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 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능력의 종이 되게하소서
교회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더 열심을 내게 하소서
코로나로 인한 사역 환경의 위기 속에서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그들의 수고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행2:12-13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사도행전 2장 1절로부터 오순절사건을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 오순절사건은 큰 사건이고, 작은 오순절이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사건들이 사도행전 곳곳에 네 번에 걸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로 모두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행4장 31절을 보십시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작은 오순절사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8장 14절 이하에도 보면 사마리아에 작은 오순절 사건이 있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4절로 48절에 보면 고넬료의 집에 이 오순절사건이 나타남을 볼 수 있습니다. 이방사람의 집에도 오순절 같은 사건이 있어서 모두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마지막으로 19장 6, 7절에 보면 에베소사람들이 성령을 받아 방언을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듯 작은 오순절사건이 사도행전에 네 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것은 다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오순절사건을 생각해보십시다. 성령께서 강림하신 이 오순절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순절은 유대사람들이 소중히 지키는 3대 절기 중의 하나입니다. 유대에는 일주일에 걸쳐 지키는 아주 중요한 절기가 셋 있습니다.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 그것입니다. 이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여서 그 절기를 다함께 지킵니다. 온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사람들까지 가능한 한 다 모여서 그 절기를 지킵니다. 특별히 여기에는 유대사람들의 영향을 받아서 이방종교를 버리고 유대종교로 개종한 이방사람들도 참예합니다. 따라서 이 절기에는 히브리 종교와 이 종교에 가담된 모든 사람들이, 민족적으로는 각 나라의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아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임으로 온 세계에 소문이 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듯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바로 그 시간, 3대 절기 중의 하나인 오순절을 선택해서 성령께서 임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오순절에 맥추(麥秋)감사절이 들어 있습니다. 사실상 이스라엘사람들은 감사절을 두 번 지키는 셈입니다. 저들이 추수하는 모든 곡식 가운데 첫번째로 추수할 수 있는 곡식이 바로 보리입니다. 보리를 거두어들인 다음에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절기가 오순절입니다. 그리고 가을에 가서는 일 년 동안 지은 모든 곡식을 다 거두어들인 다음에 다시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립니다. 이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감사절을 두 번 지키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이 오순절은 비록 여러 곡식을 다 거두어들인 뒤에 지내는 것은 아니지만, 첫 번째 거두어들인 곡식이라는 점에서, 첫 것을 바친다는 점에서 의미상으로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감사절이 됩니다. 그런 의미로 저들은 오순절을 가장 즐거운 절기로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유대사람들의 절기가 다 즐거운 것만은 아닙니다. 유월절만 해도 그렇습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나올 당시의 고생을, 그 출애굽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쓴 나물만 먹습니다. 비스킷 같이 바삭바삭하기만 한 누룩 없는 빵과 함께 쓴 나물을 먹습니다.
이런 것을 먹으며 일주일을 보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저들은 애굽에서 한 고생을 잊지 않기 위해서 저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그것도 허리띠를 띠고 짐을 지고 먹으라고 합니다. 우리도 6·25 당시 피난 가던 일을 생각하면, 그 고생을 좀 재현할 필요가 있다 싶습니다. 경험한 사람들까지도 그 고생을 다 잊어버렸는데 후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꿈속에서조차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출애굽사건을 잊어버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이런 절기를 만드시어 일주일 동안은 이렇게 살라고 명하셨습니다. 쓴 나물만 먹고 지내는 고통스러운 일주일입니다. 정신적으로는 중요하지만, 육체적으로는 아주 고통스러운 절기입니다.
그런가하면 장막절은 이스라엘사람들이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유리방황하면서 고생하던 그 때를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때문에 모든 사람이 광야에 나가야 합니다. 광야에 천막을 치고 지내야 합니다. 광야에 못 나가는 사람은 마당에라도 천막을 치고 지내야 합니다. 집안에서 편하게 자면 안됩니다. 집에서 자면 경건치 못한 사람입니다. 이 절기 동안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천막 속에서 지내야 합니다. 뜨거운 광야의 한가운데서 말입니다. 이것이 장막절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 역시 고역스러운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천막 안에서 하루 종일 성경을 강의하는 것입니다. 일주일 내내 부흥회를 하는 것입니다.
오순절은 이 3대 절기 가운데 가장 즐거운 절기입니다. 먹고 마시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금년에도 곡식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첫 곡식을 바칩니다. 그리고 모두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찬송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계속 읽고 암송하고 가르치고 하는 것입니다. 추수와 함께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감사절입니다. 즐거운 절기입니다. 금식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고행하는 절기가 아닙니다. 바로 이 때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특별히 감사하는 바로 그런 시간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오순절 사건이 교회의 본체입니다. 여기서부터 교회가 시작됩니다. 오순절사건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일백이십 문도에게만 나타난 일이기는 하지만, 그 사건의 영향은 모든 사람에게 미칩니다. 보십시오. 방언은 일백이십 명이 하는데, 듣기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들었습니다. 몇 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다함께 들었습니다. 각 나라에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각각 자기네 언어로 그 말을 들은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을 보면 무식한 시골뜨기라고 생각했던 갈릴리 사람들이 유창한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일을 말하는 것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였습니다. 이 귀한 사건 속에도 비방이 있고, 비난이 있고, 조롱하는 말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슬픔을 느끼게 됩니다. 왜 남의 좋은 일에 좋은 말을 못해줄까요? 왜 그 좋은 일을 두고 좋은 말로 반응을 보이지 못하는 것입니까? 보십시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옆에서 비꼬는 사람이 있습니다. 꼭 나쁘게 말하는, 비방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입니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눅6:26나쁜 사람으로부터 나쁜 말 듣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나쁜 사람으로부터 좋은 말을 들을 수는 없습니다. 선한 일도 나쁜 사람 앞에서는 비방 받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에게 비방을 받지 않았다면 그 일이 좋지 않은 일이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악한 사람이 좋아하는 일은 악한 일뿐이니까요.
보십시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것을 듣는 은혜스러운 그 시각에도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술에 취한 것처럼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을 흔드니까 조롱하기를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 고 했습니다.
사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일백이십 문도는 거의가 갈릴리에서 온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불학무식하거든요. 그래서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아그라마토이'라고 거침없이 조롱한 것입니다. 불학무식한 사람들이 유식한 말을 하고 굉장한 말을 하고 담대한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는 것을 보고 새 술에 취했다고, 미쳤다고 비아냥거린 것입니다. 흔히들 유식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전하면 듣는 사람들은 '아, 이 사람, 공부 많이 하더니 잘도 아는구먼'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불학무식한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전할라치면 '무식한게 뭘 알아'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들도 무려 15개국의 유창한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하는 일백이십 문도를 두고 새 술에 취했다고 비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