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풍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막4:35-41
2023. 7. 30 주일 낮
"보면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닷가 육지에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루 종일 말씀을 전한 예수님은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님을 배로 모시고 가는데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어부 출신인 제자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헤쳐 보려고 노력해 보았으나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배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신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깨어 일어나서 바람과 파도를 꾸짖으시니까 즉시 잔잔하여졌습니다."
막4:1을1. 예수님을 모시고 인생 바다를 건너가도 파도가 옵니다.
바다에는 늘 크고 작은 파도가 밀려옵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바다는 실제로는 바다가 아니고 갈릴리 호수입니다. 물이 귀하여 호수가 거의 없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호수라는 단어가 없었기 때문에 바다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갈릴리 호수는 팔레스타인 북부 지역에 위치한 이스라엘 최대의 호수입니다. 그런데 그 호수는 구조상 가끔 풍랑이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갈릴리 호수는 수면이 지중해 보다 무려 200m 이상 낮습니다. 그래서 평소 낮 기온이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호수 북편에는 헐몬 산이라는 아주 높은 산이 있습니다. 산이 높으니까 기온이 찰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스라엘 땅에서 유일하게 늦은 봄까지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종종 밤이 되면 헐몬 산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게 되는데, 이 바람이 갈릴리 호수의 따뜻한 공기를 몰아낼 때 풍랑이 이는 것입니다. 이런 풍랑은 갈릴리 호수에서 늘 겪는 일인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배에 모시고 갈 때에도 큰 광풍이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막4:36-37항해를 하면 때로 광풍을 만나는 것처럼, 인생을 살다보면 크고 작은 풍랑이 다가오는데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우리에게도 예기치 않은 큰 풍랑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반대 방향으로 가는 배를 탔다가 큰 풍랑을 만난 것처럼, 큰 풍랑은 하나님의 징계일 때가 많습니다.
"여호사밧이 다시스의 선박을 제조하고 오빌로 금을 구하러 보내려 하였더니 그 배가 에시온게벨에서 파선하였으므로 가지 못하게 되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내 종으로 당신의 종과 함께 배에 가게 하라 하나 여호사밧이 허락하지 아니하였더라"
왕상22:48-49왜 허락하지 않았을까요? 여호사밧 왕은 배가 파선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를 돕는 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전에 아합 왕을 돕다가 꾸중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아합 왕) 돕고 야훼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야훼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대하19:2이와같이 하나님의 징계로 오는 풍랑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도 불구하고 오는 인생의 풍랑도 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야훼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창39:2야훼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에게 얼마나 큰 인생의 광풍이 몰려 왔습니까?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가고,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야훼께서 함께 하시므로 보디발의 가정 총무가 되었는데, 이후에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이 다가왔던 것입니다.
2. 예수님을 모시고 함께 하는 인생에도 광풍이 부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대부분이 갈릴리 어부 출신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호수에서 종종 풍랑을 만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쯤이야 하고 노를 저어봤는데 풍랑이 점점 더 커졌습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깨웠던 것입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니이까?”하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졌습니다.
