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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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1.

육신과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여 치료 받아 승리하게 하소서

2.

고난 가운데 더욱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숨겨두신 보화를 발견함으로 더 복된 삶을 누리게 하소서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9:11-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주께서 (아나니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행9:11

환상 중에 아나니아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명령은 막연하지 않았습니다. 아주 구체적입니다. 그리고 분명합니다. 우선 거리 이름이 나옵니다. 직가라고 하는 거리입니다. 유다라는 사람의 집은 바로 그 곳에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 만나야 할 사람까지도 분명합니다. 다소 사람 사울입니다. 얼마나 구체적입니까?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이렇게 구체적으로 인도하십니다.

주님은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하셨습니다.

사울이 무슨 기도를 했는지 성경은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눈물의 기도로 주님 앞에 엎드리고 깨어지는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사울은 3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제가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영적으로 무지해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모르고 주님의 몸 된 교회와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감옥에 집어넣고, 교회를 무너뜨렸습니다. 용서해 주옵소서”라고 가슴을 치며 눈물의 회개 기도를 드렸을 것입니다.

사울이 금식하며 기도하는 3일 동안 철저히 깨어진 다른 하나는 그의 야망이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되고 싶은 야망으로 가득했던 청년이었습니다. 존경 받는 종교 지도자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야망을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메섹으로 향하던 사울을 만나 주셔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야망을 품고 있었던 지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사울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광채 앞에 엎드려졌고 아무 것도 볼 수 없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사울은 자신의 분명한 한계를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거룩한 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꿈과 내가 품은 야망은 다릅니다. 내가 품은 야망은 그 속에 나를 위한 탐욕이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동기가 있습니다.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고자 할 때는 무슨 일을 하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을 배려하고 섬깁니다. 그러나 야망으로 일을 하면 내가 잘되고 싶은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남을 배려하지 않고 도리어 짓밟고 무너뜨립니다. 오직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면서 주위 사람들을 돌보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가질 수 없고, 나보다 못되길 바라는 마음만 가지게 됩니다. 그런 야망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에는 성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큰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꿈과 자신의 야망을 혼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지 못한 야망은 내려놓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거룩한 꿈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헌신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사람은 거룩한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거룩한 꿈을 꾸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영국 사람이 아프리카에 가서 시계방을 차렸습니다. 어느 날 아프리카인 한 사람이 시계방에 왔다가 큰 추가 달린 괘종시계를 보고 한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는 기쁜 마음으로 시계를 사서 집으로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추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아프리카 사람은 시계를 고치기 위해 시계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지고 온 것은 괘종시계에서 떼어 온 추 하나 뿐이었습니다. 시계추를 바꿔단다고 해서 고장 난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아무리 종교적인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에는 참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전히 탐욕으로 얼룩진 야망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살아갑니다. 주님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나를 위한 삶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한 제자로 살아가기 원한다면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진정한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행9:12

본문에 보니 하나님이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십니다. 사울에게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고 그만이셨던 주님께서 다메섹의 아나니아를 부르셔서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셨습니다.

두 사람에게 따로따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에게는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아나니아에게는 사울을 만나라 - 두 사람은 서로가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따라서 두 사람이 다 순종하고 서로 만나게 됩니다.

일방적이어서는 안됩니다. 결혼 적령기에 이른 어느 청년이 한 자매를 찾아와 “하나님께서 당신과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라고 일방적으로 말했습니다. 당황한 자매가 “저는 형제와 교제할 생각도 없고 결혼을 생각해 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형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면서 계속 결혼을 강요해 자매가 큰 상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 동업 같이 협력이 필요하거나 양쪽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 일에는 양쪽에 같은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방적으로 계시를 주시거나 감동을 주시지 않습니다.

모세 - 아론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출4:14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출4:27

엘리야 - 사렙다 과부의 감동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머물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령하여 네게 음식을 주게 하였느니라 그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 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내가 마시게 하라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왕상17:9-15

사울에게는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고, 다메섹의 아나니아에게는 너는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 그기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십니다. 심지어는 가서 할 말까지 다 일러주셨습니다. 얼마나 오묘한 일입니까? 바로 이 같은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 일방적이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세밀한 하나님의 경륜 속에서 쌍방에 다 명하셔서 사건을 온전하게 이루어 가시는 귀한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거나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계시나 환상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은 분별력입니다. 잘 분별해보면 자신의 잠재의식에서 나온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나 환상은 말씀과 그 내용이 일치해야 하고, 사람에 대해 주신 것은 양쪽에 같이 와야 합니다. 또한 예언을 듣기 위해 기도를 받으러 가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계시를 잘못 받으면 판단이 흐려져 신앙생활에 갈등을 겪고 문제가 생깁니다.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에 허락하신 이후로 하나님은 주의 종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자녀들을 인도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성령께서 듣는 사람의 상황에 맞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분별하게 하십니다.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행9:13-14

사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 다메섹으로 온다는 소식은 이미 사람들에게 다 알려졌습니다. 아나니아도 그 소식을 들었을 뿐 아니라 사울이 전에 예루살렘 교회에 했던 일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아나니아의 이 반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라 놀란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끔씩 이렇게 우리를 놀라게 하십니다. 하나님, 저를 택하시나니요? 아주 깜짝 놀랍니다. ‘아니, 내가 예수를 믿나니?’ 자기가 믿고도 자기가 놀랍니다. 사울이 예수를 믿었다면 이 세상에 예수 못 믿을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안심하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전혀 안 믿을 것 같은 사람이 잘 믿게 되어 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못 만나서, 예수님을 몰라서 그런 것 뿐입니다. 정말 예수님을 알았다면 어찌 예수님을 안 믿겠습니까? 다만 우리가 예수님을 전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고, 예수님을 보여 주어야 할 삶에서 예수님을 보여 주는 모습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보고 안 믿을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를 핍박하는 사람, 예수쟁이를 잡아들이려던 사울도 예수님을 만나 완전히 변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그런 일이 가끔 있습니다. 베드로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기도하는 중에 환상이 보이더니 보자기가 내려왔습니다. 구약의 율법에 규정된 부정하고 불결한 동물들이 거기에 담겨 있었습니다. 그런데 ‘먹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베드로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 하고 하나님께 항의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라고 하나님이 야단을 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내리신 명령이었습니다.

바울은 아시아로 가서 전도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아시아로 전도하는 것을 막습니다. 그리고는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습니다. 유럽으로 가서 전도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대와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방법을 어떤 때에는 정반대로 뒤집어 버리십니다.

부산 수영로 교회 정필도 목사님 “나는 목회 주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주관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어느 날 “바꿔라” 하시면 아무 소리 말고 바꾸어야 합니다. 내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내용은 언제든지 수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의 주인이신, 명령을 내린 주인이신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하라 하시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두말 하지 않고 즉각 자기의 두려움, 자기의 선입관, 자기의 염려 등을 전부 덮어 두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저는 여러분께 순종하는 자는 정말 하나님의 비밀을 보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순종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비밀을 보는 축복을 받습니다.

2023년 8월 26일 오전 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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