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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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1.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가게 하소서

2.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3.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7:42-4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본문에 나오는 스데반의 설교 속에서 우리는 3가지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1하나님은 40년 광야 생활에서 너희를 보호하셨고, 지켜 주셨건만 너희가 정말 나에게 희생과 제물을 드린 일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이 외면하사 그들을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록된 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너희가 광야에서 사십 년간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7:42-43

이 말의 뜻은 희생과 제물을 전혀 드리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민수기 7장과 9장을 보면 족장들이 예물을 풍성히 드려 제사를 지냈고, 유월절에도 예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당시에 이스라엘이 감사함으로 드릴 때 그 예물들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희생과 제물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지 2년이 지나기 전에 드린 것들입니다. 출애굽 제2년째에 이루어진 가나안 정탐 사건 이후 상황이 돌변했습니다.

성경에는 이 사건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이 38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할 때 하나님께 예물을 드렸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물론 가나안 정탐 사건 이후에도 성막에서 제사가 드려졌을 것이며 백성들이 예물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이 같은 일들이 기록되지 않았고, 하나님도 그들이 40년 동안 희생의 예물을 드리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예배에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앙과 감사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사1:11-14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말1:10

참된 예배는 형식이 아니고 마음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분에 있지 않고 보이지 않는 부분에 있습니다. 진정한 헌신과 봉사도 형식에 있지 않습니다. 사람은 얼마든지 형식에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람 보기에, 나 보기에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이 그것을 받으시느냐에 있습니다. 정작 하나님이 예배를 받으시느냐는 것입니다.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되도록 드리고"

레19:5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4:3-5

하나님은 그들의 예배를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형식과 이해 관계에 따른 것이었을 뿐, 마음이 중심으로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 동안 하나님께 드린 예배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이용했습니다. 만나를 위해 하나님이 필요했고, 자기들의 목을 축일 샘물을 얻기 위해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보호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감격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려도 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에게는 기쁨도 축복도 보람도 없습니다. 그에게는 팽팽히 맞서는 대결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 주니 하나 받는 율법적 관계만이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예배, 곧 헌신은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마음을 드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것을 가늠하는 것은 내가 얼마나 헌신하고, 희생하고, 손해 보았느냐 입니다. 손해를 한 번도 보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예배를 드린 사람이 아닙니다. 희생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은 사람입니다. 시간의 희생, 돈의 희생, 내 모든 것의 희생이 들어가야, 손해가 들어가야 진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손해를 보면서도 기뻐하고, 오래 참고, 온유하고, 겸손해 하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자기들의 안전을 생각했습니다. 자기들의 이익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고 하나님을 이용하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2그들은 하나님께 참된 예배와 헌신을 드리는 대신 우상을 만들어 섬겼습니다.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7:43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대신 우상, 즉 이방 나라에서 숭배하는 몰록과 레판의 별을 받들어 섬겼습니다.

몰록은 암몬 족속이 섬기는 신이었고, 레판은 앗수르인들의 우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몰록 숭배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제사를 지낼 때 자기 자녀를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주 가증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우상이란 거짓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은 우리를 구원해 주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우상을 만들어서 하나님 대신에 그것을 섬기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반드시 우상을 만들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우상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에게도 있습니다. 교회를 적당히 다니는 사람은 교회에 왔다갔다 하면서자기 우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우상이 있기 마련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대신 누가 우상이 됩니까? 자신을 위한 최고의 가치, 최고의 결정이 우상이 됩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자기 가족, 환경, 직장을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대신에 돈과 권력, 지식, 명예를 의지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도 합니다. 교회도 나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사람은 반드시 자기 나름대로 우상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은 그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3그 우상을 섬긴 결과는 파멸이라는 사실입니다.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으로 옮기리라 함과 같으니라"

행7:43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죄로 인하여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갔고, 남 유다 왕국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김으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거기서 70년간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정결함을 받아야 했습니다. 어떤 형태로든지 우상을 섬기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이를 42절에서는 ‘하나님이 버려 두셨으니’라고 표현 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을 정말 섬기지 않으면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우상을 갖게 마련이고, 어떤 형태이든지 우상을 갖게 되면 징계가 온다는 것입니다.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형태로 이루어 집니까? 포기입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롬1:22-24

그들이 우상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심판이란 무엇입니까? 내 마음의 정욕대로 행동하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비참한 결과가 옵니다. 치명적인 결과가 옵니다.

나병의 비극이 어디에 있습니까? 손가락과 발가락이 썩어 문들어져 나가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치명적인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가 나쁜 생각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받아 견디지 못하게 하여 막아 주셨고, 정욕이 있었을 때도 막아 주셨고, 내가 죄를 지으려고 하는 생각을 가졌을 때도 순간순간 사람을 보내시고, 환경을 바꾸시고, 그때마다 성령이 임하여 보호하셨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았던 것입니다.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 또 너희가 너희 조각한 우상에 입힌 은과 부어 만든 우상에 올린 금을 더럽게 하여 불결한 물건을 던짐 같이 던지며 이르기를 나가라 하리라"

사30:20-22

여러분,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보호막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 나갑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해 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영택 목사님은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면서도 사춘기를 겪으면서 수없이 자살을 시도했고, 젊은 날 함부로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눈물이 기도가 있었기에 하나님이 만남의 복을 주셔서, 좋은 믿음의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교인들을 만나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귀하게 쓰임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은혜의 보호막이 흐트러지면, 우리는 그 즉시 죄악에 빠져 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본질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로 지켜 주셨기에 이렇게 사는 것입니다. 심판이란 그 은혜의 보호막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그 몸을 서로 욕되게 하고 맙니다. 이것이 심판입니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1:28

여러분, 죄를 지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악을 도목하고, 사기를 쳤는데도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것, 그것이 좋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좋은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좋습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나쁜 짓을 하고 남을 속이면 들통이 나야 하고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매를 맞을 때는 사랑이 있습니다. 채찍이 있다는 것은 사랑입니다. 내가 악을 도모해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저주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막이 흐트러졌는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간섭받고, 들키고, 어려움이 다가오고, 매 맞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나쁜 일이 슬쩍 넘어가지 않으면 사람들은 재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넘어간 것은 기도 덕분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슬쩍 넘어가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런 일들이 계속 되면 엄청난 비극이 생깁니다.

수영로 교회 정필도 원로 목사님이 지금도 감사하는 것은 가난하게 자랐다는 것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하루 3차례 교회에 가서 기도했음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커녕 점점 더 가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학교에 다닐 때에도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고는 살 길이 없어, 하루 4-5시간 밖에 자지 못하여 늘 잠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깨닫고 보니 그때 죄 지을 돈도 없고, 시간도 없어 하나님만 의지하여 부르짖고 살았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죄 짓지 못한 환경으로 인도하여 주신 것에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7월 22일 오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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