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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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1.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셔서 닫혔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2.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슬람의 전략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이 땅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3.

영혼을 속이고 어둡게 하여 멸망시키는 이슬람의 악한 영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게 하소서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행3:5-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행3:5-6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앉은뱅이를 향하여 말씀합니다. "우리를 보라." 그러자 앉은뱅이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봅니다. 그 모습을 본문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5절)" - 무엇을 얻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베드로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밖에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를 보라" 했으니 당연히 무엇을 주려나 하고 바라볼 수 밖에요. 돈을 줄 것인가, 금붙이를 줄 것인가 하고 기대감을 가지고 쳐다봅니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인가보다, 무슨 큰 것을 하나 주려나 보다 하고 좋아서 쳐다보는데 엉뚱한 말이 나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이 말을 듣는 순간에 앉은뱅이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쓸데없는 사람이 별 소리를 다하네, 없으면 그냥 지나갈 일이지 자기를 쳐다보라 마라는 왜 해'-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도 그 앉은뱅이는 크게 실망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순간에 이어서 아주 의외의 말이 나옵니다.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6절)"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릅니다. 이 사람은 돈을 몇 푼 받아서 살아가니까 삶의 근원적인 해답이 되지 못하나, 주님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 사람 팔자를 고치는 것은 앉은뱅이를 고쳐 주시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우리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것보다 근원적이 문제 해결책인 예수의 이름이 있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

막16:17-18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1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3:16

중세의 유명한 토머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네가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말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금으로 기둥을 만들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엄청난 하나님의 집을 지었다. 우리의 교회는 땅도 많이 가지고 있다. 건물도 가지고 있다. 금과 은이 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은 잃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와 유혹이 어디에 있습니까? 교회도 세상처럼 돈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를 구제로 교육으로 해결하려는 것입니다. 구제와 교육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이 원하는 것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또 한 가지 세상이 갖고 싶어 하는 것과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주고 싶어 하시는 것과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받고 싶어 하시는 것과 일치해야 합니다.

교회는 반드시 구제해야 합니다. 가난한 자와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구제 단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육 단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병을 고처야 하지만 의료 기관은 아닙니다. 교회는 세상을 개혁해야 하지만 개혁 단체는 아닙니다. 교회는 이 시대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지만 정의 실현 단체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만 그것들이 가능하도록 영적으로 뒷바라지 해야 할 뿐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본질입니다.

교회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소유하며, 그 능력을 전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거기에 교회의 본질이 있습니다. 교회의 위상이 있습니다. 더 나아가려는 유혹을 절제해야 합니다. 그 이하로 떨어지는 위기를 막아야 합니다. 교회가 자기의 영적인 위상을 지키고 있을 때, 영적 대각성이 일어납니다.

그것이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났던 영적 대각성인 것입니다. 그것이 미국의 무디나 챨스 피니나 조나단 에드워즈나 존 웨슬레와 같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났던 한 시대의 영적 대부흥, 영적 대각성인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교회가 감당해야 할 이 시대의 사명입니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행3:7-8

여기서 베드로의 놀라운 위대성을 봅니다. 그는 앉은뱅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면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조용기 목사님 소련 성회 때, 공산당 서기장이 참석 했는데 휠체어를 타고 왔다는 것입니다. 그때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저 서기장을 향하여 외쳐라’ 처음에는 순종하실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성령님이 말씀하셔서 서기장을 향하여 외쳤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서기장은 일어서시오.’ 그래도 가만히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판사판입니다. 그래서 또 외쳤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서기장은 일어나 걸으시오.’ 몇 번을 외쳤더니 휠체어에 앉았던 서기관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 일어나 걷고, 나중에는 자기가 타고 왔던 휠체어를 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른손을 잡아 일으켜 주어야 하는 것처럼, 처음 믿은 사람도 얼마 동안은 손을 잡아 끌고 다녀야 합니다. 나중에는 자력으로 다닙니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행3:9-10

그를 본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그들은 앉은뱅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사실은 그가 지금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뛰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모습에 백성들이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1한 사람의 변화가 사람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사람이 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사람은 유식한 사람도, 부자도, 권력자도 아니었습니다. 잘생긴 사람도 아닙니다. 별 볼 일 없는,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되는 사람입니다. 오히려 있으면 귀찮은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초대 교회에 지진을 일으켰습니다.

한 사람이 변하면 세상이 변합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수가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무게는 의인 열 사람의 무게와 똑같습니다. 예루살렘의 죄악의 무게는 한 사람의 의인의 무게와 똑같습니다.

그는 성전 문간에만 사십 년 있은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성전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성전에 들어가 그는 제일 먼저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그가 앉은뱅이였음을 알아본 사람들이 눈앞에서 그의 뛰고 걷는 것을 보고 하나같이 놀랍니다.

여러분 본문말씀을 자세히 보십시오. 베드로의 이적으로 사십 년만에 처음 걷게 된 그는 베드로에게 감사하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나한테 나타난 사건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잘살게 됐다, 자유 하게 됐다, 소원성취 하게 됐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적의 목적이요 구원의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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