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경과 생명을 위하여
온 인류가 피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명령을 기억하여 인간의 욕심이 아닌 하나님의 질서대로 환경을 다스리게 하소서
모든 생명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낙태와 아동 학대 등 생명 경시 풍조가 사라지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게 하소서
환경과 생명을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에게 지혜를 허락하셔서 효율적인 정책이 세워지게 하시고 교회와 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나를 이루어가게 하소서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행4: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행4:1-2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 사도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말하게 된 동기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베드로와 요한이 제9시 기도 시간에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킨 것을 목격한 모든 백성들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는 행각에 보이는 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 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2-16본문에 보면 베드로가 이렇게 설교를 할 때 싫어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들입니까?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행4:1-2처음으로 복음을 반대하고 거부한 세력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120문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말하였을 때, 그것을 목도한 많은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롱하며 ‘새 술에 취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일어나서 요엘 선지자의 말씀으로 그들에게 설명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나면서부터 40년간 걷지 못하여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권세로 벌떡 일어났을 때, 그것을 목격한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왔을 때 베드로가 이 기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통하여 일어난 것이라는 말을 했을 때 그것을 거부하는 세력, 비판하는 세력, 싫어하는 세력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제사장(아론의 직계 후손)들과 성전 맡은 자(레위인)와 사두개인들(제사장 문중 : 솔로몬 시절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예들) 입니다. 그들은 다 성전 안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부활 전하는 것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2절)……" 기독교에 있어서 복음전파의 핵심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그러니 부활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활의 도로 말미암아 제사장 및 사두개인에게 큰 손해가 돌아갑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먼저,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고 있습니다. 영혼불멸은 믿으나 육체의 부활은 믿지 않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모세가 일렀으되 사람이 만일 자식이 없이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에게 장가 들어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우리 중에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장가 들었다가 죽어 상속자가 없으므로 그 아내를 그 동생에게 물려 주고 그 둘째와 셋째로 일곱째까지 그렇게 하다가 최후에 그 여자도 죽었나이다 그런즉 그들이 다 그를 취하였으니 부활 때에 일곱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무리가 듣고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더라"
마22:23-33"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행23:8어떤 의미에서 말하면 바리새인들은 상당히 보수적입니다. 이에 반하여 제사장은 진보적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로마의 정치와 타협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딴에는 좀 더 깨끗하고 정결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사두개인은 로마의 권력과 타협을 함으로 자기의 위치를 지켜 나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는 교리적인 믿음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부정하나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기에 서로가 적대관계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는 하나 되고 연합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렇듯 만나면 싸우는 사이였습니다. 대립 관계에 있는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전하는 것은 기분이 나쁘지만, 내심 부활의 전파는 좋아합니다. 자기편이니까요.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에게 '봐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하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들이 지금껏 주장한 이야기는 다 거짓말이다. 부활은 있다. 천사도 있다'라고 주장할 수 있게 됩니다. 때문에 제사장의 입장에서는 베드로와 요한이 저렇듯 부활을 주장하는 것이 못마땅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세력이 높아진다는 것은 자기들의 반대당이 득세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 때문에 베드로와 요한이 부활의 도(道) 전하는 것을 싫어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당시의 제사장과 성전 안에서 봉사하는 레위 족속 사두개인은 귀족입니다. 부자입니다. 로마와 적당히 타협하면서 권력을 유지하고, 귀족의 신분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로마의 보호를 받아가며 특권을 누리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들은 기존 질서가 변혁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자는 여당이 아닙니까? 언제나 귀족은 여당편입니다. 정치가 흐릿하고 경제가 어둡고 해도 돈 많은 사람들은 기존질서가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은행에 저금해놓은 그 많은 돈, 정치가 흔들리면 다 휴지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어쩌고저쩌고 해도 여당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가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야당편입니다. 옛날의 선거구호 가운데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배고파 못 살겠다 갈아보자' - 사실 무책임한 소리입니다. 위험한 소리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사람들은 심지어 공산당도 OK입니다. '공산당이 들어선다고 해서 이보다 더 못살라고' 합니다. 그래서 까짓 것 바꿔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귀족은 그 개혁을 거부합니다. 안정을 원합니다. 될 수 있는 대로 변혁을 원치 않습니다. 변화가 없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나타나서 저렇듯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다닙니다. 이것이 사회에 영향을 미칩니다. 나아가 기존의 질서를 흔듭니다. 사두개인들은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귀족적 지위와 부를 지켜나가는 데에 베드로와 요한이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요한을 붙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도 주님을 가장 잘 섬기고 주님을 위하여 살아야 할 사람들이 가장 주님을 반대하는 복음의 반대 세력이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계속 보면 재미있는 한 가지 진리가 나타납니다. 그것은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장과 축복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핍박과 고난이 아니라 내부의 비판과 분열과 거짓과 위선인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교회 성장을 반대하고 있는 것은 교회 자체입니다. 오늘날의 교회 성장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나 타 종교인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그리스도인 자신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오히려 방해하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놀라운 진리를 발견합니다. 진리를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라면 모든 사람들이 좋아해야 될 것이 아닙니까? 선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환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진다면 모두들 환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진리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소유한 사람이 거추장스럽고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진리가 그렇게 기쁜 것이 아닙니다. 불의한 사람에게는 정의로운 사람이 기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사람들은 선을 거부합니다. 어두움의 사람들은 빛을 거부합니다. 그들은 어두움에 있기를 원합니다. 어두움의 현실이 그대로 유지되기를 원합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선과 정의와 진리를 비판하고 도전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가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가 걷고 뛰며 찬양하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 그 사람이 내 아들이 아니고, 내 친척이 아니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 해도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었다면 함께 축복해 주어야 할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이 축복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사도들이 가르친 내용이 그들의 비위를 건드린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했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큰 위협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축복과 놀랍고 기쁜 소식이 그들에게는 불행한 소식이었고 저주스러운 사건이었으며 자기들이 파멸되는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왜 그들은 복음에 대해 거부 반응을 보였을까요? 왜 기뻐해야 할 일에 대해 그렇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게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세 가지로 추측됩니다.
