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행7:17-1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스데반은 지금 대단히 중요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으로 보아도 그렇지만 그 정황과 성격부터가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 순교 직전에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를 각오한 것 같습니다. 말하자면 임종 직전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마치 유언과 같은 심각한 의미의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행여라도 이 설교를 해서 자기 앞에 있는 아주 악한 마음의 사람들을 설득함으로 죽음을 면해볼까 하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해서 궁색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왜 이런 핍박을 받아야 하느냐, 무엇 때문에 나를 괴롭히느냐, 따위의 있을 법한 항변 같은 것이 낌새조차 없습니다. 깨끗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오로지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대합니다.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촛점을 맞추고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의 역사를 속속들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향을 떠나고부터 아브라함의 생애 전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요셉을 들어 설명하는데,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요셉 역시 그리스도의 예표요 모형이 됩니다. 그리스도와 그 백성들의 관계가 마치 요셉과 그 형제들과의 관계와 같다고, 유사점을 발견해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설명하기 위하여 요셉을 상징적으로 비유하는 것입니다. 이상이 지난 시간에 공부한 내용입니다.
이어서 이제, 스데반은 모세를 끌어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를 이야기할 때면 으레 숨을 죽이고 옷깃을 가다듬습니다. 모세를 높이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영도자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저들은 별수 없이 조용하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모세를 끌어내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행7:37모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하여 스데반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모세를 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의 설교를 똑바로 듣는다면 본문의 촛점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모세에 관한한 저들은 줄줄이 꿰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모세 속에서 예수를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요5:46모세를 통하여 올바른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행7:17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워지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여 많아졌다고 성경을 말합니다. 이스라엘 여자들이 눈에 띄게 아이를 잘 낳기 시작했습니다. 옛날에는 다 다산이었습니다. 생기는 대로 낳았으니까요. 문제는 유아 사망률이 엄청나게 높았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기는 아무리 악한 조건 속에서도 병들지 않고 생존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애굽에 이주할 때 70인이었던 야곱의 가족이 출애굽 할 때는 20세 이상의 남자만 603,550명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자와 어린 아이까지 합치면 200만이 넘었을 것입니다. 야곱이 애굽에 갈 때는 70인의 가족이었는데, 출애굽할 때에는 대 민족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행7:17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약속의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이란 어떤 책입니까? 약속의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을 Old Testament, 다른 말로 Promise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기록한 것이 구약입니다.
또 신약을 New Testament 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구약의 내용이 신약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약속과 성취’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구약의 약속과 신약의 성취, 이 구조가 신구약을 꿰뚫는 구조입니다. 우리는 이 구조를 통해 예수님이 말씀하신 모든 예언들과 요한계시록에 있는 모든 예언들이 마지막 날에 그대로 성취할 것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심판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마지막 역사의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성취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한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선택된 백성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우리에게 있는 진정한 의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선택받은 도구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쓰일 때 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행7:18-19역사를 살펴보면 요셉을 국무총리로 삼은 애굽의 왕조는 ‘힉소스 왕조’입니다. 힉소스 왕조는 본래 애굽에서 살던 본토인이 아니라 셈족으로 요셉이 한 일을 잊지 않고 기억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왕조가 애굽을 다스리는 동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대접을 받으며 애굽 땅에 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쿠테타가 일어나서 힉소스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시작되면서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이를 우리나라 역사에서 본다면 고려가 무너지고 조선 왕조가 시작된 것과 비슷합니다. 고려 시대 때는 고려의 충신들을 잘 돌보았습니다. 하지만 조선이 시작된 후로는 고려의 충신들을 감옥에 보내고 박해했습니다. 조선의 왕은 고려를 위해 공을 세웠던 사람이 조선에 해가 되는 일을 할까 두려워 그들을 박해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애굽의 새 왕은 이스라엘 백성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번성하는 것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태어난 남자 아이들을 모두 다 죽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산파가 아이를 받을 때 남자 아이면 그 자리에서 다 죽여 버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만약 죽지 않고 살아났더라도 국법으로 죽이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번성하면 이런 일이 있었겠습니까?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왕위에 오르게 되어 이스라엘을 핍박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주변 환경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이 라반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들은즉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말미암아 이 모든 재물을 모았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창31:1-3이스라엘 백성이 요셉 시대처럼 귀족 대우를 받고 잘 살면 애굽에서 나가겠어요? 절대로 안 나가지요. 못 견디니까 보내어 달라고 아우성을 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왕위에 올라 이스라엘을 핍박한 것은 우연한 일일 수도 있고 역사의 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가 악한 꾀를 내어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들을 괴롭힌 것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 준비된 환경입니다. 남자 아이를 국법으로 죽이도록 한 것도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하나의 주변 환경인 것입니다. 역사에서는 우연이 없습니다. 우연히 존재하는 역사란 없습니다. 하나님의 편에서 보면 모든 것이 필연이고 섭리입니다.
2023년 7월 15일 오전 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