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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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1.

이 땅의 청년들이 세상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젼을 품고 그 비젼을 향하여 전진하게 하소서

2.

개인과 가정, 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청년들이 되게 하소서

3.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7:54-5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7:54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 어떤 말을 듣고 마음에 찔린 것입니까?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

행7:51-53

유대교 지도자들은 스데반의 설교를 들고 마음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찔림을 받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스데반을 향하여 이를 갈았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실수를 합니다. 실수를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지만 실수하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스스로 깨달으면 눈물을 흘리고 은혜를 받지만 남이 지적하면 화를 낸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똑같은 잘못인데도 자기가 깨달아야지, 남이 지적하면 화가 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치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잘못을 지적 받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너무 창피해서 그냥 죽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끝장을 내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두 부류의 사람이 나타납니다. 한 부류는 사울 왕과 같은 사람이고, 다른 부류는 다윗 왕과 같은 사람입니다.

사울 왕은 사무엘을 통해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끝까지 변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나단을 통해 잘못을 지적 받았을 때 즉시 회개했습니다.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잠9:8

"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잠25:12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치 아니할지라 저희의 재난 중에라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시141:5

"자주 책망을 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

잠29:1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가슴을 치며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주님의 자녀가 되어 언제나 주님 앞에 회개하고 무릎을 꿇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목사님들이 설교하실 때 특정 성도의 문제점을 언급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들으면서 ‘아, 저것은 내 이야기다. 누가 목사님에게 내 이야기를 했지?’하고 오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영훈 목사님이 동경에서 사역하실 때의 이야기입니다. 한 일본인 집사님이 예배가 끝나고 얼굴이 상기되어 목사님을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며느리가 다 일렀지요?”

이영훈 목사님이 “무슨 말씀이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며느리가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을 목사님한테 다 일러바쳐서 목사님이 오늘 설교할 때 저를 야단치신 것이 잖아요.”

마음이 찔리면 회개해야 하는데, ‘며느리가 일렀다.’라고만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분의 며느리가 누구인지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얘기를 들은 적도 없고, 들었다고 해도 그것을 설교하면서 이야기해본 적도 없습니다. 마음에 깨달음이 오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니까 주님 앞에서 기도하십시오.”

그랬더니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얼마 후에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이번에는 우리 며느리가 진짜로 일렀지요? 그렇지 않으면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렇게 소상하게 알고 계실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영훈 목사님이 그 분을 달래느라고 아주 혼이 났다는 것입니다. 설교만 하면 며느리가 일렀다고 하시니까 말입니다.

주의 종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찔림이 올 때는 누가 이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찔림을 주신 것입니다. 마음에 찔림이 있을 때 “누가 목사님에게 일렀지?”라고 생각하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스데반의 설교로 마음에 찔림 받은 저들은 회개는커녕 오히려 돌을 들어 그를 치지 않습니까? 저들은 마음에 찔렸습니다. 당연히 찔려야지요. 찔림 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무슨 말씀을 주시든지 '이건 내게 주시는 말씀이다' '다른 사람 아닌 바로 내게만 주시는 말씀이다' 하고 그야말로 화끈하게 찔려야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맥락의 이야기가 사도행전 2장 37절에도 있습니다.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가 3천 명 앞에서 설교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36절)" 합니다.

"너희가"라고 말씀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은 실제로 몇 사람뿐입니다. 로마군인 들이 못박았습니다. 그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빌라도입니다. 그 뒤에는 가야바가 있고, 가룟 유다까지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3천 명을 향하여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았다' 했으니 듣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문제입니까?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도 '말조심하시오. 내가 언제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하고 대들 상황인 것입니다. 그런데 보세요. 자기들보고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았다" 라고 엄청난 심판의 무서운 말씀을 하는데도 이 말씀을 듣고 모두가 '옳습니다. 나 때문에 예수님은 죽으셨습니다'하고 저들은 군말 없이 받아들입니다. 나아가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묻습니다. 마음에 찔릴 때에 곧 회개를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에서는 마음에 찔린 사람들이 이를 갈았습니다.

회개할 생각은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더 굳어진 것입니다. 악의가 생겼다는 뜻입니다. 행4장을 보면 기독교인들을 잡아다가 위협을 했고, 행5장을 보면 채찍질을 했으며, 오늘의 본문에 보면 돌로 치는 것입니다. 협박도 해보고 때려도 보고 마지막에는 돌로 쳐 죽이는 것입니다. 이를 가는 마음, 증오심, 악한 마음이 이렇듯 크게 작용할 때에 엄청난 살인행위를 하게 됩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행7:55

아주 놀라운 말씀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이 이를 갈고 있는데, 스데반은 이를 갈고 있는 무리들을 본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스데반은 이런 광경을 보았습니까? 그가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 하다는 것은 성령께 사로잡혔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좋은 환경이든 나쁜 환경이든, 건강하든 병들든,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런 것에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환경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대개 사람들은 조금만 상황이 좋으면 기뻐하고, 조금만 환경이 나빠지면 좌절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 충만 대신에 자아가 충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에게 굉장히 예민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방법, 자기 한숨, 자기 좌절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도 나도 간 곳이 없습니다. 구속한 주만 보이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의 설교를 들은 무리들이 이를 갈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스데반에게서 발견하는 두 번째 반응은 그가 ‘하늘을 우러러 보고’라는 것입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 보고 있었습니다. 자기를 향하여 이를 가는 무리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하늘을 보는 사람이 있고 땅을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사람이 있고, 자기를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를 보는 사람은 자아가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기에게 예민하게 될 것입니다. 자기 문제가 모든 문제의 최우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충만한 사람,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자기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중요하지 않은 사람은 고집을 피우지 않습니다. 그는 분명 땅에서 살고 있지만 땅을 보지 않고 하늘을 봅니다. 무엇을 보느냐가 무엇을 행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오늘 이렇게 기가 막힌 상황 속에서도 스데반은 자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재판의 결과에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몇 년 형을 받을 것인가? 이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따위의 문제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에 대한 두려움보다 무서운 두려움이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세 번째로 스데반은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보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및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목격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목격한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생각 속에 하나님이 충만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사상은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높은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을 묵상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가장 위대한 사상이라는 것입니다. 이데올르기와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철학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어떤 상대적 가치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 보기를 사모하십시오. 목마르게 사모하는 자에게 물을 주십니다. 사모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성령 세례 받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어느 날 성령 세례를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 얻기를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어느 날 여러분에게 능력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하기를 열망하십시오. 놀라운 전도의 능력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위대한 아들로 살고 싶은 꿈을 가져 보십시오. 그렇게 될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과 평범하게 사는 사람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큰 법입니다.

스데반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고, 그 영광과 동시에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2023년 7월 26일 오전 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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