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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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1.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늘 겸손한 자세로 나라를 이끌어가며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리더가 되게 하소서

2.

이 땅의 위정자들이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며 이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3.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사라지게하시고 소통과 화합을 통해 분열된 국론이 하나 되게 하소서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6:9-1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아프리카)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행6:9-10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한 사람들은 그가 지혜와 성령으로 말하므로 능히 당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스데반이 말씀과 복음에 능력이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이방 철학과 종교의 신봉자들과 논쟁을 할 수 있을 만큼 지성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 외에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을 분토로 여기겠다고 서원한 것처럼, 그는 예수만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무식해서가 아닙니다. 많은 지식과 높은 지성이 있었지만 그는 예수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논쟁을 해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의 철학과 문화에 통달하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7장을 보십시오. 스데반이 설교하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구약 성경에 통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에 대해 깊고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초대 교회의 집사였습니다. 바로 이런 사람이 초대 교회의 안수집사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을 돌아보았습니다. 한국의 초대 교회에는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신문화를 들여왔고, 민족의 양심을 가지고 3. 1 운동을 일으켰으며, 해방 후 건국의 기초를 닦았던 분들입니다. 사회의 지도급 인사들은 대부분 크리스챤이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곧 사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만큼 교회의 지도력이 높았고, 영향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인도 많아지고, 교회도 커졌지만 교회 안에서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 교회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를 찾아보아도 감동받을 만한 인물이 별로 없습니다. 교회뿐 아니라 민족을 감동시킬 만한 영적 지도력, 도덕성을 가진 인물이 드물고, 그나마 점점 사라져 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가슴 아픈 현실이 있습니다.

교회는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질적으로 높아지는 것 또한 중요합니다. 적어도 교회 안에는 스데반과 빌립 같은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교회는 아무에게나 장로나 집사의 직분을 줍니다. 때문에 교회의 영적 권위가 낮아지는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더 깊어져야 합니다. 교회는 더 격이 높아져야 합니다. 교회의 수준이 곧 민족의 수준이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집사의 표준은 스데반입니다. 스데반의 신앙의 수준은 순교하는데 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스데반의 수준까지 이르지 못할지 모르지만 그 기준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유대인들이 스데반으로 더불어 변론할 때 감당치 못하니까 궤계로 잡으려고 스데반을 모함했습니다. 어떻게 모함했습니까?

1거짓 증인들을 내세웠습니다.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행6:11

물론 스데반이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만 믿으면 구원 얻는다고 주장했을 것입니다. 그 말을 가지고 트집을 잡아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2그들은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을 충동질해서 그를 공회 재판정에 세웠습니다. 재판정에서 그들은 또 거짓 증인을 내세웠습니다.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행6:12

장로나 서기관들은 사람을 체포해서 심문할 권세가 있거든요, 그래서 유대인의 최고 재판소인 공회에 데리고 갔습니다.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행6:13-14

나사렛 예수가 뭐가 답답해서 성전을 헐겠어요. 꼭 성전에 와야만 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믿으면 된다고 가르쳤겠지요. 말 꼬리를 잡아 죄인을 만듭니다.

누구든지 사람이 오해를 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참기 어렵고 억울한 법입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서 억울한 재판을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우리 마음 속에는 분노가 생깁니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회오리에 말려들게 됩니다. 그 순간 얼굴은 창백해지고 일그러질 것입니다. 아무리 웃고 싶어도 입이 떨리고, 분을 참느라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뛰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깊어지면 사람들은 대부분 복수를 결심하며 복수의 칼을 갑니다.

사람들은 다 스데반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렇게 오해를 받고, 사람들이 위증을 하며, 공격을 하는데 과연 스데반은 어떤 표정을 보일까?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행6:15

공회에 앉은 사람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스데반이 화가 날텐데 참고 있는 것일까? 앞으로 얼굴이 일그러질 것인가? 아니면 다른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가? 모두들 궁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법정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분노로 떨어야하고, 창백해지고 일그러져야 할 그 얼굴에 놀라운 천사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합니까? 여러분의 경험과 비교해 보십시오. 그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요즘 법정 소란죄라는 특수 법정 용여가 생겼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죄를 짓고도 억울하고 불공정하다고 재판을 거부하고 법정에서 소란을 피웁니다. 실제로 억울한 사람도 많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억울하면 저랬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스데반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창백해야 할 그의 얼굴에는 상상할 수 없는 천사의 얼굴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놀랍고 충격스런 사실입니까? 스데반에게 어떻게 이런 것들이 가능했을까요? 어떻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최근의 제 모습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회의를 할 때 제 모습이 천사의 얼굴이었나 생각하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작은 오해를 못 참고, 자존심 상하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 합니다. 스데반과 저는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에게는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1그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세상에 있었지만 마음은 세상에 없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우리의 마음 또한 세상에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인간관계를 피해 갈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스데반은 몸은 재판정에 서서 공격을 받았고 그 결과 오해를 받았지만 그의 영은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늘 보좌에 서 계신 주님을 보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사람들이 귀를 막고 일심으로 돌을 들어 스데반을 쳐 죽이려고 할 때 스데반이 무슨 말을 한 줄 아십니까?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 계신 것을 본다.”

우리는 하늘을 볼 때 구름은 보지만 하늘 보좌를 보는 눈이 없습니다. 우리는 경험은 너무나 천박하고 세속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거룩이 우리 안에서 경험되지 않습니다. 얼굴은 마음의 표현입니다. 내 마음에서 그러한 거룩을 경험하고 하나님 보좌를 경험한 일이 없기 때문에 내 얼굴이 빛날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몸은 비록 땅 위에 살고 있지만 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구름만 보지 말고 구름 저편에 있는 찬란한 하늘의 보좌를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스데반은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를 지배하고 계셨습니다. 만얀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될 수 있었겠습니까? 인간이 아무리 수행을 하고 노력을 한다해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스데반은 자기에게 욕하고 돌맹이를 던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마 그 영이 스데반에게 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스데반은 자신을 재판하던 사람들은 용서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용서하지 않고는 이런 일이 불가능 합니다. 용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사랑할 때 우리는 십자가에 접근하게 됩니다. 우리가 포기할 때 예수님의 겸손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어가는 스데반의 기도문 속에 다시 나타납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7:60

이 기도를 볼 때 스데반은 자기를 모함하고, 핍박하고 재판하고 급기야는 돌 팔매질을 해서 죽이기까지 하는 그들을 용서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여러분은 천사의 얼굴을 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용서하십시오. 용서하지 않고는 천사의 얼굴이 불가능합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천사의 얼굴이 불가능합니다. 하늘의 보좌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천사의 얼굴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에 들어와서 내 마음을 지배하지 않고서는 이 마음이 불가능합니다.

2023년 7월 8일 오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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