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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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 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능력의 종이 되게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더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사역 환경의 위기 속에서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그들의 수고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행7: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스데반은 초대 교회의 사도가 아닌 평신도 집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귀하게 사용하셔서 사도행전 7장에 스데반의 설교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사도보다 더 귀하게 쓰임받는 평신도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선교를 위해 귀하게 쓰신 사람이 누구입니까? 사도가 아닌 평신도 집사 빌립니다.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랐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못 걷는 사람이 나으니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이 소식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한 것입니다.

천국에 갔을 때 목사보다 더 큰 상을 받을 평신도들이 훨씬 많을 것을 저는 확신합니다. 어떤 분이 천국에 갔다가 시험 들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목사가 천국에 오니까 예수님이 맨발로 환영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목사보다 더 열심히 주님을 섬겼는데, 그렇게 환영해 주지 않으시더니 목사가 오니까 그렇게 환영해 주십니까? 얘 목사는 드문드문 오니까 너무 기뻐서 환영한 것이란다. 뼈가 있는 말입니다.

아무튼 스데반은 초대 교회 성도를 대표하는 한 모델이었습니다. 그는 천국 백성, 성도의 수준과 기준을 결정해 준 사람입니다. 성경은 그에 대해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백성들에게 칭찬 받는 사람, 그리고 믿음과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소개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람을 통해 조화된 한 인격을 봅니다. 한 곳에 치우치지 않는 성숙한 한 그리스도인을 봅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고, 또 실제로 예수님처럼 기사와 표적을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교만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겸손히 집사로서 묵묵히 교회 안에서 구제와 봉사를 했던 신실한 일꾼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그는 조화된 인격자로서 유능한 행정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는 복음의 탁월한 변증가로서 그 변증은 설교가 될 만큼 놀라운 것이었고, 구약 성경에 대한 탁월한 지식을 가진 지성인이었습니다. 바로 그 사람이 초대교회 성도의 한 모델이었던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스데반의 설교를 공부하게 됩니다. 7장 전장에 걸쳐서 스데반이 긴 설교를 합니다. 설교인 동시에 유언입니다. 스데반은 이 설교를 끝내면서 바로 끌리어나가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래서 첫 순교자가 됩니다. 대단히 장엄한 시간입니다. 생각해보면 스데반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워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알면서 설교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말을 담대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교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설교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믿는 기독교 교리의 깊은 진리를 다 논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스데반은 이 설교를 하고 죽습니다. 따라서 이 설교는 유언과 같은 설교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증거하는 설교입니다. 생명을 건, 위험을 느끼면서 증거하는 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얼마 전에 이 자리에서 이 재판을 받으시고 끌려 나가 빌라도의 재판을 받으시고 골고다 언덕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현장입니다. 대제사장이라는 사람도 여기에 나오는데, 바로 가야바인 줄로 압니다. 가야바는 그 후 36년까지 제사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본문의 대제사장은 가야바요, 가야바가 지금 예수님을 심판하던 그 입으로 심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행7:1

너를 고발하는 사람들의 말과 증인들의 말이 사실이냐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행6:10-14

여기서부터 스데반의 변증과 설교가 계속됩니다.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행7:2

우리는 여기에서 첫째 스데반이 자신의 맞는 위기를 설교의 기회로 삼은 것을 보게 됩니다.

지금 그는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에 의해 체포되어 공회에 서서 위증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지금 그를 미워하여 죽이려고까지 하는 사람들의 살벌한 이야기를 듣고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그것이 사실이냐고 반문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위증한 내용은 전혀 딴 이야기를 꾸며낸 것일 뿐만 아니라 스데반의 이야기를 살짝 바꿔서 해석을 달리한 것입니다.

마귀도 언제나 비슷합니다. 이단이 무서운 것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불교나 무속이라면 아주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압니다. 그런데 이단은 성경도 봅니다. 교회라는 말도 붙입니다. 그들은 기독교외 비슷한데 전혀 딴 이야기를 합니다. 완전히 뒤바꿔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단의 모습입니다. 이단은 다를 이, 끝단, 즉 처음은 같은데 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증인들의 말은 스데반이 한 이야기를 살짝 돌려놓았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은 전혀 다릅니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말도 되지 않습니다.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Dream is no where.

Dream is now here.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읽으면 좋지요.

스데반은 이러한 위기 앞에 섰을 때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생각하지 못한 위기가 오면 먼저 당황합니다. 어쩔 줄 모릅니다. 겉으로는 초연한 척 하지만 내심 불안하고 당황하고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리고 쉽게 절망합니다. 위기가 오면 우선순위에 혼돈이 옵니다.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구분이 잘 안되고 막 서두르기 시작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위기가 오면 하나님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나는 거짓말도 안 하고 이렇게 착하게 살아왔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느냐는 것입니다. 또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내가 새벽기도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며 쉽게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에 관여했던 사람들을 원망합니다. 자신의 잘못은 제일 끝에 가서 발견합니다. 이렇게 맞고, 저렇게 맞고, 한참 얻어맞고 제일 나중에야 자신이 잘못한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인간입니다.

사람은 평소에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그 사람입니다. 특별히 위기에 부딪히면 평소에 생각하던 것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재판 중에도 천사의 얼굴을 했던 스데반, 그는 분명히 하나님을 평소에 깊이 생각했던 사람입니다. 땅에 살았지만 관심은 하나님께 있었고 예수님께 있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위기 가운데서도 그는 위기를 모면하는 데는 관심이 전혀 없었고, 그것을 오히려 복음 전도의 기회를 삼았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고 요약해서 설교했습니다. 2-53까지의 긴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로부터 말라기까지의 방대한 분량을 압축하고 아주 쉽게 요약한 내용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16절까지는 창세기의 요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아브라함과 야곱과 요셉을 부르시고 인도하셨다는 내용입니다.

17-41까지는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내용을 요약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에서 탈출시키기 위하여 모세를 사용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애굽에서 이끌어 내고 보호했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42-44절까지는 민수기와 신명기를 요약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시험하시고 그들을 교훈하셨던 내용입니다.

45절 말씀은 여호수아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내셨고 그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46, 47절 말씀은 사무엘하부터 역대하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했습니다. 특별히 다윗과 솔로몬을 사용하셔서 성전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거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48-50절까지는 에스겔에서 말라기까지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성전에서 예배를 받으시기도 하지만,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 안에 제한되지 않는 분이라는 내용입니다.

스데반은 50절까지 일사천리로 구약의 내용을 요약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기까지 들었을 때 사람들은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고 갈등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자기들과 같은 신앙의 동질성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이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것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과 생활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위선과 허위를 들춰내는데 스데반의 변증의 요점이 있었습니다.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7:51

이것은 구약 역사의 개관이 끝난 직후에 던져진 폭탄선언입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믿지만 내면적으로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종을 죽이고, 하나님의 역사에 배반하는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스데반의 이야기 전체의 요점입니다.

2023년 7월 10일 오전 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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