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분열된 한국 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 교회가 기도함으로 영적 위기를 돌파하게 하시고 멈추어버린 전도의 사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2:37-3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행2:37그들이 ; 오순절 성령 세례 현장을 목격하고 놀랐던 사람들,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던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에 찔려
성령님이 역사하시니 위대한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고 대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죄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4:12"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2:34-35설교를 듣고도 마음에 찔리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설교 듣고 은혜 받았다는 말을 하지요? 그것이 바로 찔린 것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들으면서 계속 콱콱 찔려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개가 푹 수그러져야 합니다. 순간순간 찔리면서 모든 것이 내 잘못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 자신의 문제로 와 닿는 설교, 내 마음을 찌르는 설교가 성령이 하시는 설교입니다.
'찌른다'라는 말은 내 문제가 여기서 다루어진다는 말입니다. 나와 무관하게 느껴졌던 것이 바로 나 자신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은 말씀 속에서 자신의 죄인된 모습이 노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밝은 빛 앞에서 더러운 것이 다 노출되는 것같이 말입니다.
옷이 얼룩지고 때가 묻어 더러워도 캄캄한 곳에서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밝은 빛 앞에서는 다 드러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보통 때에는 다 의인 같고 다 잘난 것 같습니다마는 밝은 빛 앞에서는, 권세 있는 설교 앞에서는, 말씀의 빛 앞에서는 죄인임이 드러납니다.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은혜를 받으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한국에서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갔다가 결혼한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똑똑한 사람끼리 결혼해서 그런지 늘 싸웠습니다. 싸우다 싸우다 별거를 시작했습니다. 한 집에서 딴 방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집에 살았습니다. 별거를 오래 하다 보니 이것도 못할 짓이라, 하루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답니다. “이혼하자.” 절대 사과할 여자가 아닙니다.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에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흥회를 마치고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기간에 그만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보니 모두가 자기 잘못입니다. 전에는 모두가 남편의 잘못이었습니다. 남편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럽고, 괴로웠는데, 은혜 받고 보니 모두가 내 잘못입니다. 남편이 내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생각하니 이혼을 해도 먼저 사과를 해야겠다고 생각 했습니다. 드디어 부흥회를 마친 날 차를 타고 남편 집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현관문을 열어주면서 이혼서류를 내밀더라는 것입니다.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자 집사님이 남편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답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전에는 모두가 당신 잘못인줄 알았는데, 은혜를 받고 보니 모두가 내 잘못이었어요. 내 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나요? 미안해요. 용서해 주세요. 이혼을 해도 좋은데, 용서를 해 주세요.” 남편이 말없이 이혼 서류를 찢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결합했는데, 전에는 결혼 생활이 지옥 같았는데, 지금은 천국 같더라는 것입니다.
본문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 베드로의 설교말씀을 들은 뒤에 마치 밝은 빛 앞에서 더러운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저들의 죄인된 모습, 그들의 더러운 모습이 그대로 노출됩니다. 죄인된 자신의 모습에 참지 못한 그들은 결국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묻습니다. 우리가 어찌하면 좋겠느냐고 부르짖습니다. "What shall I do?" - 내가 어찌하면 좋을까 하고 묻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 마음, 이 반응이 베드로 설교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오순절이라고 했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 불과 50일밖에 안된 때입니다. 아직 두 달이 채 안됐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십자가사건을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는 장면을 목도한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베드로가 설교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셨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행2:36그들을 향하여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수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입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가 누구입니까? 대제사장 가야바가 무리를 선동을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도록 사형을 선고한 사람은 로마 총독 빌라도 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한 사람은 로마군인입니다. 또 한 사람 가룟 유다가 관계되어 있습니다. 물론 대제사장의 선동을 받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지른 사람들 역시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가담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그들을 제쳐두고 설교를 듣고 있는 무리들에게 너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의 대부분은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온 경건한 유대인들입니다. 아마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선생, 말조심하시오. 내가 언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소? 그런 끔직한 소리하지 마시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본문을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베드로가 말씀하자, 그들은 스스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음을 인정하고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묻습니다.
이 관계가 아주 중요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네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는 말을 듣고 "그렇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언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소?" 한다면 그 사람은 은혜에서 제외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을 보십시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은 나 때문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내 탓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행2:38베드로가 '우리가 어찌할꼬?'하고 부르짖는 자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은 그들은 다시금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대로 순종합니다.
설교는 아주 중요합니다. 여기에 생명의 역사가 있습니다. 설교를 하고 설교를 듣고 그 설교에 그대로 순종합니다. 여러분, 교회란 무엇입니까?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를 거룩하게 하시는 곳이 교회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성도의 속사람을 살리고 성장시키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요17:17"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요6:63바른 말씀이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기에 교회인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교인입니다. 그 관계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인된 우리는 그 말씀을 들으면서 깨달아지고 마음에 찔릴 때에 바로 순종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큰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가니 누군가 와서 문을 두드리더라는 것입니다. 문을 열어보니 교인 한 분이 서 계시는데, 목사님을 보자 대뜸 할 말이 있다고 하시면서 정색을 하고는 대듭니다. 체면도 예절도 없이 "내가 잘못한 것을 누가 목사님에게 고자질했습니까? 오늘 하신 말씀이 분명 저를 두고 한 것 같은데 도대체 그 사실을 어떻게 아셨습니까?" 하고 욕설을 섞어가며 마구 대듭니다. "나는 당신의 이름을 모릅니다. 그러니 당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고자질한 사람도 없을 뿐더러, 고자질했다고 해서 그것을 두고 설교하지도 않습니다"라고 설명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다고 우기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마음에 찔렸으면 회개할 것이지, 그것을 두고 대드는 것이 말이 됩니까? 자기가 뭔데 목사님이 그 많은 교인 가운데 그 사람만 두고 설교하겠습니까? 굉장한 교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이것이 바로 설교를 잘못 듣는 자세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설교는 은혜의 관계입니다. 설교를 들음으로 속사람이 계속 성장해나갑니다. 그래서 무디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항상 기뻐하면서 설교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고용해서 쓰시고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시고 계시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사람이 마음을 열어 받아들여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확실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의 확실한 믿음 속에 설교가 있고 교회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듣는 사람,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순종하고 기도하는 만큼 여러분의 마음속에 말씀의 역사가, 생명의 역사가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 심령이 치유받고 구원받고 자유하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2023년 5월 31일 오전 6: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