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육신과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여 치료 받게 승리하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 더욱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숨겨두신 보화를 발견함으로 더 복된 삶을 누리게 하소서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2:23-24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행2:23사도 베드로는 설교 가운데 십자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6:14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생각하게 됩니다. 과연 기독교인이란 누구입니까?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알고, 십자가를 구원의 유일한 길로 여기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인 것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님께서 주신 교훈이 좋고, 예수님의 철학이 좋아서 나는 예수님처럼 살랍니다, 하고 따라 다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진정으로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님의 십자가에 담긴 의미를 바로 알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는다는 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 안에서 나 대신 죽으신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제사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십자가 안에서 생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어찌 보면 처형당한 죄수의 모습이요 가장 부끄러운 이야기요 가장 저주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십자가를 영화롭게 받아들일 때에 비로소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영광의 십자가로 믿고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설명하는 십자가를 한번 자세히 보십시다. 십자가는 accident가 아니라는 것을 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확실한 계획 속에, plan속에 되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행2:23"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1차 목적지 : 시내산 (3개월 만에 도착하여 시내산에서 무려 8개월을 머물며 2가지를 합니다. 율법을 주시고, 성막을 제작하게 하십니다)
율법을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고, 성막은 제사를 통하여 깨달은 죄를 사함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를 범한 자마다 속죄제, 속건제를 드려 죄 사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 제물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것은 저 앞에 있을 십자가에 대한 그림자요 예표요 그림자입니다. 만약에 십자가사건이 없었다면 제사는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본체 없는 그림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십자가 사건을 오랫동안 예언되어 내려오던 것이 오늘 여기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정, 예지 가운데 십자가 사건이 있었다, 따라서 십자가는 절대 실패가 아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도망가려 하시다 잡힌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피할 도리가 없어서 그만 올무에 걸려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요즘 보니 어떤 사이비 교단이나 이단 교단에서는 '예수는 정치운동 하다가 제자에게 팔리는 바람에 그만 서른 셋의 나이에 죽고 말았다, 예수는 실패했지만 나는 성공한다'라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고 나서기도 합니다. 이 얼마나 잘못된 일입니까?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십자가는 실패가 아닙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그 드라마의 클라이맥스가 십자가사건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온전한 것이요 계획된 것이요 있을 일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데서부터 그리스도인입니다.
십자가란 하나님이 정하신 뜻이요, 구원의 계획입니다. 그것은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이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준 바 되었거늘’이라는 말을 보면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십자가란 무엇입니까?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어 못 박아 죽인 것’이었다고 베드로는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니라 로마인들이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베드로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은 이런 것입니다. ‘너희들은 죄 없다고 하지만 사실은 너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것이다. 그들이 죽인 것이 아니라. 너희들이 죽였다.’
예수님을 죽인 것은 거기에 서 있던 유대인들이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입니까?
예수를 다른 사람이 죽였다고 할 때는 십자가가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를 죽였다고 말할 때는 보통 일이 아닙니다. 내가 당사자일 때는 나는 의인을 죽인 살인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유대인이나 로마인이 죽인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가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2:24베드로 설교말씀의 세 번째 주제는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병자를 고치기도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시고, 거친 바다를 잔잔케도 하시고…… 여러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베푸셨습니다. 그러한 이적을 통하여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적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가 하나님이다, 메시야다, 위대한 분이다, 우리 구주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적이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저가 우리의 구주 되신다고 하는 것을 증거 하셨다고 강하게 지적합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부활사건 안에서만 이적기사가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이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이적사건이 뭐 그리 대단하겠습니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여봤댔자 하루 지나면 다시 배고플 것을, 장님 눈뜨게 해봤댔자 좀 있으면 죽을 것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아마도 죽었다가 나흘만에 살아났다고 하는 나사로일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번 죽기도 힘든데 나사로는 두 번씩이나 죽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장례비용도 만만찮게 들었을 테니까요. 사실 살아봤댔자 별것 아닙니다. 그러니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일,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구제하고 봉사하셨다고 아주 추상적으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을 찾아다니시면서 먹을 것 주시는 것을 보았습니까? 그렇다면 성경을 안 읽어본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구제한 일이 없으십니다.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환자를 고치셨다고는 하지만, 예수님께서 만난 환자만 환자랍니까? 정말 고치시려거든 유대의 모든 병자들을 다 고치실 일이지, 몇 사람 고치신 것 가지고 되겠어요? 하실 양이면 80세까지 사셔서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셔야지 3년 가지고 되겠어요? 이러한 이적이나 구제로는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증거 하는 데에 역부족입니다. 결국, 십자가와 부활만이 그것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되심을 증거 했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주되심의 증거가 십자가와 부활에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2:36사람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따라서 그 죄는 여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4:25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일으키셨다는 것을 베드로는 거듭 강조합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32절)." 우리가 십자가에 못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부활하셨습니까? 하나님이 사망의 고통의 빗장을 열어 주셨기 때문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를 사망의 고통 속에 집어넣고 빗장을 걸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빗장을 예수에게 걸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삼일 후에 그 빗장을 풀어 주신 것입니다. 즉 사망의 고통을 풀어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입니다.
또한 성경은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에 얽매어 있을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부활이십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의 죽음도, 사망의 고통도 예수를 묶어 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망의 고통을 풀어 주시기는 했지만 예수님은 원래 죽음에 머물러 있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신 것입니다. 모든 악의 세력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그는 무덤에 갇힌 분이 아닙니다. 살아 계신 분입니다.
예수님이 사망에 얽매일 수 없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우리도 사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고통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마귀에게 얽매일 수 없습니다. 질병에 얽매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어떤 것으로도 얽매임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사망에 묶어 둘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사망에 묶어 둘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신 것입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롬8:11그러므로 항상 성령 충만을 받아 성령을 좇아 행하므로 성령의 능력으로 항상 승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5월 27일 오전 6: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