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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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1.

예수님의 보혈로 이 땅을 덮어 주셔서 우상 숭배의 죄악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교만과 자살과 음란의 분열의 영이 묶임을 받고 떠나가게 하소서

2.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법률이 제정되지 않게 하시고 복음으로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3.

인간의 탐욕으로 깨어진 창조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사 저출산과 기후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행8:2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행8:29

이 수레는 어떤 수레입니까?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타고 가는 수레입니다.

성령이 빌립더러 내시가 타고 가는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내시는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지금 다시 고국인 에디오피아로 돌아가고 있는 사람으로 상당한 권력을 가진, 권세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사람을 만나서 선교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빌립은 이름 자체에서 풍기듯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물론 유대사람이기는 하나 유대 땅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이방 땅에서 태어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은 히브리 종교에 대하여 능통합니다. 히브리의 종교예식과 모든 규례를 다 갖추어 행할 줄 압니다.

그런가하면 빌립의 철학과 언어와 문화는 헬라에 속합니다. 태어나기를 헬라문화권에서 태어났으니까요. 그래서 빌립은 헬라어에도 능통합니다. 당시의 국제 언어는 헬라어입니다. 요즘의 국제어가 영어이듯이 말입니다. 어느 나라에 가든지 영어만 하면 그런 대로 말이 통합니다. 그래서 영어가 편리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헬라어가 지성적인 언어요 철학적인 언어였습니다. 말하자면 국제적인 언어였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만 할 수 있으면 어느 나라에 가든지 말이 통합니다. 큰 도시에서나 지성인 앞에서는 더할 나위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이러한 점에서 선교하기가 유리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태어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헬라철학에 능통하고 헬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람입니다. 선교사로서의 더할 나위 없는 배경과 자격을 갖춘 사람입니다.

빌립도 그렇습니다. 그는 선교하기에 헬라파 유대인이라고 하는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에디오피아 사람에게도 언어의 장애 없이 복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빌립은 타문화권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에 상당히 중요한 자격을 갖춘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핍박 속에 있을 때에는 선교하는 데에 평신도가 유리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공산국가나 이슬람 국가에 선교를 할 경우 성직자는 못 들어갑니다. 그러나 평신도는 장사하러 들어가기도 하고, 기술자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로써 공산주의 체제 속에서도 선교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중국에는 아직도 선교사란 이름으로는 들어가기는 힘이 듭니다. 그러나 평신도는 가능합니다. 평신도 가운데 사업하러 들어가서 선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심지어는 영어선생님으로 들어가서 전도하기도 합니다. 회교권과 중국도 영어를 많이 배우니까요. 혹은 의사나 교수로 들어가 정착해서는 그들과 만나 전도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평신도가 유리합니다. 사도라고 하는 특별한 직분으로는 선교하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핍박 속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바로 평신도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렇습니다. 이 평신도 선교사는 매우 중요한 신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효과적입니다.

빌립은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프리카사람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 북단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인종으로 말하면 흑인입니다. 황인이 흑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순간입니다. 벌써 이 때 흑인에게까지, 아프리카사람에게까지 복음이 전파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진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첫 번째로 생각 할 것은 하나님의 선교전략입니다.

하나님의 선교전략이 본문말씀 가운데 나타나 있습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이 전해진 것을 봅시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을 핍박을 통해서 사도 외에는 다 흩어지게 하여. 그 흩어진 사람이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게 만드십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피난민들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교전략입니다.

에디오피아 사람이 순례 차 예루살렘에 오게 됩니다. 순례 왔다가 고국으로 돌아가는 그 사람을 붙들고 빌립이 선교를 하게 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여행자에게 복음을 전했다는 것이 됩니다. 비록 내가 아프리카까지 가지는 못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아프리카사람이 여기에 왔다고 합시다. 이제 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가 예수를 믿게 되면 내가 아프리카까지 안가도 그 자체로 선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 믿어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소중한 일입니까?

