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이슬람 세력에 대하여
무슬림 가운데 역사하셔서 닫혔던 그들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미디어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하는 이슬람의 전략들이 무너지게 하시고 이 땅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이 복음을 듣고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소서
영혼을 속이고 어둡게 하여 멸망시키는 이슬람의 악한 영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떠나게 하소서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막15:4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어떤 분은 십자가를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십자가란 하나님께서 죄를 얼마나 미워하시는지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지 않으면 안될 만큼 죄를 미워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위하여 그 대가로 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벧전1:18-19"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5:8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할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조상 대대로 우리 인류를 괴롭혔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셨습니다. 죄, 질병, 저주와 가난, 죽음도 다 정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짊어지시고 몸 찢고 피 흘려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루어 주셨으므로 용서와 의와 영광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빌라도의 뜰에서 주님이 채찍에 맞으심으로 치료와 건강을 약속해 주었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무에 달려 죽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사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을 약속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심으로 죽음도 정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향하여 담대하게 외칠 수가 있습니다.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고전15:55-56따라서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셨는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1:22-24우리는 지금까지 십자가를 묵상해 왔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자 지나가는 자들이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였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함께 희롱하기를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였습니다.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 중 한 사람도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모욕을 당하면서도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오후 3시가 되자 큰 소리를 ‘내가 다 이루었다’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을 시체를 달라하여 자신의 새 무덤에 장사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무덤을 떠나지 않고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여인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막15:47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서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온 여인들이었습니다. 평소에 예수님을 좇았던 무리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다 뭔가를 바라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병 고침을 바라고, 귀신을 쫓아 주심을 바라고, 예수님의 덕분에 한 자리 할 것을 바라고 예수를 좇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저 멀리 갈릴리에서부터 좇아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자신의 유익을 바라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다 도망을 갔지만, 예수님을 섬기기 위해 왔던 이 여인들은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 둔 곳을 보더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제자들도, 아리마대 요셉도 다 떠났는데 사랑하는 예수님을 잊지 못해 무덤 앞에 앉아 있는 두 여인의 마음을 헤아리게 됩니다. 우리는 이 여인들에게서 참된 사랑과 믿음, 헌신, 그리고 용기가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몰론 분명한 것은 이 여인들도 십자가의 비밀을 다 깨달았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믿었던 사람들도 아닙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 서로 말하되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에서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막16:1-3"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예수님의 부활을 믿었다면 크게 기뻐해야지 근심할 리가 없습니다)"
눅24:1-4이 여인들이 끝까지 남아 있어 예수 둔 곳을 보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님이 무덤에 갇혀서 아무 능력과 기적도 보여 주지 못하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사랑하였기에 그 무덤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큰 일이 있으면 열심을 냅니다. 일이 없으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를 주면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자리를 주지 않으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입장을 세워주면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입장을 세워주지 않으면 슬그머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은 바른 사랑이 아닙니다. 일이 있거나 없거나 주님을 향하여 있는 사람, 교회 봉사할 때에도 직분이 주어졌거나, 주어지지 않았거나 주님이 너무 좋아서, 주님을 너무 사랑하여 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일, 사역에만 머리가 세뇌되어 있습니다. 사역이 있어야만 주님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관계입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눅10:38-42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사는 목적이 예배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하리라.”
출애굽기 8장 1절, 8장 20절, 9장 1절, 9장 13절에 보면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을 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살게 하라.”가 아닙니다.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예배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내 사업, 내 직장, 내 자녀 교육, 내 부부 생활보다 예배가 더 귀합니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4:23-24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정말 사랑하기 때문에 봉사하고 계십니까? 부부란 무엇입니까? 그저 그냥 곁에 있어주는 것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나, 기분이 나쁠 때나 한결같이 같이 곁에 있는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름다운 부부의 모습입니다.
이 여인들에게서 발견하는 아름다운 믿음은 무엇입니까? 무슨 일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너무나 빚진 것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시체를 향하여 무덤을 향하여,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며 눈물 흘리면 넋 빠진 채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이런 감사와 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일 중심적입니다. 거기에 무슨 사랑이 있겠습니까? 일은 있을지 몰라도 주님과 나와의 은밀한 사랑을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분이 큰 기적을 행하실 때에도 사랑하고, 그 분이 모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으실 때에도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셔야만 사랑하실 수 있습니까? 내 몸이 병들고,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에 주님을 멀리하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죽어도 주를 위하여, 살아도 주를 위하여, 영광을 받아도 주를 위하여, 수치를 당해도 주를 위하여 하는 것이 바로 이 여인들과 같은 믿음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님을 향하여 앉아 있는 믿음이 복된 믿음인 것입니다. 모두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쁘고 분주할 때에도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지키고 앉아서 새벽에도 저녁에도 기도하고 봉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4월 15일 오전 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