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북한을 위하여
북한의 주체 사상이 무너지게 하시고 남북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분단의 아픔에서 해방되어 복음적 평화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북한 전 지역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고 북한 전역의 3만 8천 여 개의 동상과 우상들이 철거되며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14만 지하교회 성도들과 수용소에 있는 성도들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고 영양부족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북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이 말씀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말씀입니다. 참교회의 모델은 어떤 것인가 할 때에 우리는 언제나 성령 충만했던 초대 교회를 떠올립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바로 그 초대 교회의 모습을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으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의 교훈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 몸소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많은 교훈을 남기셨습니다. 그러나 그 교훈의 연속으로 교회가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생활철학에 기초를 해서 교회가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 위에서 교회는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 문제를 두고 신학적으로 설명하고자 책으로 몇 권을 써도 모자랄 만큼 많은 학자들이 토론하고 분석하고 비판했습니다.
도대체 교회란 무엇입니까? 교회가 예수님의 생활철학에서 온 것입니까, 예수님의 교훈에서 온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사건에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그에 따르는 부활을 총칭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이라고 합니다. 그 역사적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의 산 증거를 통해서 교회는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께서 임하신 바로 그 시각부터 이루어진 것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예수님의 교훈을 생각하면서 모였던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믿고 모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옛날에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참 좋은 말씀이었지'하고 그 말씀을 다시 새기러 온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시고 승천하신 뒤, 오순절에 성령으로 오셔서 그들의 생활 속에, 그들의 심령 속에 살아 계십니다.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14:20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체험하고 모였던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오늘날에 보면 교회됨의 의미를 잘못 생각함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교회는 무슨 좋은 말씀을 들으려고, 어떤 생활의 규범이나 윤리를 배우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교회는 생명을 얻고자 나오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고자 나오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는 오늘의 본문말씀을 들어서 초대교회의 특징을 네 가지로 말합니다.
첫 번째는 '배우는 교회'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이 먼저 무엇을 했습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은사주의자들의 문제는 말씀없이 신비한 영적 체험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흥분은 있으나 뿌리가 없습니다. 감정은 있으나 말씀이 없습니다.
말씀이란 우리 신앙생활의 뼈대와 같고 뿌리와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은 물거품과 같습니다. 말씀이 없는 신앙생활은 열매 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와 같습니다. 허수아비와 같습니다.
그들은 누구에게 말씀을 배웠습니까? 사도들로부터 말씀을 배웠습니다. 누구에게 말씀을 배우느냐가 중요합니다. 어디서 배웠느냐가 중요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사도가 아닌 거짓 선생에게 배운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교회에서 인정하는 직분을 가진 사람, 예를 들면 구역장이나 교사 이외의 사람에게 배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배우는 것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가르친다는 사람들이 어디서 왔는지, 무슨 말씀을 가르치는지 전혀 종잡을 수 없는 경우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이단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누구에게서 어떻게 배웠느냐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평범하게 들리지만,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합니다. 흔히 주관적 체험에 만족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어떤 놀라운 종교적 체험을 했더라도 내가 받은 그 체험을 말씀 공부를 통해서 다시 객관화하지 않으면 그 체험은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체험을 했든 간에 그것을 성경에 비추어 보기 전에는 말해서는 안됩니다. 본인에게도 득이 되지 않습니다.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령한 체험이 바른 것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깊이 공부해야 합니다.
'배우는 교회' '공부하는 교회'가 바로 초대교회의 첫 번째 특징입니다. 여기서 배운다는 것은 신학적으로 말씀드리면 주관적 체험에 말씀에 대한 객관적 교육이 합쳐진 것입니다. 나아가 배운다는 것은 겸손을 의미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아는 것도 없으면서 다 안다고 생각하고, 더는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고개를 숙이고 배웁니다. 이 같은 자세가 중요합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무척이나 겸손했습니다. 겸손했기에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사도들, 즉 가르치는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갈릴리의 어부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말을 빌자면 불학무식한 사람들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하여 불학무식하다고 거침없이 비난했습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십시오. 그 불학무식한 갈릴리 어부들이 무엇을 제대로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성령이 충만하여 베드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요한 앞에 나아가 겸손하게 말씀을 받았습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지금 그들은 세상 이야기나 듣자고 모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교훈이, 예수님의 생애가 재미있고 흥미 있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모인 것입니다. 성경을 배우기 위하여 모인 것입니다. 베드로와 및 사도들이 성경을 풀어 가르쳤기에 그들은 그 어부들 앞에 나아와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겸손입니다. 진정한 겸손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보기에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지만, 성령 충만한 저들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들에게 나아가 성경을 배우고 예수님을 배우는 일에 힘썼습니다.
두 번째는 교제하는 교회입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행2:42말씀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세워줍니다. 그리고 교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세워줍니다. 어떻게 교제가 이처럼 가능했을까요?
삼천 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각각 학력과 출신지방, 성격과 지적 능력 등 모든 것이 달랐을 것입니다.
우리도 역시 많은 사람들과 만납니다. 사람들과의 만남에는 좋은 경험보다는 나쁜 경험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성도의 아름다운 교제를 갖는 일은 신앙생활에 있어 설교를 듣고 성경 공부를 하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모습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교제란 무엇입니까? 어떤 교제를 하는 것입니까? 세상 사람들에게 있어 교제란 식사나 술자리를 같이 하는 것입니다. 또는 음악회가 예술적인 작업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을 가리켜 교제라고 합니다.
그러면 성령 받은 성도의 교제란 무엇입니까?
"보면 축도가 나옵니다."
고후13:13을"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고후13:13그들은 이 성령의 아름다운 교제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도를 온전히 하나 되게 하고, 지체가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게 하는 놀라운 하늘의 교제권을 받았을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먼저 구원받아 거듭나고 성령 충만 받는 것은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꼭 해야 할 일은 교제권 속에 들어가는 일입니다. 나는 주일만 지키지 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성령의 아름다운 교제권 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상처 주지 않는 교제, 서로 섬기는 교제, 하나 되게 하는 교제,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가 되었듯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하나가 되었듯이, 여러분들도 이런 아름다운 교제를 체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힘은 말씀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령의 아름다운 교제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2023년 6월 2일 오전 4: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