제가 어렸을 때에 소래라고 하는 곳에 송천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선교사가 설립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에 갔다가 선교사를 만나서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고향에 돌아와서 직접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한국 최초의 교회입니다. 선교사보다 먼저 세운 교회입니다. 이 선교가 어떻게 이루어진 것입니까?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이 외국에 가서 여행 중 복음을 받아 가지고 고국에 돌아옴으로 선교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참으로 오묘한 선교전략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많은 사람들, 어떤 이유에서든지 특별히 잘 대접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함으로 이루어지는 선교의 역사를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선원 선교를 통해서 예수를 믿게 된 분 가운데 중국에 가서 교회를 개척해서 놀라운 부흥을 이루는 분이 계십니다. 교회의 중추적 인물이 되어 계신 분도 많이 계십니다. 우리가 직접 가서 서툰 말로 전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우리가 직접 중국에 가서 선교한다고 제대로 되겠습니까? 우리 교회에서 예수를 믿고 간 사람이 자기 나라에 가서 하는 말 한마디가 훨씬 효과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은 차원의 선교전략을 빌립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벌써 이 때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여행자에게 전도하라, 여행자를 믿게 하라, 여행자를 붙들어라. 그러면 그를 통하여 선교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서 효과적인 전도자가 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선교전략입니다. 아주 효과적입니다. 지금도 이것은 최고의 선교전략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여행자는 여행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상당히 개방적인 사람입니다. 폐쇄적인 사람은 문 밖에도 안 나갑니다. 아주 보수적인 사람은 여행 자체를 싫어합니다. 그러니 이렇게 좀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세계를 향하여, 넓은 세상을 향하여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관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은 예수 믿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적어도 고국을 떠나서, 고향을 떠나서 낯선 곳에 와서 여행을 하는 사람이라면 예수 믿을 가능성이 99퍼센트 있는 사람입니다.

간혹 우리는 이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집을 옮겨서 이사할 때에 새로 이사 온 그 사람을 붙들고 전도해보십시오. 전도의 효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납니다. 왜요? 이사할 때에는 사람의 마음도 함께 좀 변하거든요. 평소 티격태격하는 부부라도 새 집에 이사오면 '이제부터는 좀 새롭게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생기거든요. 그런 마음이 좀 있을 때에 '제대로 살려면 예수 믿으세요' 하고 전도해보세요. 그 효과가 나타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마음이 좀 열릴 때에 '행복하게 살려면 예수 믿으세요'하고 전도해야지, 마음이 잔뜩 닫혀 있는 데에 대고 '주 예수를 믿으라' 해봐요. 당연히 어렵지요. 기회를 잘 포착해야 합니다. 여행자의 마음은 열려 있습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여행자의 마음은 open mind입니다. 개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여행자에게 전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본문말씀에는 하나님의 또 다른 선교전략이 나타나 있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고관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마는 권세 있는 자가 하는 역할이 선교적 차원에서는 더욱 큽니다.

군대로 말하면 장교가 예수 믿는 것과 사병이 예수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선교 전략적 차원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장이 예수 믿으면 그 군목사업 전체가 원활하지만 사단장이 예수를 안 믿으면 군목은 반 정도의 일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교 전략적으로 볼 때에는 언제나 귀족이 중요하고, 지방 유지가 중요하고, 고관이 중요하고, 부자가 중요합니다. 상위권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권위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권력자를 예수 믿게 해야 합니다.

요즘도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 가보면 소위 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추장이 있는데 그 추장 하나만 예수 믿으면 다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온 부족이 다 모여 예수 믿고 세례 받게 됩니다.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합니까? 아무리 밑에 있는 사람이 믿어 보아야 소용없습니다. 추장이 믿기 전에는 절대 복음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집단적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본문에서 보는바 고관이 예수 믿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고관 하나가 예수 믿고 돌아갔다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이로써 선교의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로마감옥에 가두시어 그 시위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하신 것도 선교전략이었습니다. 이로써 고관들이 먼저 예수를 믿게 되어 당시 예수 믿는 사람이 불과 9퍼센트밖에 안되던 로마제국을 마침내는 기독교 국가로 선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고관들이 예수 믿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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