:15-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행9:15주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사울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할 그릇으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의 과거와 죄악 된 모습만을 생각했지만, 주님은 사울의 모든 허물과 죄를 은혜로 덮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고자 하는 계획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이와 같은 크신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엡2:4-5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기적을 경험하며 살 수 있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10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를 위해 쓰임 받을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의 일을 하다가 열매가 나타나면 우리의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노력한 덕분이지. 나 때문에 부흥했어. 나 때문에 잘 된 것이야.’라는 마음으로 교만해집니다. 그러나 사실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구역이 부흥하고, 사람들에게 칭찬 받을 만한 일이 생기고, 일이 뜻대로 잘될 때는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홀로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에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습니다.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이 찬양의 가사처럼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안다면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서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우리의 생각이나 기준대로 판단하거나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판단과 정죄는 절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사울이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릇이라는 말에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릇을 그릇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릇에 무엇이 담겨져 있느냐에 따라 그 그릇의 이름이 결정됩니다. 밥을 담는 데 쓰면 밥그릇이 되고, 국을 담는데 쓰면 국그릇이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질그릇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릇 중에도 가장 깨지기 쉬운 것이 질그릇입니다. 그러나 질그릇과 같은 우리 안에 보배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담고 있으면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흘러 나가고, 기쁨과 축복이 넘쳐납니다. 겉모습은 아무리 보잘 것 없다 할지라도 예수님만 담고 있으면 우리는 예수님 그릇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 속에 미움, 시기, 질투, 그리고 분노를 가득 채우고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별것도 아닌 것 때문에 소리를 지르고 다투는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사소한 일에 저렇게 소리를 지르고 싸울 정도의 열심을 다른 데 쏟으면 정말 잘 살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사소하고 잘못된 일에 에너지를 낭비하면 안됩니다. 오직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모든 노력과 힘을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참으로 놀랐습니다. 사울은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바리새인입니다. 종교적 문화적 지적인 경력, 특별히 기독교를 박해한 경력 등을 아울러 볼 때에 사울은 복음을 전하는 데 가장 적절했던 것입니다. 헬라파 유대인이니 헬라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거의 온 세계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학자이니 임금들과 고관들에게도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이방사람들에게 두루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또 있습니다. 그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복음을 전할 때에 핍박을 당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사도 바울은 늘씬하게 매를 맞고 죽을 지경이 돼 가지고 찬송을 불렀다고 하는데 무슨 마음으로 불렀을지, 한번 생각해봅니다. 그는 분명히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일 때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 스데반은 그 때 얼마나 아팠을까? 내가 맞아보니 대단하거든요. 여러분, 매 맞아 보았습니까? 안 맞아보았으면 모를 것입니다. 맞아봐야 그 아픔을 압니다. 그래야 남을 때리지 못합니다. 때릴 줄만 알고 맞는 아픔을 모른다면 아주 잘못된 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때려봤습니다. 그러나 맞아본 일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맞아보니 아주 힘들어요. 그러나 그는 생각합니다. 나는 이렇게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인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주님의 부름을 받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가, 나아가 순교까지 하게 되었는가 -그는 감지덕지합니다. 그래서 찬송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뿐입니까? 그 결과로 옥문이 열리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9:16내 이름을 전할뿐만 아니라 내 이름을 위하여 앞으로 고난을 많이 받을 것이다, 매도 많이 맞고, 감옥에도 많이 가고, 마지막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던 그가 이제는 예수의 이름으로 죽게 됩니다. 가장 합당한 인간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이 사람을 부르셔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죽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하필이면 왜 사울입니까? 이 사람은 포행자요 핍박자였기 때문입니다. 이방에 복음을 전하면서 앞으로 많은 환난을 당하게 될 것이고, 또한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니까요. 그런 사람이기에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삶은 주님의 말씀 그대로 고난으로 가득찼습니다. 먼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죽음의 문턱에 이를 정도의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통스런 일들을 겪어야 했는지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10-12주님의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은 큰 축복이 됩니다.
주를 위한 고난, 복음을 위한 고난은 예수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떠한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예수 믿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다보니 손해를 많이 본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살다보면 독한 마음을 먹고 때로는 악해져야 할 때가 있는데 져 주려니까 피해를 입을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무조건적인 사랑을 기억하면서 양보하고 베풀고 살면 그 것이 곧 하늘에 상급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한발 물러서고 조금은 손해 보는 것처럼 살 때 세상이 주님의 사랑으로 물들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사소한 일에 욕심을 부리거나 이해관계 때문에 다투는 일에 귀한 세월과 힘을 낭비하면 주님 보시기에 부끄럽고 덕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다가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만약 세상 일만 하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면 주님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게 됩니다. 우리가 언제 세상을 떠난다 하더라고 주님과 교회를 위해 충성하는 모습으로 부름 받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부산 동래 중앙 교회를 담임하셨던 신동혁 목사님은 미션 스쿨인 이사벨 중고등학교를 설립하시고 시각 장애인들을 위하 개안 수술에 힘쓰시는 등 훌륭한 사역을 감당하시다가 1995년에 소천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소천하실 때 울산 대현교회의 목사 위임 예배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셨습니다. 목사님은 설고 도중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길 원하십니다”라고 말씀하시고 주님 곁으로 가셨습니다. 목사님의 천국 환송 예배 때에는 2천 명이 넘는 성도들이 참석했는데 말씀을 전하시다가 천국 가시는 목사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2023년 8월 27일 오후 12: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