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가게 하소서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2-4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본문말씀은 초대교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말합니다.
1배우는 교회입니다.
2교제하는 교회입니다.
3초대 교회 성도들은 서로 떡을 떼었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먹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초대 교회에 이 아름다운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영적인 일만 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먹는 일도 곁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와 연결시켜 보면, 떡을 떼는 애찬이 단순한 먹자판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안에 있는 이 아름다운 교제권과 떡을 떼는 일을 먹자판으로 변질시킵니다. 동시에 어떤 이들은 먹는 일을 보고 시험이 들어서 ‘교회에서 먹는 일은 하지 말자. 뭐 그렇게 자꾸 물질적으로 가는가, 기도하고 말씀 듣고 가난한 자 도우면 되지. 그렇게 먹기나 하는 교제권은 필요없다’고 말함으로써 교제권을 삭막하게 만드는 잘못된 생각도 합니다.
여기서 떡을 떼는 일이란 배불러 먹기 위한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 없어 동냥하고 구걸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말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아름다운 교제권을 만들기 위하여 떡을 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을지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판단 받는 모임이 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밖의 일들은 내가 언제든지 갈 때에 바로잡으리라"
고전11:33-34아마 당시에는 음식이 있으면 먼저 온 사람이 다 먹어 버렸나 봅니다. 먼저 온 사람이 다 먹고, 늦게 온 사람은 먹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음식을 독점하고서 맛있는 것만 골라서 먹어 버립니다. 그것이 고린도 교회의 시험 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성도들에게 먹으러 모일 때는 서로 기다려서, 혼자 독식하거나 배불리 먹지 말고, 남에게도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를 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먹을 모일 때는 서로 기다리라. 더 재미있는 말이 그 다음에 있습니다. “만일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 가서 먹으라. 교회는 배불리 먹기 위해서 있는 곳이 아니라” 교회에서 음식을 먹는 모든 일은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 섬김, 서로간의 나눔과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하는 것입니다.
넷째, 기도에 전념하였습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성령 충만을 받으면 기도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들의 신앙 태도와 모임의 결론은 언제나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성령의 교제를 나누고, 음식을 나눈 후 그들은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분명히 이 기도는 개인적인 기도이기보다 중보 기도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이 모여 아픈 자들과 형제들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위해, 민족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을 것입니다.
기도는 성도들의 생명 줄입니다. 여자가 아이를 잉태하면 그 아이는 엄마 뱃 속에서 독립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엄마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어 아이의 생명은 전적으로 엄마에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은 창조하셨을 때 그는 스스로 독립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오직 인간은 하나님과 관계하며 자라도록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기도는 어머니의 탯줄과 같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전화선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젖줄과 같은 것입니다. 기도는 물이 저주지에서 우리 집으로 흘러 들어오기 위해 필요한 파이프와 같은 것입니다. 기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함께 먹은 것도 먹는 것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제권을 위한 것이었고, 사랑의 나눔을 위한 것이요. 그것을 통해 섬기는 연습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언제나 기도였습니다.
바로 이 말씀을 배우는 일과 성도의 교제와 떡을 떼는 것과 전혀 기도에 힘썼던, 이 단순하고 간단한 내용이 모든 교회와 모든 크리스천 모임의 원형이 되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교회란 이 네 가지 모습의 삶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배우고, 성도의 교제권을 갖고 (아픈 자와 병든 자와 여러 가지 도울 자를 돕는 일은 이 교제권 속에 포함됩니다), 떡을 떼며, 전심으로 기도에 힘쓰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왜 타락합니까? 이 네 가지 원형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성도의 아름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을 대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43절입니다.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행2:43사람마다 두려워하였습니다. 이 두려움은 경건을 내포한 것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무서움이 아닙니다. 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수2:9이하를 보면 기생 라합이 여호수아가 보낸 2명의 정탐꾼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2:9-11그렇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고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을 전멸시킨 일을 듣고 가나안의 일곱 족속들은 그들을 심히 두려워하고 간담이 녹아버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우리처럼 아름다운 건물도 조직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것은 오직 성령 충만이었습니다.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초대 교회는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습니다. 2천년전 초대 교회에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오늘날에도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혼하려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혼을 포기하고, 미워하던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화해하는 역사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도 기적이고 장님이 눈을 뜨는 기적도 기적이지만 깨어진 가정이 화해하는 것도 기적입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행2:44-46그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모였습니다. 얼마나 좋았으면 매일 모였을까요? 그들은 누가 오라고 하지 않았는데 날마다 나왔습니다.
경북 춘양 - 두메 산골에 사는 어떤 어린이 - 학교만 다녀오면 반드시 교회를 들러서 기도하곤 왔습니다. 그 학생에게 하나님이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시골 학교에서 최초로 서울 대학에 합격하게 해 주셨고, 졸업후 삼성에 취업하여, 삼성이 주는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 유학가서 박사학위까지 받아 오게 되었습니다.
은혜 받은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는 예배가 끝나고 보면 압니다. 예배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교회에 남아서 기도하고 봉사하는 성도가 은혜 받은 성도요, 예배가 끝나기 바쁘게 돌아가는 성도는 은혜 받지 못한 성도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행2:47그들의 삶은 찬양이었습니다. 입술로 찬양하고 마음으로 찬양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기쁘지 않으면 찬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습니다.
무릇 예수 믿는 사람은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달라"하는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어디에서건 어느 때에건 모든 사람들로부터 신임 받고 존경받고 칭찬 받아야 합니다. 칭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칭찬 받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임과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 자연히 그 교회는 교회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오늘의 본문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교회 부흥은 사람이 억지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는 하나님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신다고 오늘의 본문은 말씀합니다. 특별히 전도운동 안 해도 날마다 부흥합니다.
한경직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교회는 은혜가 있고 싸움만 안 하면 절로 부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은혜가 있고 싸움만 안 한다면 그 교회가 부흥 안 될 리 있겠습니까? 사실 그리고도 부흥 안 된다면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 되면 날마다 부흥합니다. 부흥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회에 구원의 은혜를 더하겠다고 하십니다. 이렇듯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하는 것입니다.
2023년 6월 3일 오전 5: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