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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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1.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2.

영적인 민감성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성숙한 리더십과 사랑으로 모든 성도를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하소서

3.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9: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9:10

그 때에 :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서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고 다메섹을 향하여 가던 사울이 예수님을 만나 거꾸러지고, 맹인이 되어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할 그 때에 하나님은 사울을 위해 한 사람은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그 사람의 이름은 아나니아입니다. 이 아나니아는 참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 사람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업습니다. 그 사람이 출현하게 된 배경도 이 장면 외에는 별로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그에 대한 정보가 별로 없지만, 우리는 이 아나니아라는 사람을 보면서 굉장히 놀라고 신선한 충격을 받습니다."

행9:6

다메섹에 아나니아라고 하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아나니아를 제자라고 소개하는 것은 그가 주님의 뜻을 따라 신실한 삶을 살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변화시키기 위해 주님의 신실한 제자인 아나니아를 예비하시고 사용하셨습니다. 아나니아가 다메섹에 살고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신실한 제자의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이 자리에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있는 그 자리에서 아나니아처럼 온전히 주님의 뜻을 따르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심겨진 그곳에 꽃 피게 하소서.”라는 책을 읽은 한 신문 기자의 글입니다.

#풍경1

1959년 12월 12일 밤 8시였습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불과 6년 뒤였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떠난 화물선은 17일 만에 부산항에 도착했습니다. 그 화물선에 스물한 살의 미국인 여성 트루디가 타고 있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항구를 출발할 때, 건너편 산에 있던 고급 주택들에서 반짝이던 불빛은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한국에 처음 온 트루디의 눈에는 부산의 밤 풍경도 그랬습니다. 화물선에서 내다본 산에는 집집마다 쏟아내는 불빛들로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습니다. 트루디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부산은 샌프란시스코만큼 아름다운 도시구나.” 이튿날 날이 밝자 트루디는 갑판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눈에 들어온 광경은 딴판이었습니다. 지난밤에 보았던 불빛들은 황폐한 산동네 판자촌에서 삐져나온 지독한 가난의 풍경이었습니다. 하긴 한국전쟁이 멈춘 지 불과 6년 후였으니 오죽했을까요. 한국은 전 국토가 폐허가 된 상태였습니다. 그 땅에 첫발을 내디디고, 이후 60년 넘는 세월을 트루디는 한국에서 선교사로 살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젊고 가난한 전도사였습니다.

#풍경2

김장환 목사는 한국전쟁 와중에 미군 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했습니다. 온갖 허드렛일과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미군 병사 칼 파워스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구하겠다’고 다짐한 뒤 하우스 보이로 일하던 똘똘한 아이에게 미국으로 가는 배표와 함께

유학의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칼 파워스 상사는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탄광촌의 가난한 노동자 집안 출신이면서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김장환을 후원했습니다. 어린 김장환이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의 밥 존스 고등학교와 신학대, 신학대학원을 모두 마칠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김장환을 만난 트루디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고, 남편을 따라서 머나먼 이국땅 한국으로 온 것이었습니다. 1959년, 미국인 여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한국인의 눈에는 큰 구경거리였던 시대에 말입니다. 그러니 트루디 여사가 한국 땅에서 헤쳐온 60년 넘는 세월은

절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풍경3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트루디 여사와 마주 앉은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올해 84세입니다.

트루디 여사는 김장환 목사와 결혼하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한국에 막 도착한 뒤 시댁에서 처음으로 잔치국수를 먹다가 그녀는 비명을 질렀습니다. 작은 생선 한 마리가 육수 위를 헤엄치고 다녔습니다. 그녀는 그런 음식을 난생처음 보았습니다. 알고 보니 육수를 내기 위한 마른 멸치였습니다. 기겁한 그녀는 결국 국수를 입도 대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일이 어디 한둘이었을까요. 그런데도 그녀는 왜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을까요.

트루디 여사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심겨진 그곳에 꽃 피게 하소서. 이게 저의 기도이자 믿음입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겟세마네에서 올린 예수의 기도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따집니다. 내가 심어지고 싶은 곳이 있고, 꽃 피고 싶은 곳이 있습니다. 그곳에 가길 열망하고, 그곳이 아니라면 강하게 거부합니다. 심겨지고 싶은 곳에서 꽃 피고 싶어 하지, 심겨진 곳에서 꽃 피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겟세마네에서 십자가 처형을 목전에 두고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가능하면 이 잔이 저를 비껴가게 하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

이 기도에는 ‘자기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걸 온전히 받아들이는 예수의 가슴이 있습니다.

트루디 여사의 기도도 그랬습니다. 자신이 심겨지는 곳, 전쟁이 막 끝난 가난한 한국 땅을

트루디 여사는 자기 십자가처럼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예수의 기도처럼 말입니다.

트루디 여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알게 되더군요. 아, 이분은 목회자의 사모이기 이전에

한국 땅에 온 선교사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최근에는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쓴 책을 한 권 출간했습니다. 제목이 ‘한국에 왜 시집왔나’입니다. 두껍지는 않지만, 소박하고 진실한 마음의 파도가 내내 밀려오는 책입니다.

#풍경5

2006년에 트루디 여사는 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다발성 골수종 3기였습니다. 척추 일부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수술 후에는 걷지도 못했습니다. 아기의 걸음마처럼, 처음부터 모든 걸 익혀야 했습니다. 계단을 오르는 법부터 자동차에 타는 법까지 말입니다.

책에는 이 와중에 트루디 여사가 올린 기도와 내면에서 들은 성령의 소리가 기록돼 있습니다.

“만약 너에게 이런 고통이 없었다면 나와 이렇게 친밀하게 대화할 수 있었겠느냐. 이렇게 작은 일에도 감사할 마음이 들었겠느냐. 네가 지금보다 온유할 수 있었겠느냐. 너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이 시련을 주었다. 네가 아파할 때 나 역시 십자가를 지며 걸었고, 네가 고통 속에서 울 때 나도 함께 눈물 흘렸다.”

저는 이 대목에서도 트루디 여사의 꽃을 보았습니다. 심겨지고 싶은 곳이 아니라, 심겨진 곳에서 꽃을 피우는 풍경을 보았습니다. 그 풍경 아래로 예수의 기도가 흘렀습니다. (중앙일보 종교전문 기자의 글입니다)

선교사로 부름 받은 사람은 선교지가 평생 목숨을 바쳐 헌신해야 할 삶의 자리입니다. 선교지가 결코 편안한 자리가 아니며 박해와 고난의 자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자리임을 믿고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17, 18세기는 선교의 문이 열리는 시기였습니다. 이 때 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로 흩어졌습니다. 선교사님들이 선교지로 떠날 때 왕복표를 가지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편도표만 사서 떠났습니다. 짐은 미리 짜놓은 자신의 관에 넣어서 보냈습니다. 선교지에 묻힐 각오로 떠난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자리에서 충성된 삶을 살았기에 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2023년 8월 24일 오전 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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