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가게 하소서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행5:17-19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시험과 시련이 지나가면 부흥과 축복이 옵니다. 그러나 부흥과 축복 속에도 사단의 시기와 질투는 계속됩니다. 그래서 부흥과 축복 속에서도 또다시 핍박과 시련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신앙은 성숙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요셉에게 한 축복이 무엇입니까?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태음이 자라게 하는 보물"
신33:14태양만 작열하면 사막이 됩니다. 태양도 있어야 하고, 밤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태양은 결실케 하고, 밤은 자라게 하기 때문 것입니다.
축복과 고난,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그것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더욱더 주님을 바라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 성령 세례를 받고 베드로에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자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관원과 장로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과 문중들이 다 모여서 베드로와 사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또 다시 핍박이 시작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핍박이 시작되는 계기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인 죄로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믿는 무리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고,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백성이 칭송하였습니다. 바로 그때 핍박이 다가왔습니다.
"대제사장들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행5:17핍박이 누구로부터 왔습니까?
대제사장들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도개인의 당파가 (종교 지도자들)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핍박은 불신자에게서 오지 않고 믿는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모르는 사람은 핍박하지 않습니다. 아는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핍박은 언제나 먼 데서 오지 않고 가까운 데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핍박을 하는 이유는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 시기 질투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베드로는 인기를 위하여 일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다보니 자연히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졌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저들을 존경의 눈으로 우러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유무상통하며 구제하는 사회를 이루다보니 믿건 안 믿건 간에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과 및 사도들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인기가 높아진 것입니다. 사도들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인기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초에 이런 의도를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복음을 전하다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인기를 잃어버린 사람, 실추 당한 사람들이 저들을 시기 질투할 수밖에요. 불이익을 당하고 보니 예수 믿는 사람, 특별히 사도들을 핍박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겉으로는 신앙적인 이유와 교리적인 이유를 말합니다. 합리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가 아니더라도 세상에서도 그런 것을 많이 봅니다. 비판하는 사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을 보면 그들이 하는 말이 다 그럴듯하고 합리적입니다. 회사를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정말 그 사람들이 진리를 위해서 국가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신앙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진정 나라와 민족을 위하고, 교회와 국가를 위하는 사람은 그렇게 험악한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그 방법 또한 굉장히 성경적일 것입니다.
본문 말씀대로 핍박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그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비판하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왜 질투와 시기가 생길까요? 비교 때문입니다. 물건은 크다 작다, 좋다 나쁘다 비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인격은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창조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크다 작다 잘 생겼다. 못 생겼다. 똑똑하다. 미련하다’등의 말로 비교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미련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인격은 인격 그대로가 좋은 것입니다.
비교를 하면 어떤 일이 생깁니까? 나보다 못났다면 우월감이 생기고,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면 질투가 생기는 것입니다. 우월감을 가지면 어떻게 됩니까? 교만하고 지배하려고 합니다. 우월감을 가진 사람은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 이론과 생각이 가장 옳은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핍박은 가까운 데서 옵니다. 핍박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신앙 문제, 교리 문제 때문이 아니라,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행5:18그들은 상당한 권력을 가졌습니다.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둘만한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힘은 있을 때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드디어 잘못된 판단을 내립니다. 그리하여 자기들에게 주어진 권세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행5:19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절적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 오시지도 않고 늦게 오시는 경우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오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정확한 하나님의 때에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하나님은 430년간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고난 겪는 것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자 모세를 보내어 출애굽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결코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모르시는 것 같지만 결코 모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을 계산하고 계실 뿐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 성도들이 절망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조금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었다’고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시간입니다. 그러나 그때가 바로 하나님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굳게 잠긴 옥문을 열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도 살리십니다. 그러나 죽게 내버려 두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권사님의 아들이 근육이 말라가는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권사님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고, 3년 동안 기도한 결과 한 사람도 살아난 예가 없는 그 병에서 그 아들이 치유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권사님이 유방암에 걸렸습니다. 자기 아들을 살려주신 하나님이 자신을 사려주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두 번 수술을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런 응답을 주셨다고 합니다.
“네 아들은 살아서 내게 영광을 돌리고 너는 죽어서 내게 영광을 돌리느니라.”
그래서 권사님은 그 순간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을 하고 생각해 보니, 자기가 똑똑하고 돈도 있어서 시집, 친정 식구들을 다 먹여 살렸는데 돈을 주면서 상처를 안 준 사람이 없더랍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서 상처를 주었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사과하며 용서를 구하고 잘못했다는 고백을 하였는데, 그렇게 하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마음에 걸리는 사람을 다 만나 사과를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그 분을 위로하러 갔던 사람들이 다 은혜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분은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살아서 영광을 돌릴 수 있고, 죽어서 영광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감옥에서 사람을 빼 오기도 하시고, 어떤 때는 감옥에서 죽게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비밀을 다 알지 못합니다. 단지 순종할 뿐입니다.
2023년 6월 28일 오전 6: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