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실종되고 죽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생필품과 약 그리고 거처를 공급하여 주시고 지진 복구가 잘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한국에서 긴급 파송한 구조대가 지진 복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3:1-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 새"
행3:1오늘의 본문은 "제 구 시 기도시간에"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유대의 시간 법은 이렇습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을 기준으로 시간을 정하고 있습니다. 해가 뜰 무렵이 한 시요, 해가 질 무렵이 열두 시가 됩니다. 따라서 여섯 시는 정오가 됩니다. 이렇게 미루어볼 때에 '제 구 시'는 우리의 시간으로 오후 세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보십시오. "제 구 시 기도시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규례에는 하루에 세 번 기도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으로 오전 아홉 시와 정오, 그리고 오후 세 시, 이렇게 세 번 기도합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하루에 세 번이나 성전에 가서 기도하면 일은 언제 하나요? 그래서야 먹고 살 수나 있겠어요?"하고 궁금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하루에 세 번 모두 성전에 나가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중에 한 번만 성전에 가서 기도하면 됩니다. 이렇듯 유대의 규례에는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루 세 번의 기도시간에는 잠시 일을 멈추고 기도를 드립니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세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온 유대사람이 아홉 시 땡하면 기도합니다. 열두 시 땡하면 기도합니다. 세 시 땡하면 기도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일시에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밀레의 만종이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밀레가 그 그림의 배경으로 삼았다고 하는 들녘을 직접 가보고, 그가 살던 집에도 한번 들어가 보았더니 참으로 가난하고 어렵게 살았더랍니다. 불후의 명화인 만종이 바로 그 초라한 부엌에서 그려졌다고 합니다. 요즘은 환경이 얼마나 좋습니까? 사람마다 훌륭한 아틀리에를 꾸며놓고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도 밀레의 그 그림만큼 훌륭한 작품이 좀처럼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밀레는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그 생활을 그림에 담은 것입니다. 그 그림을 자세히 보세요. 일을 하다 잠시 멈추고 고개 숙여 기도하는 두 남녀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단순히 참 경건하다고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뒤쪽으로 멀리 종탑이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종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제대로 그림을 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들녘에 종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땡하고 성당의 종소리가 울릴 때에 모든 사람이 일시에 손을 멈추고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도시간입니다. 상상을 해보세요.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제 구 시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를 하기 위하여 성전에 올라갔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 믿는 기독교인입니다. 이제는 율법에서 벗어나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아직도 유대의 관습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그 관습을 행합니다.
물론 나쁠 것은 없습니다. 좋은 관습은 계속 지켜야합니다. 성전에서 기도하고, 하나님 앞에 죄를 고하고, 회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좋은 관습이기에 비록 유대의 관습일지라도 그들이 계속 지켜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구 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독교인이면서, 예수를 믿으면서 더 경건한 유대사람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율법을 더 엄격하게 지켜나가고자 노력합니다. 때문에 비록 갈릴리사람들이지만 기도시간인 제 구 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간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기적을 준비합니다. 기도는 기적을 잉태합니다. 기도는 기적을 낳습니다. 기적을 바라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적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병 낫기를 원하고, 사업이 잘되기를 원하고, 자식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 등 인간적이고 본능적인 욕구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기복 신앙과 아무 것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무당의 신앙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기적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기도하는 자에게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길거리를 지나가는 아무에게나 복을 주시기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그 사람을 준비시키신 후에 복을 주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 충만을 받았지만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러 갔기 때문에 하나님은 베드로와 요한을 위해 한 사건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은 어떤 영적인 사건을 예비하십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 영적인 사건은 바로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만나는 사건이었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행3:2본문을 보면 사람들이 이 사람을 메고 와서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다고 했습니다. 미문이라면 성전 안에서 있는 이방인의 뜰에서 여인의 뜰로 들어가는 길목입니다. 그곳에 이 앉은뱅이를 날마다 데려다 놓는 이유는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기도하려는 사람들의 자비로운 마음에 호소하여 구걸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그곳에 앉아 있으면 그럭저럭 얻고 먹고 살 수 있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아침에 그를 메어와 성전 미문에 앉혀놓았다가 저녁에 다시 메고 갑니다. 이렇듯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해서 먹고사는,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불쌍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앉은뱅이의 나이가 사십 세였다고 합니다 (행4:22).
그에게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요, 나이는 사십 세요, 구걸하는 자입니다. 그러니 그는 당연히 얻어먹을 자격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십 년 동안 얻어먹고 살다보니 이제 이 사람은 완전히 얻어먹는 체질이 되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성전 미문에 떡하니 앉아 있는 앉은뱅이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성전 안에서 무엇을 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설교를 하는지, 제사를 드리는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는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왜입니까? 자기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 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인 나는 축복 받지 못한 사람이다. 이제 더는 그것이 조상 탓인지 내 탓인지도 관심 없다, 어쨌든 나는 불행한 사람이다, 잘난 사람들 다 들어가 예배드려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라고 생각합니다. 성전 안에서 되어지는 일에는 전혀 관계없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을 뿐입니다. 뿐만 아니라 누가 지나가는 것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큰 사람이건 작은 사람이건, 제사장이건 죄인이건, 세리건 마태건 베드로건,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손 내밀고 앉았다가 그저 몇 푼이라도 주면 고맙고, 안주면 그만이지요.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주면 주는가보다, 안주면 안주는 가보다 할뿐입니다. 주면 그저 '고맙습니다'라고 한 마디 하겠지요. 그것으로 끝입니다. 적선 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죄인인지 의인인지, 예수를 믿는지 유대교를 믿는지 알 바 아닙니다. 오로지 그는 자기 손에 주어지는 동전에만, 그 구제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철저하게 소외당한 사람이요 마음이 다친 사람이요 물질만 생각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 전에 들어가서 은혜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은혜와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은혜를 받았으면 돈이나 한푼 주시오, 하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행3:3그 때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 들어섭니다. 그들을 보고 앉은뱅이가 손을 내밉니다. 그에게는 지나가는 사람이 베드로인지 요한인지 알 바가 아닙니다. 가룟 유다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손을 내밀 뿐입니다. 적선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 사람이 예수님 당시에도 미문 앞에 앉아서 동냥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도 여러 번 보았는데 그때는 고치지 않았어요. 모든 일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간구하고 기도할 때 즉시로 응답오지 않는다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에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어둡고 힘든 삶을 살아도 기도하고 때를 기다리면 좋은 때를 주시는 것입니다. 구걸하는 앉은뱅이가 오랜 기간 동냥하고 있었는데 때가 오니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항상 기도하며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행3:4베드로와 요한이 지나갔을 것인데. 이 사람이 구했기 때문에 응답한 것입니다. 이 세상 앉은뱅이가 한 두 사람이 있나요? 그가 구하니까 베드로와 요한이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알아서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해야 줍니다.
디매오의 아들 소경 바디매오가 동냥하는데 구하기 전에는 예수님이 지나가셨습니다. 지나가신 후에 예수님인 것을 알고 소리를 치니까 주님께서 발걸음을 멈추고 응답해 주신 것입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제사 드릴 양 떼 곧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
겔36:37-38"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마7:7-8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구해야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간절한 마음으로 열렬한 심정으로 구해야 합니다.
이 사람이 미문가에 앉아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도 있지만, 구했기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하나님께 응답을 받는 것도 하나님께 주목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123:1-2시간을 내고, 정성을 들여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집중적으로 기도하지 않고 산만한 마음으로 그저 몇 마디 해봐야 효과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집중해서 바라보고 기도하는 집중이 필요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