이런 크고 작은 문제를 여러 번 경험하며 제자들이 배운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큰 광풍이 불어도 예수님만 깨우면 해결된다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그것을 배운 이후 제자들은 아무리 큰 광풍이 불어와도 두려움이 없는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홍정욱 목사님은 가난한 개척 교회 목사의 아들로 자랐습니다. 그리하여 학비를 제때 내 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비를 가져오던지 어머니를 데려 오라고 집으로 쫓겨간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느 해인가 늦가을이었는데, 그때에도 학비를 내지 못해 집으로 쫓겨 왔습니다. 집에 와 보니 자기만 온 것이 아니라 형과 누나도 쫓겨 왔습니다. 이때 사모인 어머니께서 기도하러 가지고 하시며 자녀들을 데리고 산으로 가셨답니다. 그 날은 진눈개비가 내리는 추운 날씨였는데, 어머니는 여름 치마만 입고 그 찬 진눈개비를 맞으며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홍정욱 목사님은 그때만 해도 철이 없어서 학비는 안주고 기도하자는 엄마가 원망스러워 기도한 것이 아니라 속으로 원망만 하며 졸고 있었다고 합니다. 졸다가 엄마의 기도 소리를 들었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은 장가를 들지 않으셔서 어미의 마음을 모르세요. 자식을 굶기고, 학비를 주지 못하는 어미의 아픈 마음을 알지 못하세요. 그럴 바에는 차라리 데려가 주세요.”하며 하염없이 우시다가 예수님 잘못했어요. 하고 회개하시더랍니다. 그렇게 밤이 늦도록 기도하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놀란 것은 집 앞에 쌀자루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쌀자루 안에 봉투가 들어 있었는데 정확하게 세 아이의 학비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철이 없는 홍정욱 목사님은 감사하기는커녕 ‘하나님 돈을 주시려면 좀 여유있게 주시지 왜 학비만 주십니까?’하고 원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을 여러 번 겪으면서 배운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조금도 두렵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기도하면 된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모든 문제가 다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문제가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문제를 당해도 처신을 잘못해서 작은 문제가 더 큰 문제로, 간단한 문제가 복잡한 문제로, 쉽게 끝날 문제가 오래도록 고통을 주는 문제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에게는 그 문제가 오히려 많은 축복을 줍니다.
그 문제 때문에 기도하다가 응답을 받아 믿음이 더 자라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더 잘되고, 더 축복을 받고, 더 감사하게 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가 왔을 때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좌절 낙심하고 원망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홍해 앞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의 군대가 추격하여 사면초가가 되는가 하면, 홍해를 건너고 나니 마라의 쓴 물이 다가오고, 아말렉의 공격을 받는 등 크고 작은 어려움이 끊임없이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크고 작은 어려움이 다가온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홍해에 길을 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건지고, 애굽 왕과 그 군대를 수장시키신 하나님이 애굽 군대가 홍해에 오기 전에 막으실 수는 없으셨을까요?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여 홍해까지 오게 하셨는데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은 길을 내시는 분이심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야훼 라파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승리를 주시는 야훼 닛시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야훼를 아는 백성은 강하여 어떤 문제 앞에서도 용맹을 발하게 됩니다.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발하리라"
단11:32그러나 야훼를 알지 못하는 백성은 조그마한 어려움만 와도 두려워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움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 고로 야훼를 알기는커녕 원망 불평만 하다가 광야에서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겼을 때 원망 불평하는 행동은 문제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피해보다 더 큰 피해를 줍니다. 문제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고통보다 엄청난 고통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절대로 낙심 좌절하거나 원망불평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 낙심하고 자포자기하면서 ‘될 대로 되라, 이젠 끝났다’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낙심하는 이유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문제가 와도 처신만 잘 하면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고 절대로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자포자기하지 마십시오. 절망하고 자포자기하고 낙심하면 그 행동 자체가 문제를 확대시키고 더 불행하게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그것이 너무 심해지면 자살하게 됩니다.
빚 몇 천만 원 때문에 아이 둘을 차안에서 죽여 버리고 자기도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자수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빚이 자식 둘을 죽일 정도로 큽니까? 그 사람이 낙심하고 절망하고 자포자기하고 자살을 시도한 것이 더 큰 문제를 일으킨 것입니다. 빚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물론 빚 자체가 주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절망하고 자살 소동하는 것이 고통을 백 배, 천 배, 만 배로 확대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또 다른 잘못된 처신은 문제를 피하려고 술이나 마약을 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의도를 알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그 문제를 피할 생각으로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하게 되면 도리어 문제를 심각하게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내가 예수를 믿는데 하나님이 이럴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난 그런 하나님 믿지 않겠습니다.’며 하나님을 멀리 떠나는 것도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면 해결됩니다. 축복으로 바뀝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부딪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내가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문제에 올바르게 대처하는 자세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니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깨운다는 것은 기도드렸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안하면 파도가 일어나도 예수님이 계속 주무십니다. 기도로 만이 예수님을 깨울 수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을 찾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해결됩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축복이 되는지 모릅니다. 문제 때문에 하나님을 찾게 됐다면 그것 자체가 축복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깨어 기도하면 주님이 깨어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잠잠케 해 주십니다.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야훼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고요하게 하사 물결도 잔잔하게 하시는도다 그들이 평온함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중에 야훼께서 그들이 바라는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시107:28-30성경에 보면 복을 많이 받은 믿음의 조상들 중에 문제없이 편안하게 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보통사람보다 큰 문제가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문제 속에서 그들의 믿음이 더 빛이 났고, 더 큰 복을 받았고, 더 크게 쓰임 받았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정신을 바짝 차려 깨어 기도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버리지 못했던 죄와 고약한 성질이 엄청난 문제가 들이닥칠 때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부르짖는 가운데 버려집니다. 그리고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간구하다가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게 되고 더 큰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큰 문제 때문에 체험적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간증거리가 생기게 됩니다.
