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스페인 복음화와 아프리카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기적이 일상화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9: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아나니아는 사도가 아닙니다. 예루살렘 초대 교회의 알려진 유명한 성도나 집사도 아닙니다. 예루살렘이 큰 도시라고 한다면 다메섹은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시골의 한 지방 도시입니다. 그는 그 곳에 살고 있는 한 무명의 성도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사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잠깐 만났지만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만났지만 전혀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냥 세월만 보냈을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를 잠깐 믿었지만 크게 변하고 성숙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수십년 동안 교회를 다녔지만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사울은 사도행전 22장에서 자기가 예수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간증합니다. 그 간증 속에서 아나니아를 잠깐 언급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행22:12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 아나니아라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예수를 믿을 뿐 아니라 아주 경건하고 율법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면서 살고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율법으로 경건하고 완전한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아나니아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일상의 삶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은 아나니아에 대해 한 마디를 더 합니다. 이 사람은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어떤 직분을 갖고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가 누구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국에 사느냐, 서울에서 사느냐’ 서울에서도 강남에서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따집니다. 또 ‘몇 평에 사느냐’하는 것으로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합니다. ‘어떤 차를 타느냐, 어떤 옷을 입느냐’하며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합니다. 그래서 자기만족을 느끼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직업을 가지고 있느냐’ 그리고 ‘그 직업 중에서도 어느 위치에 있느냐? 사장이냐 전무냐 이사냐, 교수냐, 연구원이냐 아니면 노동자냐 실업자냐’ 하는 것으로 자신을 평가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대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이렇게 속아 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디 사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여러분이 어떤 지위에 있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누구냐 하는 것,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내면생활이 어떠냐? 여러분의 존재가 누구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아나니아는 시골 사람이었으며, 지위가 어떠했는지도 잘 알 수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물론, 사도도 스데반이나 빌립과 같은 집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의 역할을 잘 해냈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이런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쓰시고자 할 때 쓰임 받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쓰시는 일을 위해 늘 준비하고 기다리는 사람 말입니다. 그리고 쓰임을 받을 때는 결정적으로 순종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그것이 비록 작고 순간적인 사건일지라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기도하는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9:10아무나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삼상3:1준비된 자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고, 묵상하지도 않는다면 어떻게 주님이 나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싶다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14:26성경을 계속 읽고 읽으면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 말씀을 읽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깊이 묵상을 하여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하여, 그 묵상을 통하여 여러분과 저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 일로 바쁘고, 성경 공부를 하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더라도 성경을 읽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또 한 가지는 환상입니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9:10하나님은 우리에게 환상을 보여 주고 싶어 하십니다. 특별한 뜻을 계시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렇지만 엘리 제사장처럼 비둔하고 둔하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하고 있지 않는데, 어떻게 환상이 보이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는데 어떻게 환상이 보이겠습니까? 그래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할 때 그 분은 우리에게 환상을 보이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너무 바쁘고 너무 분주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교회에 와서 여러 가지 봉사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머무나 많은 일에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이 사람 만나고 저 사람 만나는 일 때문에 정신이 없습니다. 교회에는 생각보다 회의가 너무 많습니다. 기도보다 회의가 더 많다는 것입니다. 묵상하고, 경건하게 기도하고, 기다리는 그런 시간은 너무나 적습니다. 교회 안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내 가정생활에 있어서도 경건한 시간, 기다리는 시간, 묵상하는 시간, 침묵하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지 않고 있는데 어떻게 하나님이 말씀하시겠으며, 우리가 기도하고 있지 않은데 어찌 하나님이 환상으로 우리에게 뭔가를 보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아나니아를 보면 그는 특별히 주님과 대화하며 환상을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뭔가 말씀 드리는 것으로 끝납니다. 자신의 생각을 전달합니다. 자신의 원하는 바를 말씀 드립니다. 감사를 드리는 경우에도 감사의 말만 하나님께 아뢸 뿐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그게 전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실 기회를 드리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끝냅니다. 이러한 우리의 기도는 반쪽 기도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기도는 어떻게 완성됩니까?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정말 참된 기도는 “주여, 말씀하시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하며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말씀을 듣겠나이다.” “우리 당회가, 우리 제직회가, 우리 권사들이, 우리 교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나이다. 말씀하시옵소서” 그렇게 기도하고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구하기만 하고는 얼른 빨리 끝내 버립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기회를 전혀 드리지 않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에게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내 소리가 크면 타인의 소리가 안 들립니다. 내가 잠잠하면 다른 사람의 소리가 잘 들립니다. 자기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경청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그런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46:10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시며, 하나님이 말씀하시며, 운행하실 수 있는 그런 기회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시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행하느냐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믿습니다 라고 하면서 믿음의 행동을 하는 것이 믿음의 전부하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믿음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움직이시고,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떻게 운행하시고, 어떻게 기적을 베푸시는가를 우리가 목격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일들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나니아는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는데, 환상을 보면서 들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간증을 읽으면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의 환상, 혹은 예수님을 보았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아주 뚜렷한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이 음성이든, 환상이든 아주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들은 것은 분명하지 않은 게 너무 많습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는 희미하지 않습니다. 환상의 해석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보면 “본 것이 없이 자기의 심령을 따라 예언하는 우매한 선지자들에게는 화가 있을진저”"
겔13:3에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마음에서 나오는 대로 예언합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합니다. 본 것도 없이 환상이라고 상상해서 또는 과장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해서 말하는 그러한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렇게 막연한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것입니다. 아나니아는 분명히 주님과 대화를 나누며 영적 교제와 환상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아나니아에게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또 한 가지 모습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성도 중에는 명령의 내용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서 그 내용을 살펴보고 순종할만하면 순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순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순종의 태도입니다. ‘어떤 명령을 내리든지 나는 순종하겠습니다’하는 그런 의지와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랑에 빠진 연인을 보면 서로에게 순종할 마음을 언제나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시니 우리 도망가 버리자.” 라고 말을 해도 “그래, 좋아” 하며 따라 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 내용을 따지지 않습니다. 그냥 따라가고 순종하려는 태도가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도 같이 하겠다는 태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주님이 말씀하시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라고 하는 영적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에게 나타나실 때 그렇게 반응하시기 바랍니다. “주여, 내가 여기 있습니다. 말씀하시옵소서. 무슨 말씀이라도 저는 순종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아담,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그때 아담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그랬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벌거벗어서 숨었나이다”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부르실 때 얼른 숨습니다. 그리고는 눈만 내 놓고 눈치를 살핍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 심령이 깨끗한 사람,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여, 말씀하시옵소서”하고 응답합니다.
교회가 부르면, 주님이 부르시면, 얼른 숨어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먼저 숨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부르실 때 숨지 마십시오. 일단 순종하려는 영적 태도를 가지십시오. 적극적인 태도를 가지십시오. 그때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2023년 8월 25일 오전 6: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