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분열된 한국 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 교회가 기도함으로 영적 위기를 돌파하게 하시고 멈추어버린 전도의 사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1: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누가는 사도행전이 시작되는 첫머리에 두 가지 사건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었는데, 하나는 예수님의 생애였습니다. 이것은 누가복음에서 자세히 기록된 내용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라면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구원이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것입니다. 그 분이 사셨던 삶, 우리를 위한 죽음, 죽음뿐만 아니라 다시 살아나심, 그 총체적인 것이 바로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도행전 1:1에 보면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서 지칭하는 ‘내가 먼저 쓴 글’이 바로 누가복음이고 그 누가복음의 내용이 바로 예수님의 생애를 의미합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1:1-2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님은 구원을 완성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완성하신 이 구원이 나에게, 여러분에게, 온 인류에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이들에게 이루어지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성령 하나님이 완성시키시는 것입니다.
누가가 소개한 두 번째 사건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부터 승천하시기까지 머무셨던 지상에서의 40일 기간의 일입니다. 이 40일의 시간은 예수님의 생애의 클라이맥스일 뿐만 아니라, 사역의 클라이맥스로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특별히 부활하신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신 그 40일의 시간은 땅의 시간이 아니라 땅의 시간과 하늘의 시간이, 그리고 땅의 사건과 하늘의 사건이 섞이는 그런 독특한 시간입니다.
이 40일 동안 예수님은 제자들을 만나셨고, 그들에게 예수님의 구원의 마지막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입니다. 이 명령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40일 간을 더 계셨고, 그 직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명령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일’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의 일이란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에게 부탁하신 말씀이요 모든 성령 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부탁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이루어지기 위하여 사도행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이 시작되는 이유는 바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이 두 가지 사건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이 성령의 놀라운 사건, 구원을 위하여, 지상 명령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그 약속”이 4-5절에 나옵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행1:4-5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 세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어떻게 온 인류에게 전파할 수 있게 됩니까? 어떻게 지상 명령이 실천될 수 있겠습니까? 팔레스타인에서 시작된 이 작은 사건이 어떻게 지구의 종말이 올 때까지 지구상의 전 인류에게 전파되는 일이 성취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받게 되는 성령 세례”라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가능합니다.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우리를 놀라게 하는 사실은 제자들이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성령을 받게 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합니다. 귀에 들려도 듣지 못하고, 깨우치려 해도 깨우쳐지지 않습니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16:12-13오늘 말씀을 읽는 분들 중에도 지금 읽고 있는 말씀을 정 목사의 설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1:6이것을 가리켜 우리는 동문서답이라고 말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 질문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성령 세례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으로 들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들은 “그럼,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말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님과 3년 동안이나 함께 살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직접 목격했고, 십자가 앞에서 좌절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이 엄청난 기적의 사건을 경험했던 그들이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온다고 해서 다 예수님을 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예수님을 모를 수 있습니다. 버틀런트 러셀 같은 사람은 성경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고 기독교 배경에서 태어나 기독교 문화 속에 자랐으면서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도 예수님을 몰랐던 사람입니다. 성경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알게 됩니다.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요일2:20"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요일2:272,000 년 전에 죽은 예수님이 어떻게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 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감동이 아니고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우리의 지혜와 지식과 경험과 이성과 상식으로는 그 분을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말씀을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 세례를 말씀 했지만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과 대화해 보면 계속 딴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듯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에만 있었습니다. 그것은 진실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소박하고 진정한 갈망이었습니다. 현실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의 압제 속에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자유를 빼앗긴 채 속국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속국으로 살아본 우리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자유와 독립이 그리웠겠습니까?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원이란 먼 데 있는 환상이나 이상이 아니라, 배고픈 자에게 오늘 빵 한 조각이 필요한 것처럼, 그들의 구원은 현실이었던 것입니다. “메시아가 지금 여기 있다. 그 메시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메시아를 본 것입니다. “메시아가 나타났다면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메시아는 있는 데 우리는 계속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으로 살 길이 없다. 독립이 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의 문제였습니다. 구원이 있다면 구원에 대한 삶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메시아가 있다면 나라의 회복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들의 갈망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주제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원과 빵의 문제입니다. “빵이 우선인가? 구원이 우선인가? 예수도 좋고 구원도 좋은데 우선 배고프니 어떻게 할 것인가? 독립이 우선이고, 빵이 우선이고, 경제적 자유가 우선이고, 정치적인 자유가 우선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나 이스라엘의 구원이 아니라 “너희들이 몇 날이 못되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받으리라”는데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관심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물질 문제, 자녀 문제, 건강 문제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