1예수가 부활했다면, 그리고 예수가 기적을 일으킨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자기들이 지금까지 주장했던 모든 신앙이 허구로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진리를 거부합니까? 자기가 위선자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가 죽었고, 부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백성들에게 예수를 하나님을 모독한 신성 모독자, 죽어 마땅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죄목으로 고소를 해서 재판에 넘겼습니다. 그리고 그 죄목으로 예수를 죽였던 것입니다.
사실은 자기들이 손해 보기 때문에, 자기들의 위치가 불안해지기 때문에 그들은 그렇게 거짓으로 선동하여 예수를 죽인 것입니다. 예수는 계속해서 죽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들에 의하면 예수는 무덤에 갇혀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예수는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부활과 기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들의 모든 행위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들의 불안과 괴로움이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기대와 생각과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했을 때 권위와 자존심과 체면을 버리고 솔직하게 잘못했다고 시인하는 사람을 보면 참 아름답습니다. 진정한 용기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잘못한 줄 알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변명하고 그것을 인정하기를 싫어하고 결국에는 할 수 없이 그 사실을 인정할 때 조차도 구차하게 변명합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추하고 불쌍합니다. 아무리 자기를 보호하려고 변증을 해도 다른 사람은 다 압니다.
자신의 잘못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하나님께 그 사실을 고백할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회개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십니다. 회개는 심판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회개는 스스로 죄를 책임지라는 말이 아니라, 죄를 인정하라는 말입니다. 책임은 하나님이 져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2자신들의 안전과 인기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메시아요, 부활하신 분이요, 기적을 베푸신 분이라면 자기들의 신앙의 허구성과 위선이 드러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위치가 흔들립니다. 자기의 위치가 흔들리면 생활에 문제, 즉 생존권을 위협 당하는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리 옳은 것이라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생존권 문제에 부딪히면 진리를 대담하게 주장하지 못합니다.
또 그들이 예수님을 인정하면 모든 사람의 관심이 누구에게 집중되겠습니까? 예수님께로 집중될 것입니다. 그가 살아나신 분이요. 기적을 일으키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신세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점이 그들에게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내면적인 동기는 자신들의 신앙의 허구성이 드러남과 동시에, 현실 문제에 위협을 받고 자기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위기감을 느낀 데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진리란 진리 자체 보다는 그 진리와 연관된 자기의 이해관계에 있습니다. 자기 이해관계에 상반되면 사람들은 누구든지 진리를 쉽게 포기하거나 포기하지는 않더라도 왜곡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는 많은 왜곡된 진리들, 위장된 진리들, 변형된 진리들이 존재합니다. 그것들이 우리의 현실과 삶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곡되고 위장되고 잘못된 진리들은 우리에게 능력과 평안을 주지 않습니다. 위장된 진리는 힘이 없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능력이 되지 않습니다.
3신앙의 허구성과 위선이 드러난다든지 자기의 위치와 삶이 위협받는 것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을 바로 영적인 이유입니다.
그들이 복음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영적인 이유 때문입니다. 영적인 이유란 무엇입니까? 사단은 그리스도를 거부합니다.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후4:4죄는 어두움을 좋아하고 빛을 거부합니다. 참 빛, 세상의 빛을 추방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단은 그리스도와 직접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대면하면 그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감히 어떻게 피조물인 사단이 하나님을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단은 교활하여 자기가 사용하는 사람을 사용하여 그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듭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거부하게 합니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싫어하게 합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과 집단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대항하며 하나님을 욕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렇게 합니까? 그 사람 속에 역사하는 사단입니다.
전도를 할 때 어떤 사람들을 만나 그리스도를 전해보면 그리스도를 아주 열정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유는 없습니다. 맹목적으로 예수를 싫어합니다. 그런 자리에는 사단이 아주 촌스럽고 무식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쟁이면 무조건 극히 미워하는 사람을 통해서 마귀가 다 드러납니다. 본능적으로 예수를 대항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사람들은 아주 지성적으로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 학문적으로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 합리성과 이성을 동원해 아주 세련되게 예수를 거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교활한 악마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귀들은 지성인 사회에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지성인들은 자기의 지성이 우상이고, 자기의 학문이 우상이기 때문에. 그리고 자신의 삶이 촌스러운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격이 있기 때문에, 그 격에 자기가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면의 깊은 곳에는 마귀가 있어서 그들의 영혼과 인격을 쥐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지성을 뒤흔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주 멋있고 그럴듯하게 학문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신학 안에 들어와 있는 귀신은 아주 무서운 귀신입니다. 그들은 성경의 이름으로 성경을 거부합니다. 기독교의 이름으로 예수를 거부하면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한 사람의 휴머니스트로, 성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를 거부하는 가장 영적인 깊은 원인은 사탄의 영향력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종교 전문가라 해야 할 이 제사장들과 사두개인들과 성전 맡은 사람들이 가장 종교적이고, 가장 합리적인 이유로 메시아를 거부하고, 메시아를 재판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시아가 다시 살아나서 부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부인할 수 없는 결정적인 부활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또 거부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지성에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참으로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023년 6월 12일 오전 5:4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