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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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1.

예수님의 보혈로 이 땅을 덮어 주셔서 우상 숭배의 죄악들이 끊어지게 하시고 교만과 자살과 음란의 분열의 영이 묶임을 받고 떠나가게 하소서

2.

창조의 질서를 부정하는 비성경적 법률이 제정되지 않게 하시고 복음으로 남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3.

인간의 탐욕으로 깨어진 창조의 아름다움을 회복시키사 저출산과 기후 문제가 해결되게 하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3:11-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행3:11

나은 사람 :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입니다.

앉은뱅이로 태어나 날마다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았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병환자를 깨끗게 하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손이 마른 자를 펴 주셨을 뿐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시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3장에 나타난 이 사건은 색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아닌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실 수 있다는 데는 모두가 동의합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그렇게 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고, 베드로는 인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역사하시면 베드로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즉 사도행전의 이 사건은 베드로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2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남김이 없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단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었을 때 모든 백성이 크게 놀랐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달려 나아가 솔로몬 행각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이 기적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첫째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의 반응입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다고 합니다. 놓지 않을 생각으로 단단히 붙잡았습니다. 어떻게 놓칠 수 있겠습니까? 사십 년이 지나도록 앉은뱅이로 지냈기에 평생을 그렇게 살다 죽을 줄 알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이 자신을 건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전은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한번 놓치면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꼭 잡은 것입니다.

이 사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병은 나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벌떡 일어서기는 했지만, 베드로가 누군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릅니다. 어떤 이유로 자신이 낫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모른다는 말입니다.

둘째, 앉은뱅이가 뛰어다니는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사람들은 믿을 수도, 있을 수도 없는 이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너무 놀라서 솔로몬 행각이라는 곳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문제는 무엇입니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과 똑같은 문제입니다. 그들도 기적을 보고 놀랐지만 그 기적이 어디서 왔는지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역시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행3:12

베드로와 요한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기들에게 집중되자 베드로와 요한은,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온 것처럼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할 때 침묵합니다. 긍정도 하지 않지만 부정도 하지 않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러한 영적인 위기가 닥쳐왔을 때 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이것이 초대 교회에 일어났던 첫 번째 기적에 대한 간증입니다. 베드로는 본문 12절에서 두 가지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는 것입니다.

왜 이상하게 보느냐, 이상할 것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설명합니다. 그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기에 전혀 이상할 것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사람이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를 주목할 것 없다는 것입니다. 이상히 여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죽은 사람도 살려내시는데 그까짓 앉은뱅이 하나 못 일으키시겠습니까? 그러니 이상할 것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생각하면 이상할 것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보니 깜짝 놀랄 일이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평범한 사건입니다.

특별히 베드로가 "왜 놀랍게 여기느냐"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라고 질문을 하게 된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나병환자를 깨끗케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나면서부터 소경 된 사람을 눈뜨게 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승천 하신 뒤, 오늘 성령으로 베드로와 함께 하십니다. 베드로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께서 그 일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이 오늘날 자신들을 통하여 연장되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이 오늘날 교회를 통하여, 베드로를 통하여, 아무 것도 아닌 인간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바로 이해한다면 이상할 것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는 보이지 않게 역사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 많은 이적을 행하시는,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예수님이신데 앉은뱅이 하나 일으키시는 것쯤이야 문제없지요. 그래서 베드로가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상히 여길 것이 전혀 없다고 말입니다.

둘째, 이렇게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이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베드로의 간증입니다. 분명히 베드로는 앉은뱅이가 구걸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불쌍히 여겨, ‘우리를 주목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습니다. 그러자 그가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일어났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앉은뱅이를 그 자리에서 일으킨 사람은 분명 베드로였습니다. 그래서 이 앉은뱅이는 너무 고마워서 베드로를 붙잡은 것입니다.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베드로를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기적의 주인공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은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능력이 아닙니다. 여러분, 피아노 소리가 났다고 합시다. 그 소리는 피아노 스스로 낸 것이 아닙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낸 것입니다. 그런데 피아노 치는 사람은 생각지도 않고 피아노만 보고 앉았단 말입니다. 이것이 그릇된 자세입니다. 언제든지 중요한 것은 그 뒤에 있는 인격입니다. 이적도 그렇습니다. 이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시어 능력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개인에 대하여 존경을 보낼 것도, 이상하게 여길 것도 없습니다. 놀랄 것도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 앉은뱅이가 일어난 것은 내가 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일이다. 그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베드로의 간증은 ‘이 모든 일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모든 간증하는 사람의 간증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의 간증을 들어보면 주님은 간 곳 없고 자신만 드러냅니다. 다 자기 얘기를 하며, 자기가 이렇게 잘났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렇게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의 영광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예수를 잘 믿게 되면 자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나는 꼭 팔삭동이 같다.’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하는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것입니다. 기적이 나타났다면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는 것은 자기가 제일 잘 압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하셨다고 말할 때는 은혜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감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했다고 말할 때는 섭섭한 게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교회에는 섭섭한 사람이 참 많아서 섭섭한 것을 달래는 것이 목회라고 까지 말합니다. 왜 섭섭할까요? 내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님이 계시면 섭섭하지 않습니다.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자기 의사가 의사 결정에 반영되건 아니되건 하나님께서 영광만 받을 수 있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진짜 삶입니다. 그것이 진짜 초대교회 모습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겸손하고 위대한 한 위인을 만나는데,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

요1:19-23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

요1:26-27

우리가 생애가 언제 가장 위대해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 자신을 숨길 때입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삶을 통해 나타날 때 우리의 생애는 아름답게 완성될 것입니다.

베드로의 두 번째 간증은 참된 기적이란 개인의 능력이나 경건에서 비롯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개인의 인격 수양이나 정신 수련을 통해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기적은 인간이 개발하고 발전시키고 도를 닦아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수양을 한다고 선해지지 않습니다. 산에 가서 몇 십 년씩 금식하며 기도한다고 해서 인간이 신이 되지 않습니다. 인간은 역시 인간입니다.

참된 기적과 구원은 인간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기적입니다.

2023년 6월 7일 오전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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