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동성애를 두고 기도합니다.
동성애를 옹호하며 하나님이 세우신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문화적 기류가 끊어지게 하시고 이를 긍정하고 지지하는 거짓과 궤변들이 무너지게 하소서
미디어를 통해 미화되는 동성애의 실체가 드러나게 하시고 다음 세대들이 동성애에 빠지지 않도록 가정과 교회가 더욱 깨어 기도하게 하소서
한국교회가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 동성애와 포괄적 차별 금지법을 막아내게 하시고 동성애가 합법화되지 않는 거룩한 나라가 되게 하소서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2:25-2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베드로 설교의 첫 번째 주제는 성령 세례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으로 옛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이었고
두 번째 주제는 성령 세례는 예수님의 삶,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결과라는 것이었고
세 번째 주제는 증인입니다.
본문 3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행2:32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되기 위해서는 먼저 경험해야 합니다. 경험하지 않고는 증인될 수 없습니다.
책을 통해서 얻은 것이나, 남에게 들은 간접경험으로는 안됩니다. 내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내 귀로 직접 들은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직접 체험한 자만이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증인될 수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여러분, 내가 내 눈으로 보고 체험한 것이 반드시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오늘도 아침에 해가 동편에 떴다가, 저녁이 되면 서편으로 지는 것을 봅니다. 그렇지만 사실은 해가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해를 돌고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에 지구는 평평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지구가 둥급니다. 우리 눈에는 무지개가 산에 걸려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산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떠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보는 눈은 정확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평가하는 모습이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는 모습이 바로 여러분의 참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참 모습을 보기를 원하시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저의 모습을 바로 알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저의 모습을 보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잘못된 것을 고칠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여러분, 본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체험했다고 경험했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셔야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2:14성령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정확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깨닫게 해 주셔야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아야 증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즘 보면 범죄현장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증인 좀 되어달라고 하면 모른다고 발뺌하기 일쑤입니다. 손해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것이 문제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뵙고 성령을 받음으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일백이십 문도가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겉으로 보기에는 간단한 한마디의 말에 지나지 않지만, 무척이나 하기 어려운 말입니다. 왜입니까?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이 아직은 시퍼렇게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리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죽인 자들을 정죄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보십시오. 로마가, 빌라도가 예수님을 죽였습니다마는, 예수님께서는 의인이신 고로 사망에 매여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에 증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저들은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고 목숨을 걸고 나섭니다. 저들은 예수님처럼 죽는 것까지도 불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부활할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증인입니다.
29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행2:29"담대하게 말할 수 있노니" 담대하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담대하게 증거할 수 있는 이유는 성경적 증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경험한 것만이 아니라, 성경적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담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경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성경적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 받은 것만으로는 담력이 충분치 못합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확신이 설 때에 비로소 담력이,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행2:25다윗의 시인 시편 16:8-11을 인용한 것입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이는 주께서 내 영혼을 스올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를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임이니이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16:8-11다윗은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요동합니까? 성난 바다와 같지 않습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누가 압니까? 일본에 그렇게 엄청난 쓰나미가 덮칠지 누가 알았으며, 미국이 9. 11 사태로 인하여 세계 무역 센터가 한 줌의 재가 될 것을 누가 알았으며, 투르키예와 시리아에 그렇게 엄청난 지진이 날 줄을 누가 알았습니까?
이렇게 요동하는 세상에서 요동하지 않고 살아가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죽음을 정복하신 부활의 주님을 보게 되면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옵고, 내 우편에 계신 주를 뵈면 요동하지 않게 됩니다.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은 늘 내 앞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만이 늘 우리 와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믿으시면 아멘!
흔들리는 세상을 보지 마시고,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님, 내 우편에 계신 주님을 보시고 요동치 않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행2:26다윗은 내 마음이 기쁘다고 했습니다. 어찌 세상에 기쁜 일만 있겠습니까? 눈물 날 일도 있고, 고통스러운 일도 있고, 오해도 있고, 여러 가지 실수도 있고, 영광스러운 날도 있고, 수치스러운 날도 있지 않겠습니까? 건강할 때도 있고, 병들 때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가 감옥에 있든지 감옥 밖에 있든지, 모든 일이 잘되었든지, 잘못되었든지 간에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한 것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환경을 초월한 기쁨)"
시4:7"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빌4:4-5이 외침은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외쳤던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성령 충만을 받으심으로 성령이 주시는 기쁨, 환경을 초월한 기쁨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다윗은 ‘내 혀도 즐거워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시편에서는 ‘영광이 즐거워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의 입술에 하나님의 영광이, 찬송과 감사와 기도가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의 혀는 저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밤낮 불평하고, 비판하고 욕하는 사람들 말입니다. 그 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혀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다윗은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라고 했습니다.
어찌 썩어질 육체가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11:45-46)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고전15:42-44그러므로 우리의 육체가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다윗의 고백을 들어 보십시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행2:26-27인간의 가장 깊고 본질적인 즐거움이란 무엇입니까? 인간의 행복이나 즐거움의 본질은 내 눈을 만족시키고, 내 귀를 만족시키고, 내 입을 만족시키고, 내 몸뚱아리를 만족시켜 주는 데 있지 않습니다.
솔로몬 왕은 그 모든 것을 다 만족시켰지만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고 했습니다. 그런 것을 가지면 좋기는 하겠지만 내 영혼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불안합니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고독해 하며. 외로워하며, 불안해 하느냐?’
무엇이 없어서 불안해 합니까? 아닙니다. 인간 영혼의 깊은 곳에는 하나님이 없는 불안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에 대한 불안이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그 불안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행복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식에 있습니까? 지식이 여러분을 만족시켜 줍니까? 사람의 박수 소리와 명예가 여러분을 만족시켜 줍니까? 그런 것에 진정한 평화가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본문 말씀에 의하면 진정한 인간의 평화는 하나님이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내가 지옥에 안 간다는 사실, 내 영혼이 구원 받았다는 이 사실 앞에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고, 춤을 추며, 내 영혼 깊은 곳에서 감사와 기쁨이 넘쳐 나는 것입니다.
정말로 구원받은 사람은 너무 기뻐서 자다가도 일어나 “하나님, 제가 정말 구원받았습니까? 제가 정말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단 말입니까? 제가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하나님, 정말입니까?” 이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내가 음부에 버려지지 않았다. 나는 지옥에 안간다.’ 이것이 참된 기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