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셔서 닫혔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슬람의 전략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이 땅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영혼을 속이고 어둡게 하여 멸망시키는 이슬람의 악한 영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게 하소서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8:26-2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행8:26사마리아에서 하나님께 놀랍게 쓰임받은 빌립에게 주의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주의 사자는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가는 길은 두 길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헤브론을 지나 에돔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가사에 가기 전 해변 길과 만나 애굽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사는 당시 폐허가 된 도시였기 때문에 가사 쪽으로 난 길로 다니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황량하기 그지없는 광야 길이었습니다. 그 길에서 전도할 사람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빌립에게 그 광야 길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에서 큰 부흥을 경험하고 난 빌립에게 그 명령은 터무니없어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복을 내려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복을 받고 쓰임 받습니다. 순종함에 있어서 머뭇거리고 지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길을 떠났습니다. 즉시 순종한 것입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일은 아브라함의 마음에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적인 생각을 다 내려놓고 즉각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하고 실수가 많아도 주의 말씀에 즉각적으로 순종하는 모습을 보시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주의 말씀 앞에 내 생각과 내 경험을 다 내려놓고 즉각적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왕상 17장을 보면 엘리야와 사르밧 과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르밧 과부는 외아들과 살다가 큰 가뭄이 들어서 더 이상 살 수 없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주먹과 병에 조금 남은 기름으로 떡을 해 먹고 죽을 결심을 했습니다. 그때 엘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르밧 과부 앞에 나타났습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자신을 위해 떡을 준비해 오라고 말했습니다. 과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엘리야는 자신을 위해 먼저 떡을 해서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비가 다시 내리는 날까지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과부는 엘리야의 말대로 순종했습니다. 엘리야를 위해 떡을 만들 때 아이가 배 고프다고 울면서 엄마에게 매달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만든 떡을 먼저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날 동안 엘리야와 과부의 식구가 떡을 해 먹었지만 통의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순종은 축복입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께 쓰임받고 복을 받습니다.
사울 왕이 버림받은 것은 불순종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 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삼상15:22-23여호수아가 가나안을 다 정복한 비결은 순종에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종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명하였고 여호수아는 그대로 행하여 여호와께서 무릇 모세에게 명하신 것을 하나도 행치 아니한 것이 없었더라"
수11:15빌립이 귀하게 쓰임 받은 비결 또한 순종에 있었습니다.
지금 빌립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들과 계획이 많은데 그걸 다 포기하고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 곳은 광야입니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빌립이 전도하는 곳에 열매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많은 역사와 기적을 일으키며 전도를 하는데 이것을 멈추게 하시고 빌립에게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험에 맞지 않습니다. 더욱이 가라고 하시는 곳이 사람이 많은 곳이면 조금은 이해가 되겠는데 그 곳은 광야입니다. 사람도 없는데 그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상식이 어긋나고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을지라도 주의 사자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빌립이 그때 떠나지 않았다면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시간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 그 자리에 가지 않고 사람이 많은 데로 골라 가겠습니다.’라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시간에 맞지 않은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그 시간에 가야 순종입니다. 장소에 맞지 않은 순종 또한 순종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대로 가는 순종은 순종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장소에 가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 교회가 그렇게 많은데도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바로 영적인 눈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너무나 상식적입니다. 교회는 너무나 합리적인 결정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사람 눈에는 이상하게 보입니다. 열매가 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무의미하고 허무한 일에 투자하라고 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 현대 교회는 순종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 사람 귀에 듣기 좋은 것, 사람 마음에 맞는 것, 누가 봐도 좋은 일에 투자하려고만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투자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런 모습은 교회뿐만이 아닙니다. 개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오늘날 우리 개인의 삶과 수많은 현대 교회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원하시는 결정을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가 가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교회는 이런 의미에서 영적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끝까지 영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식을 뒤집어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안되는 일을 하도록 선택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불가능한 일에 도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그 쪽에 계획을 갖고 계시면 우리는 조용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순종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행8:27-28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을 때 내 조건, 내 형편, 내 상식 그리고 똑똑한 사람을 찾지 마십시오.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빌립은 순종했습니다. ‘일어나 가서 보니’ 하나님의 일이 그 곳에 일었습니다. 에디오피아의 큰 권세를 가진 한 대신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는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기획경제부 장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빌립이 주의 사자의 말씀에 순종하여 광야에서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나 전도하게 되는데 이것은 유대인이 이방인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믿게 한 첫 케이스라는 데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복음이 사마리아의 장벽을 넘어 땅 끝에 있는 이방인에게까지 흘러가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를 전도함으로 복음이 이제 아프리카까지 이르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선교 전략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