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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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과 다문화 가정을 위하여

1.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하시며 이들이 말씀과 기도로 훈련받아 열방의 선교사로 나가게 하소서

2.

다문화 가정을 축복하사 불신, 이혼, 폭력 등의 아픔을 겪지 않게 하시고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행복과 평안을 누리며 성장하게 하소서

3.

언어와 문화, 생활 습관의 차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로하사 출신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소서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15:42-4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막15:42-43

나무에 축 늘어져 있는 예수님의 시신을 장사를 지낼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을 갔습니다. 여자들만으로는 불가항력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분위기가 예수를 잡아 죽이는 분위기라 예수님의 시신을 장례지내면 공회와 모든 유대인들에게 미움을 받을 터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더구나 유대 사람들은 로마 총독의 허가 없이는 십자가에 달린 시체를 마음대로 장사지낼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감히 누가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저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하겠습니까? 거기가 어떤 곳입니까?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은 영락없이 나무에 달린 그대로 계셔야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어려운 시간입니까? 그 시신이 나무에 그대로 계시면 어떻게 됩니까? 새들이 와서 쪼아낼 것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땅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가슴에 묻고 싶은 장례를 지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그때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굉장한 재력가입니다. 그러니까 예루살렘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인 아리마대 사람이면서도 예루살렘에 자기를 위하여 새 무덤을 준비한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부활 시에 예루살렘 성전이 가까운 곳에서부터 부활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부자들은 예루살렘 성전 가까운 곳에 무덤을 사 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위해 파 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례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예언의 성취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사53:5-9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막15:43

존귀한 공회원이란 그 당시 산헤드린 회원으로서 재판할 수 있는 공적 지위가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로마 총독의 관정에 쉽게 들어갈 수 있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갈릴리 어부정도가 빌라도의 관정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문 입구에서부터 거절당합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요구할 때 총독이 쉽게 수락할 정도로 유력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입니다.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눅23:50-51

아리마대 요셉은 당시의 부패하고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과는 달리 선하고 의로운 사람입니다. 모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 산헤드린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주도하고 있을 때 저희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모든 직업을 다 버리고 신학교 가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선교사로 가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직장에 남아서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것은 또 하나의 십자가를 져야 하기 때문에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차라리 신학교에 가면 쉽고, 선교사로 헌신하면 쉽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 남아서 이 악의 구조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헌신한 사람들은 아리마대 요셉같이 귀한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고위 공직에 있거나 직장의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경건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을 가끔 만나게 됩니다. 큰 사업도 하고 재력도 든든한 사람이 겸손하게 주님을 섬기는 것을 봅니다. 은밀하게 구제하며 선교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을 봅니다. 정말 귀한 분들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고 소개합니다. 이 사람은 세 가지 면에서 아주 위대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눅23:51에 나타난 것처럼 그렇게 강한 여론과 그렇게 많은 정치적 압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사형에 반대했습니다.

2신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장사지내는 데 앞장섰습니다.

로마인들은 일반적으로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의 시체를 그냥 십자가에 매달아 놓아서 새의 밥이 되게 하거나, 연고자가 찾으면 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는 일은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어 산헤드린 공회원직을 박탈 당할 수도 있고, 그 재산을 다 빼앗길 수도 있었고, 그 사회에서 매장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어떤 린치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자리를 걸고, 자기 명예를 걸고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지낸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43절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세상이 전부인 줄 알았으면 그런 일을 하지 못했습니다. 설사 세상에서 재산을 다 빼앗기고 공회원 자리를 빼앗기고, 혹 매 맞아 죽는다 할지라도 천국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그러한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그 나라를 기다렸기 때문에 모험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를 믿어도 이기적으로 믿습니다. 크게 충성을 하지 못합니다. 헌금을 크게 하지 못합니다. 이웃도 크게 돕지 못합니다.

3그는 부자였지만 결코 돈의 노예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46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막15:46

이 사람은 돈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이 앞으로 묻혀야 할 무덤, 아주 값 비싸고 새 무덤, 한 사람도 장사해 본 일이 없는 그런 무덤을 예루살렘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무덤을 기꺼이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 앞에 헌금 하거나 봉사를 할 때 제일 좋은 것을 드리지 않습니다. 여유가 있어도 드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그만 두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에게 옷이나 무엇을 줄 때 정말 좋은 것은 안 줍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가 묻힐 좋은 새 무덤을 예수님을 위해 아낌없이 내어 놓았습니다. 장례를 치르려면 돈이 많이 들게 됩니다. 격식을 갖추어서 시체를 세마포에 싸야 하고 향을 발라야 합니다. 이 모든 비용은 이 사람이 다 감당하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놀라운 믿음입니까? 분명히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와 부활을 믿었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단순히 예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예수님의 시체를 뒤치다꺼리하는 믿음, 이런 충성스럽고 감격스러운 믿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리마대 요셉은 큰 공헌을 했습니다. 예수님에게 정상적인 장례를 치러 드린 것입니다. 세마포로 싸고 장례 절차를 거쳐서 장사 지내 드리고 돌로 닫았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의심받을 뻔 했습니다. 만약 장사를 지내지 않았다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그냥 가져가 버리고 부활했다고 조작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이 정식으로 예수님의 시체를 장사해 드림으로 부활을 더욱 확실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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