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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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1.

분열된 한국 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2.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 교회가 기도함으로 영적 위기를 돌파하게 하시고 멈추어버린 전도의 사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신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행7:23-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한 사람이 원통한 일을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행7:23-29

이제 모세의 2기 인생이 시작됩니다. 그 나이가 40입니다. 40이 되어서야 자기의 동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세 인생의 제1기가 자아가 눈뜬 시기라면, 제2기의 인생은 민족과 역사에 눈뜨는 시기였습니다. 쉽게 말하면 모세가 이제 철이 좀 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아직도 철들지 않은 어른들이 참 많습니다. 나이 40이 넘어도 민족과 역사를 생각하지 못하고, 자기 삶의 주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라와 역사와 민족은 그만 두고라도, 자기 가족 하나 잘 돌보지 못하는 철없는 어른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철이 일찍 들기도 합니다.

모세는 나이 40이 되어서야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는 광경을 보고 화가 난 모세는 그 일에 개입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 편을 들다가 애굽 사람을 쳐 죽인 것입니다. 여기에 바로 철이 든 사람의 한계와 좌절이 있습니다. 즉 선한 애국심으로 살인을 해도 된다는 논리입니다.

모세는 애굽 사람을 쳐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제 자기가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혈기를 부릴 때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모세가 나가보니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웁니다. 모세는 그 일에 또 개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싸우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맙게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모세를 밀치면서 ‘네가 우리의 재판장이냐,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이더니 네가 우리까지 죽이려 하느냐?’ 하면서 모세를 궁지에 몰아 넣었습니다.

모세가 착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데, 모세는 자기의 때에 자기의 일을 하려고 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조급하기만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물론 그 동기는 그럴싸 했습니다. 민족적이요 애국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하든지 인간의 힘으로 해서는 안됩니다. 열심히 교회 일을 하면서도 혈기 부리는 사람은 자기 열심으로 일했을 뿐이지 하나님의 은혜로 일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도 주님이 은혜로 주신 열심이 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주님을 섬기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셔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지 않는 일을 어찌 내가 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모세의 잘못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스스로 지도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심으로 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 지도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모세는 스스로 지도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지 않은 자리에서 일하려고 할 때에 그의 지식과 의지가 다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사건이 모세 편에서 볼 때는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이것이 인간의 열심이 보인 애국심의 결과입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도망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어 말 못하는 짐승들과 더불어 광야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양을 치는 목자였습니다. 그의 신분은 제일 높은 곳에서 제일 낮은 곳으로 떨어졌습니다.

일생 중 40은 한창 일할 나이입니다. 머리가 번뜩이는 나이입니다. 정열이 있고 건강이 있고, 아이디어가 있고, 무언가 해 볼 수 있는 나이입니다. 그러한 나이에 하나님은 완전히 모세의 기를 꺾어 놓으신 것입니다.

내가 능력이 있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무능할 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자부심을 가질 때, 돈이 있을 때 하나님은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어서 여러분의 돈과 지능과 지위를 탐내시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완전히 고부라질 때까지 그를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쓰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낮아지고 깨어질 때부터 나를 통해 일하시고 나를 높여 주시는 것입니다.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신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행7:30

(광야) 사십 년이 차매 , 즉 모세의 나이 80살에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80세에 시작된 모세의 인생 제3기는 하나님에 대해 눈뜨는 시기였습니다.

모세의 인생 제1기가 자아가 눈뜬 시기라면, 제2기 인생은 민족과 역사에 눈뜨는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제3기는 하나님에 대해 눈뜨는 시기였습니다.

인간의 절망과 좌절은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시작입니다. 시내 산에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시내 산은 무엇입니까? 모세의 현주소입니다. 절망에 빠져 낮아질 대로 낮아지고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느낀 장소가 시내 산이었습니다. 그 시내 산에서 그는 지난 40년 동안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청춘을 송두리째 빼앗겼던 것입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면서 40년을 하루같이 하나님 앞에서 깨어지고 또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아무 힘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을 때 주님이 시내 산 광야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서 나타나셨습니다. 모세는 가시나무 떨기와 같이 보잘 것 없고 볼품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붙들고 이야기 하십니다.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에 너무나 교만합니다. 너무 편한 자리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는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생의 모든 껍질을 다 벗고, 거품이 사라지고, 자유와 건강과 젊음이 다 사라지고, 돈이 사라지고, 진정한 자기 모습으로 돌아올 때 하나님은 바로 거기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십니다.

영국의 도자기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영국의 조지 왕이 한번은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습니다. 거기에는 색깔, 스타일, 무늬, 원료가 같아 보이는 두 개의 꽃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는 반짝 반짝 빛이 났지만 하나는 광채가 없었습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조지 왕은 관리인에게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관리인은 “폐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불에 구워졌고, 하나는 구워지지 않았습니다. 고난의 불은 인생은 윤기 있게 하고 생동감 있게 한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특별히 제작하여 전시한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난의 불을 통과하여 자아가 깨어진 사람은 높은 온도의 불에 구운 도자기와 같이 광채가 납니다. 그의 삶 속에 예수님의 빛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고난을 경험하지 않고 자아가 깨어지지 않은 사람은 굽지 아니한 토기와 같아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빛이 나지도 영광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려면 깨어지고 낮아져서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2023년 7월 18일 오전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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