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북한을 위한 기도
북한의 주체 사상이 무너지게 하시고 남북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분단의 아픔에서 해방되어 복음적 평화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북한 전 지역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고 북한 전역의 3만 8천 여 개의 동상과 우상들이 철거되며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14만 지하교회 성도들과 수용소에 있는 성도들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고 영양부족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북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행7:37-3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한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한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장차 오실 메시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예수를 증거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행7:37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가장 귀한 사명을 무엇입니까? 예수를 나타내는 삶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 세례 요한의 위대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요1:31사도 바울의 위대성이 어디에 있습니까?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빌1:20예수님은 모세와 같은 지도자로 이 땅에 오셔서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들을 죄악 세상 애굽에서 건져내어 영적 가나안인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따르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나타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
행7:38광야교회 - 대단히 중요한 단어입니다. 성경에 단 한 번 나타나는 단어입니다. 물론 의미상으로는 성경 어디에나 있는 단어입니다만 이렇게 '광야교회'라고 꼭 집어 나오는 것은 성경에 딱 한 번뿐입니다.
먼저, '광야'라는 말을 생각해봅시다. 광야는 참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입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무서운 짐승들이 들끓는 곳이 광야입니다. 전갈이나 불 뱀만이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문명이나 과학이 발달한 지금도 여기에 한번 갔다가는 잘못하면 돌아오지 못하고 죽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곳입니다. 이것이 광야입니다.
스데반이 설명하고 있는 이 광야교회는 세 가지 차원의 구원을 생각하게 합니다.
애굽은 세상을 상징하는 것이요, 가나안은 영원한 하늘나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광야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임시적인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가는 노정입니다. 하나의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 광야에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광야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10:1, 2)"라고 세례를 말씀합니다. 홍해를 건넌다는 것은 세례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율법으로 죽고 은혜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과거와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요단강은 하늘나라로 가는 또 하나의 과정입니다. 요단강은 광야 생활과 영원한 가나안땅의 중간에 있는 것입니다. 영원한 가나안땅에 가기 위해서는 요단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이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는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요단강은 강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지나 가나안땅으로 들어가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여 종말론적 구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하는 것은 '죽어서 만나리'하는 말과 같습니다.
이렇게 볼 때에 구원이라는 것은 일단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일차적 구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좀 더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분명히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몸은 분명히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홍해를 건넌 다음에는 말입니다. 분명히 저들은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몸은 나왔는데, 정작 마음이 출애굽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민11:5"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민11:20"우리 처자가 사로 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민14:3몸은 여기에 있는데 마음은 저기에 있습니다.
언젠가 기가 막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신혼여행을 와서 몰래 옛 애인한테 전화를 걸다가 남편에게 들켜 가지고 매 맞고 이혼 당한 신부가 있다고 합니다. 신혼여행을 왔으면 그대로 남편하고 즐길 것이지, 왜 옛날 애인한테 전화는 겁니까? 이 사람 결혼한 것입니까, 아닙니까? 결혼식은 분명히 현 남편하고 했는데 마음은 옛 애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분명히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나오기는 했는데 온전히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문화적으로 그렇고, 신앙적으로 그렇습니다. 'Already, but not yet' -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구원받지 못한 부분이 많습니다. 바로 그것이 광야교회입니다. 아주 오묘하고도 깊은 진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광야교회가 무엇입니까? 이제부터 진짜 출애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이루시려고 하신 것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정탐꾼들이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는 것을 보자 모든 백성들이 원망 불평을 했습니다. 그래서 진노하신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return시키셨습니다. 다시 돌이키셨습니다. 가나안을 눈앞에 두고도 저들은 그래서 다시 광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이로써 광야 40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저들의 믿음이 요단강 건너 가나안에 이르기에 합당치 않았던 것입니다.
광야는 훈련장소입니다. 광야는 분명코 출애굽의 장소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정신에 박혀 있는 애굽적인 것을, 애굽에서 때 묻은 성격과 문화와 잠재의식을, 저들의 생활 속에 있는 종교적으로 잘못된 그 모든 애굽적인 것들을 깨끗이 지워 버리시고자 하셨습니다. 그것을 씻어버리는 데에 40년이 걸렸습니다.
옛날 목사님들이 설교할 때에 많이 들어 쓰시던 이야기인데, 어느 교회에 서 부흥회를 했는데, 그 부흥회가 끝나자마자 그 교회 장로님의 부인이 이불보따리를 들고 들어오더랍니다. 목사님이 "왜 이불을 가지고 들어옵니까?"하고 물으니 "우리 장로님은 교회에서는 천사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마귀거든요. 그래서 여기에 아예 눌러 살려고 왔습니다" 하더랍니다.
여러분, 사람 하나 바로 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모세 하나를 바로잡으시는 데에 40년이 걸렸습니다. 문화인류학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문화가 하나 바뀌는 데에, transformation하는 데에 공교롭게도 40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40년을 주기로 문화도 돌아간다고 합니다.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이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과거를, 애굽적인 것을 다 씻어버리기 위하여 이 광야가 필요했습니다. 이 광야교회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광야교회는 하늘나라 백성의 자질을 미리 훈련시키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저들에게 미리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몸에 익히도록, 생활화하도록, 문화화 하도록, 체질화하도록 인도하신 것입니다. 지금 저들은 광야교회에서 이것을 훈련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하나님께서는 저들로 증거의 장막을 짓게 하셨습니다. 그 성전을 짓게 함으로 임마누엘 신앙을 훈련시키셨습니다.
증거의 장막을 지어라, 법궤를 가져다 놓으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다는 상징으로 여기에 성막을 지어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안심하라, 원수가 쳐들어와도 걱정하지 말라, 흉년이 들어도 걱정하지 말라, 질병이 생겨도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 임마누엘 신앙입니다. 임마누엘 신앙을 확고히 보여주시기 위하여 저들로 광야 한가운데에 성막을 짓게 한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그것이 예배당입니다.
광야교회는 애굽과 가나안 사이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훈련시키는 현장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철저하게 자기부정을 하고, 얼마나 깨끗하게 출애굽을 했습니까?
우리의 심령은 하나의 교회입니다. 마음의 성전은 하나의 교회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아직도 애굽적인 요소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를 지워버리시기 위하여 때로는 질병을, 때로는 실패를, 때로는 고통을 내리십니다. 애굽적인 요소를 깨끗이 지우기 위하여, 하늘나라를 지향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오늘도 광야 훈련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광야교회에 우리가 존재합니다. 이것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