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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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행복한 가정을 위하여

1.

가정마다 예배와 기도가 멈추지 않으며 사랑의 언어로 서로를 축복하는 믿음의 명문 가정이 되게 하소서

2.

가정의 모든 관계가 화평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평안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게 하소서

3.

자녀들은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고 부모는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바르게 양육하는 성경적인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되게 하소서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행4:3-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행4:3

그들을 잡으매 : 사도들을 잡으매

누가 잡았습니까? 대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입니다.

왜 사도들을 잡았습니까?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행4:2

결국 그들은 사람들을 체포하고 구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잡고 보니 어두운 밤이라, 밤에는 재판할 수는 없느니 이튿날까지 가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고난이 뒤따랐습니다. 고난이 없는 영광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No Cross, No Crown."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고 오는 축복도 없습니다. 세상적으로도 정치, 경제 등 어느 전문적인 분야에서 정상에 올라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나름대로 피 눈물나는 고통과 시련과 대가를 치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냥 쉽게 이루어진 일은 없습니다.

영적인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생활에서 가장 필수적인 과정은 고난이라는 터널입니다. 고난을 겪지 않고는 영혼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시119:67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119:71

우리의 고난은 그리스도와 연관이 되면 축복이 됩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마5:11-12

그러나 시련과 고난이 그리스도와 연관되지 않으면, 하나님과 연관되지 않으면 저주가 됩니다.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벧전2:19-20

여러분이 받는 모든 고난이 그리스도와 연관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럴 때 그 고난은 여러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 시련은 여러분을 성장시킬 것입니다. 그 모든 어려움은 여러분을 성숙하게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사도 바울과 같이 간증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느니라"

롬8:18

초대 교회는 그냥 자라난 교회가 아닙니다. 고난과 역경 곳에서, 시련과 핍박 속에서, 심지어는 순교의 제물을 바쳐야 하는 상황 속에서 초대 교회는 태어났습니다. 오순절은 축복이었고 기적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계속되는 기적과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시련과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는 축복과 능력이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행4:4

사람을 가두었으나 이미 말씀은 전파되어 믿는 자가 5,000명이나 되었더라.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면 마귀의 진이 무너지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지 않은 인간적인 이론만 가지고 증거하면 별 효과가 없습니다.

사도들이 잡혀서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어 이미 5,000명이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행4:5-6

이튿날 : 사도들이 잡혀 들어간 지 이튿날 되던 날

사도들이 왜 잡혀 들어갔습니까? 나면서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킨 일로 잡혀 들어간 것입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걷게 되었을 때 기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불쾌하게 생각한 무리들도 있었습니다. 좋을 일이라고 모두가 다 기뻐하지는 않습니다. 불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름 아닌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누구보다 가장 크게 기뻐해야 할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 기적 앞에서 크게 당황하였습니다. 이미 처형된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습니다. 살아났을 뿐 아니라 기적을 일으켰다는 사실 앞에서는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내용들이 4:1-3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행4:1-3

그들이 무엇을 싫어하였다고요?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한 것입니다.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가 부활하셨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정말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였습니다. 산헤드린 회의가 모였습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모임. 그 당시 유대는 행정적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총독이 다스렸지만, 정신적인 지도자는 산헤드린이었던 것입니다.

관리들과 장로들과 (백성의 대표) 서기관 (성경을 필사하고 해석하는 자)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였습니다.

그들이 왜 이렇게 모여 큰 소동을 벌였을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건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요, 변명할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인정하게 되면 예수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옳았다는 사실을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죽인 장본인들입니다. 그를 신성 모독죄로 몰아 예수는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정죄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예수가 옳았다는 이야기는 결국 자기들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들이 모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무서웠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이 자기들을 떠나고, 사람들의 관심이 자기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실을 인정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예수님을 부인할 수도, 믿을 수도 없어서 고민하는 지성인들은 만납니다. 예수를 믿자니 지금까지 자기가 살아온 것이 다 틀렸다고 고백을 해야 하고, 또 자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안 믿자니 불안합니다. 양심이 소리를 지릅니다. 그리고 부인할 수 없는 일들이 자꾸 생깁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을 빨리 믿는 게 최선책입니다. 그 길 밖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부인하고 변명하고 피해 가려 해도 예수를 피해 갈 길은 없습니다. 그는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론이 아닙니다. 그는 철학이 아닙니다. 그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걷게 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체험한 사람은 자기 안에 어떤 영적인 변화가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데도 그 사람의 내면세계에 깊은 변화가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정말로 예수를 구주로 믿었는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 그 분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했다면 내 안에서 그 분은 변화를 일으키고야 마십니다. 그 분은 나에게 의로움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알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롬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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