창세기 26장에 보면 이삭이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 애굽으로 내려가려 할 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는 하나님 음성을 듣습니다. 그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혼났지만 이삭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그랄 지방에 가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니까 흉년이 든 그 해에 100배의 복을 받고 마침내 거부가 됐습니다.
흉년이 든다고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흉년의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고 간구하는 사람마다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체험적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공격해 와서 나라가 망할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 앞에 밤새도록 부르짖고 매달리니까 그 다음날 아침에 앗수르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이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으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통곡하고 울부짖는 가운데 15년을 연장받았습니다. 그 증표로 해시계의 그림자가 뒤로 10도나 물러가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사람들은 문제가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더 큰 은혜를 받아서 간증거리가 생기고 체험적인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그들을 큰 일꾼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같은 인물들에게 큰 문제가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모르드개도 죽을 수 밖에 없는 위기가 있었지만 부르짖어 기도했더니 오히려 더 큰 복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돛단배로 세계를 일주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에게 바다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때는 언제였느냐고 물었더니, 바람 한 점 불지 않았을 때가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바다에는 바람이 있어야 합니다. 바람이 있어야 시원하고 배가 빨리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때때로 문제가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문제 때문에 정신 차리고, 깨어서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되고, 겸손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믿음이 더 좋아지고 간증거리가 많아지고 큰 일꾼이 됩니다. 그리하여 뒤를 돌아보면 결과적으로 더 빨리 가게 되는 것입니다.
찬송가 373장 (통일 503장)
1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 주시니 참 감사 합니다
2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으로 인하여 더 빨리 갑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렇게 문제가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불과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윗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문제가 많았던지, “야훼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시3:1)” “야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시13:1) 라고 절규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불과 30세에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오히려 많은 유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겨도 그 문제가 다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축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통해서 복을 주실 때가 많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광풍이 불어올 때 어떻게 했습니까? 결국 단잠을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자 예수님께서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두려워 한 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우리가 바다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말씀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믿음을 두지 않고 환경을 바라봤기 때문에, 큰 풍랑을 보고 있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진 것입니다.
여러분 환경을 바라보면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두려움은 마귀가 들어오는 통로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통로를 내어 주어야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 통로가 무엇입니까? 두려움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먼저 우리 마음에 두려움을 주어서 두려운 생각, 두려운 꿈, 두려운 말을 하도록 해놓고 그를 통해서 들어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0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따라서 그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오늘 여러분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문제가 다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에 따라서 문제가 더 크게 될 수도 있고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보다 더 큰 문제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그 문제가 언제나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문제 때문에 늘 깨어 기도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해결되지 않고 있는 그 문제 때문에 계속해서 기도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 문제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이 축복입니다. 문제 때문에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되고, 체험적인 신앙을 갖게 된 것이 축복입니다.
기도하다 보면 은혜 받습니다. 체험적인 신앙이 생깁니다.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들이 지나고 보면 오히려 복이 되어 더 빨리 나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문제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믿음으로 잘 대처하여 해결 받으시고 축복으로 바꾸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7월 31일 오전 6: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