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세계 선교를 위하여
펜데믹으로 인해 위축된 선교지의 현장을 속히 회복하여 주시고 폭발적인 복음 증거 사역이 일어나게 하소서
선교사님들에게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 분별력을 허락해 주셔서 탁월한 선교 전략으로 접근하게 하시며 모든 질병과 풍토병으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치열한 영적 전쟁 가운데 있는 선교 현장을 예수님의 보혈로 덮으셔서 모든 선교사님들이 사명 붙들고 사역하게 하소서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행5:33-3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
행5:33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 - 그들 :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 (산헤드린 공회원들)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무리들, 곧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이튿날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소집하여 사도들을 잡아 오려고 사람을 옥에 보내었더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킨 사람들이 문에 섰으되 문을 열고 보니 그 안에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알고 보니 밤에 천사가 그들을 끌어내며 ‘가서 성전에 가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고 했습니다. 이에 사도들이 순종하여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을 가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고 대제사장이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니 베드로와 사도들이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몇 달 전에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신 바로 그 공회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함으로 부끄러움을 샀던 곳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 현장에 베드로가 다시 섰습니다. 그 때는 공회의 뜰에서 불을 쬐다가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재판정 안에 붙들려가서 당당히 나서서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합니다.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와 요한이 산헤드린 앞에서 당당하게 말씀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29절)."
여러분, 어디서 이런 담력이 생겼겠습니까? 성령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 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으니 핍박도, 협박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은 베드로와 사도들이 핍박하는 자들을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이 증거가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을 크게 격분시켰습니다. "그들이 듣고 크게 노하여(33절)" -
그도 그럴 것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무리를 선동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사도들이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다고 증거합니다.
사도들의 증거대로 하면 그들은 의인의 피를 흘리게 한 죄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하고 크게 반박합니다.
이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합니다. 우리가 산 증인이라고 담대하게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당신들이 메시야를 죽였소, 당신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를 범한 것이오, 하고 핍박 자들을 정면으로 정죄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이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저들은 "어찌할꼬"하고 회개해야 마땅했습니다마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찔릴 때 회개하는 사람은 다윗처럼 복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찔림에도 불구하고 자꾸 변명하는 사울 같은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회개는 커녕 더욱 격분하여 펄펄 뛰었습니다. 이를 갈고 부들부들 떨며 분노했습니다. 이렇듯 살기등등하고 험악한 상황을 오늘의 본문은 "크게 노하여"라는 한마디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본문을 말씀합니다. "사도들을 없이하고자 할새(33절)" - 분노한 그들의 마음이 사도들을 죽이겠다는 마음으로 굳어지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런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은 가말리엘을 통하여 사도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행5:34가말리엘에 대하여 우리가 아는 바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사도 바울이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다는 것은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히브리사람들의 문헌에 보면 힐렐이라고 하는 유명한 율법사가 있습니다. 온 민족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유명한 랍비 힐렐의 손자가 바로 가말리엘입니다. 그 역시 힐렐 만큼이나 유명한 사람입니다. '율법의 영광'이라고 하는 별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는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았습니다.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가말리엘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가말리엘은 베드로와 요한을 먼저 밖으로 내 보낸 연후에 저들에게 말을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람은 일대 일로 단둘이 마주할 때에는 말을 바로 할 수도, 자기 잘못을 인정할 수 도 있습니다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잘못을 인정하기란 어려운 법입니다. 여기에 형제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동생 앞에서 형을 때리면서 잘못했다고 빌라고 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죽어도 안 합니다.
그러나 일대 일로 엄마와 단둘이 있을 때에는 잘못했다고 하라면 얼마든지 합니다. 하지만 동생이 옆에 있는 상황에서는, 자신이 매 맞는 것을 동생이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잘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서있는 그 앞에서 대제사장이 어떻게 '가말리엘 당신 말이 옳소'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잘못한 것 같소'라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일대 일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조용한 충고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공개적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나가라 해놓고 자기들끼리만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형 앞에서 동생을 나무라도 안되고, 동생 앞에서 형을 때려서도 안됩니다. 그리고 때리면서 '너는 왜 동생만 못하냐'하고 꾸중해서도 안됩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어떤 교훈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보십시오. 오늘 가말리엘이 지혜롭게 행합니다. 먼저 사도들을 나가게 한 뒤에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을 되찾아서 말하게 합니다.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지 조심하라"
행5:35가말리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아"라는 말로 말문을 엽니다. "여러분" 하지 않고 "이스라엘 사람들아"하고 말합니다. 이것은 선민의 특권, 선민의 영광을 내세우기 위함입니다. 먼저 선민의 긍지를 저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택함 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니 소홀히 처신해서는 안될 것입니다'하는 의식을 깨우쳐 주고자 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너희가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어떻게 하려는 것을 조심하라. 왜냐?
"이 전에 드다가 일어나 스스로 선전하매 사람이 약 사백 명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져 없어졌고"
행5:36그는 역사적인 예를 들어 말합니다. 이것은 히브리적 방법입니다. 히브리사람들은 추상적 이론으로 설명하지 않고, 언제나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을 합니다.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사실을 들어서 설명하는 것이 이스라엘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가말리엘이 오늘의 본문말씀에서 예로 들고 있는 역사적 사건은 두 가지입니다. 그 첫 번째 예가 바로 드다라고 하는 사람에 관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드다가 죽은 서기 4년은 예수님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바로 그 때입니다. 드다는 '나는 여호수아의 후예다. 나는 여호수아처럼 이 민족을 구할 것이다. 맨발로 요단강을 건너게 해줄 것이다'하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선동을 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를 따르던 사람의 수가 약 사백이나 되었다고 오늘의 본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드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은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고 합니다.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따르던 모든 사람들이 흩어졌느니라"
행5:37가말리엘은 두 번째 예로 유다를 들고 있습니다. 본문말씀에서 보는 대로 구레뇨가 수리아 지방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그곳 거민들로 호적을 하게 했습니다. 세금을 더 많이 거두어들이기 위하여 호적을 하게 하는데, 그 때에 갈릴리사람 유다가 나서서 이를 저지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하나님께만 바칠 것이지, 그 누구에게도 세금을 내지 못한다'라는 말로 민족의식을 고취했습니다.
로마정부를 대항하여 일종의 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유다 역시 결국은 잡혀서 죽었습니다. 그가 죽고 나니 그 무리들이 다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 두 사건에서 보는 대로 주동자가 없어지는 순간에 추종자들이 조용해지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생각해보십시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예수님을 따르던 그 무리들이 흩어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흩어지기는커녕 자꾸만 일어나고 있단 말입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복음을 듣기 위하여, 복음을 증거하기 위하여 모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섣불리 대항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2023년 7월 2일 오후 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