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환우들을 위하여
육신과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 받는 환우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여 치료 받게 승리하게 하소서
고난 가운데 더욱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이 고난 가운데 숨겨두신 보화를 발견함으로 더 복된 삶을 누리게 하소서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1:1-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사도행전은 신약 성경에서 유일한 역사서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역사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상, 역대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로 총 12권입니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역사서는 오직 유일하게 사도행전 1권 뿐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하신 이후 남아 있는 제자들을 중심으로 교회가 형성되는 과정 (베드로 중심)과 그 교회가 세계로 흩어지는 선교의 과정 (바울 중심)을 그린 역사서입니다. 4 복음서가 증인적 성격의 책이라면 사도행전은 역사적인 기록이면서도 기행문적인 성격의 책입니다.
이 사도행전은 예수 사건의 핵심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삶으로 체험한 사람들이 성령의 권능을 받아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에도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깊이 체험한 사람이 읽는 책입니다. 마치 그 옛날의 제자와 같은 심정, 이 예수를 전하고 싶은 충동을 갖고 읽는 책입니다. 일단 복음서를 통과한 사람이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몇 년에 걸쳐 요한복음, 마가복음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을 읽고 더 많은 도전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겁 많던 제자들이 이렇게도 용감해져서 폭발적인 힘으로 예수의 도를 전하는 것을 보면서 같이 신이 나서 밤을 새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만약 아직 복음서의 핵심인 주의 죽으심과 부활을 깊이 공감하지 못한 사람이 읽는다면 사도행전은 너무나 재미없는 책입니다. 지루한 책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지명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핵심이 창세기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3:15구약 성경이 창세기3:15 말씀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면 사도행전은 행1:8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2장)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8장)와 땅 끝까지 이르러(10장 이후)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기록한 사람은 사도 바울과 동행한 의사 누가입니다.
언제부터 (제2차 선교 여행 때부터) : 행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라 (가장 힘들 때 아시아 선교 문이 닫히고, 몸은 약하고 아프고, 사도 바울에게는 가시가 있어 간절히 기도했으나, 가시를 제거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시면서 의사 누가를 붙여주셨습니다. 내가 가장 힘들 때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 때에 더 가까이 계시고 더 큰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실 준비를 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행1:1-2먼저 쓴 글 (누가복음)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를 기록하였습니다. 바로 그 내용으로부터 인간의 역사 속에 일찍이 찾아볼 수 없었던 하늘의 역사, 성령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기록한 사도행전이 탄생한 것입니다.
자, 그러면 사도행전에 앞서 기록된 누가복음은 어떤 목적과 동기를 가지고 누구에게 쓴 글이었습니까? 그 점을 우리는 사도행전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알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눅1:1-4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 : fiction이 아니고, nonfiction입니다. 글 솜씨 좋은 사람이 지은 작품이 아닙니다. 어떤 대학 교수의 연구의 결과도 아닙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입니다.
말씀의 목격자 (수많은 목격자) 되고 일꾼 (12제자)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누가가 직접 목격한 것이 아니라 목격자와 일꾼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한 책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1-3"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이 예수님의 생애에 관하여는 누가 이전에 먼저 기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예를 들면 마가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글로 남긴 다른 목격자와 일꾼들처럼 누가도 새로운 동기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이 복음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누가가 누가복음을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기록한 목적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알았던 사실, 배웠던 사실, 체험하고 믿었던 사실들을 확신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3:14확신 가운데 거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알고 있으면 마귀에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당장에 흔들려 선악과를 먹게 됩니다)"
창3:1-5아브라함 : 확신 가운데 거했습니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롬4:19-22다니엘 : 확신 가운데 믿음으로 사니 기적적인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20:32대부분의 전기는 한 사람이 살아 있을 당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종종 그 사람이 죽은 후에 그와 관련한 비화들을 발굴하여 전기 형태로 쓰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그가 이런 때에 이렇게 이렇게 했다더라’하는 그가 살았을 때에 한 일을 좀 더 자세하게 쓰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누가가 쓴 글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생애를 사셨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며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누가가 쓴 글은 죽은 사람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라, 죽었는데 다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시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죽은 이후에 다시 살아서 어떤 역사를 하셨는데, 그것은 우리 인류가 살고 있는 역사와는 전혀 다른 질의 역사, 다른 질의 삶, 철저하게 다른 놀라운 기적과 새로운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지금 누가가 1부작을 끝내고 2부작을 쓰는 목적입니다.
그러면 누군가 말했듯이 사도행전의 사건은 인류 역사상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신비스러운 사건입니다. 이 사도행전이 얼마나 기가 막혔던지 칼 마르크스는 이것을 복사해서 사용했습니다.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 사회, 즉 하나님이 없는 이상 사회가 바로 사도행전에서 복사해 간 사회입니다. 그만큼 이 사도행전은 천국의 사건이 이 지상에 임하여 일어난, 인류 역사상 전혀 새로운 역사와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놀라운 성령의 사회, 하나님 나라의 사회, 기적과 능력이 일어나는 새로운 역사가 바로 사도행전인데 사도행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가를 기록한 1부작의 내용을 필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가 지금 이 이야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잘 알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집중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첫 번째는 그의 탄생과 삶입니다. 두 번째는 그의 죽음입니다. 세 번째는 그의 부활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틀어 예수님의 생애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내용이 바로 누가 복음의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무엇입니까? 구원의 내용입니다. 즉, 그 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바로 구원이라는 말입니다.
특별히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4복음서 중에 제일 많이 기록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과 2장에 그것들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누가는 두 가지의 독특한 해석을 했는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탄생이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눅2:32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라고 했고, 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이외에도 세 복음서 저자들과 달리 누가가 예수님의 생애를 묘사할 때 특별히 보이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특별히 누가는 이방인에 대한 선교적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님이 이방인들을 어떻게 사랑하셨는가에 대한 기사에 관심을 더 많이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은 그 당시 사회 문제에 대해서 예민한 반응을 다른 복음서보다 더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가난하고 소외된 죄인들, 즉 세상에서 버림받은 소외 계층에 대해서 더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태가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면, 누가는 바로 이러한 소외 계층에 대해 특별한 애정을 가지신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누가는 연약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성들의 이름이 자세히 언급되는 것을 많이 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구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삶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오순절의 성령 사건, 사도행전의 사건의 주인공인 성령이 빠져 버리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어찌 그 분의 영이신 성령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단순히 성령 체험이나 신앙적인 환상, 방언이나 예언, 병 낫는 것과만 연관시켜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기를 시작하심부터가 있고 끝이 없습니다. 승천하고 끝난 날까지 라고 해야겠는데, 승천하신 날까지 기록했지, 끝나지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택하신 일꾼을 사용하여 행하시고 가르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행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가르치기만 합니다. 신학적, 철학적, 윤리적으로 가르치기는 하지만 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행하셨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고 병든 자를 고치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2사도행전의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행하며 가르쳤던 것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일으킨 일)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8-12따라서 오늘날에도 우리는 행하며 가르치는 것, 어느 것 하나도 등한히 여기면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성령으로 역사하시므로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자가 치료받고, 기도가 응답되며, 문제가 해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끝이 언제 납니까? 주님이 재림하시는 그 날에 끝이 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가르치지만 행함이 따라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귀신이 소리치고 떠나가고, 병든 자가 치료받고, 문제가 응답받아 해결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23년 5월 2일 오전 6: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