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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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1.

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실종되고 죽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2.

생필품과 약 그리고 거처를 공급하여 주시고 지진 복구가 잘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3.

한국에서 긴급 파송한 구조대가 지진 복구의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막15:22-26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막15:22

예수님을 처형한 장소는 해골이라는 뜻이 있는 헬라어로는 ‘골고다’ 라틴어로는 ‘갈보리’ 였습니다. 그곳 지형이 마치 해골처럼 생겨서 붙인 이름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을 처형하였다는 골고다에 가보면 돌산인데 마치 해골처럼 생겼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해골처럼 생긴 곳이 한 두 곳이 아닙니다. 개신교회가 예수님의 처형장소라고 말하는 곳도 해골처럼 생겼고, 카톨릭측이 예수님의 처형 장소라고 말하는 곳도 해골처럼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어느 곳이 예수님을 처형한 장소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소를 감추어 버리신 것입니다. 마치 모세의 시체를 찾지 못하게 감추신 것처럼, 예수님이 탄생하신 날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소도 감추어 버리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장소를 우상화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히스기야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왕하18:4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처형 당하신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죄 없으신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엡1:7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벧전1:18-19

찬254장

그 피가 맘 속에 큰 증거 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십자가의 보혈로 날 씻어 주소서

저와 여러분의 죄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다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여러분을 더 이상 정죄할 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8:1-2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막15:23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처형은 그 당시 로마뿐만 아니라 고대 아프리카, 애굽, 바사, 헬라 등에서 유행했던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고 치욕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로마 시민권자들에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예나 반란자, 극악한 강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 북아프리카 구레네에서 온 사람 시몬이 억지로 땀 흘리면서 지고 온 십자가를 로마 군인들이 땅에 깔아 놓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양손에 못을 박고 발은 포개어서 못을 박습니다. 그 못은 크기도 하지만 끝이 뾰쪽하지 않고 몽톡해서 망치로 치면 뼈가 부서지게 됩니다. 뼈가 으스러지면서 나무에 박히게 됩니다. 주님의 손에 자국이 생기면서 큰 못이 박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의심 많은 도마에게 손에 못 자국을 보여 주시며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주님의 손을 보면 자국이 있을 것입니다. 발을 포개어서 큰 못을 박으니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로마 군인들이 주님을 못 박은 후에 십자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몸이 축 처졌습니다. 예수님의 이마에 피가 흐르고 손에도 양 발에도 피가 흐릅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약 삼일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되는데, 탈진과 아픔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고 난 후 사흘째에는 절명하게 된다고 합니다. 고통과 탈진이 너무 심한 경우에는 자비를 베풀어 주는 방법으로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창으로 찔러서 죽음을 재촉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몰약을 탄 포도주는 사형수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마취제와 같은 것으로 로마 군인이 끔찍한 십자가형을 당하는 사형수에 대한 배려로서 시69:21 예언의 응답입니다.

"저희가 쓸개를 나의 식물로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

시69:21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의 모든 죄와 고통을 감당하기 위하여 마취재인 쓸개 탄 포도주조차도 마시지 않으시고 온전한 정신으로 그 고통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죄로 인하여 인간이 받아야 할 고통을 그 육체로 하나도 남김없이 다 당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마지막에 “내가 다 이루었다”고 외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모든 고통을 다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 값은 온전히 치루어 진 것입니다. 더 이상 갚을 것이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사랑과 어머니의 사랑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머니는 죽음의 구로를 통하여 자식을 낳으셨기 때문에 자식을 생명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큰 고통을 온전한 정신으로 다 당하시고 저와 여러분은 낳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생명같이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사49:15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막15:24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그 십자가 밑과 주변에서 일어난 일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이 처형되신 다음에 군인들이 그 옷을 나누어 가졌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옷이 너무 귀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군사들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죽은 사람의 옷을 전리품으로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군인들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기 전에 겉옷을 나누고, 속옷을 제비 뽑아 가졌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

시22:18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9:23-24

예수님은 그의 육체만 억울하게 죽임 당하신 것이 아니라, 그 육체의 치부를 가리는 속옷까지 다 빼앗기시고 빨가벗은 채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수치와 모욕을 예수님이 다 당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막15:25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인데 그때부터 12시까지 주님께서 희롱을 당하셨습니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머리를 흔들며 조롱했습니다. 주님을 조롱하던 사람들이 12시가 되자 더 이상 주님을 조롱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하늘이 칠흑같이 어두워졌습니다. 외경 베드로 복음에 보면 그때가 한낮이었는데도 너무 어두워서 사람들이 등불을 켜고 다녀야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유월절 절기이기 때문에 일식이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적으로 그런 흑암이 임한 것입니다. 빌라도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황제 폐하, 가공할 일들이 그 시간에 일어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검은 구름이 내려왔고, 전 예루살렘이 면사포에 가리우듯 구름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유대 민족들은 그 가공한 모습 앞에서 마치 죽음 앞에 직면한 사람들처럼 공포를 느꼈고 많은 사람들이 도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애굽에서는 큰 지진이 있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시간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 이상한 일이 세 시간이나 계속 되었습니다. 우리 시간으로 12시부터 3시까지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소리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이 말씀은 아람어인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버리셨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우리의 자녀를 버리지 않는데, 왜 하나님께서 외동아들 예수님을 버리셨을까요?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평소에는 하나님께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항상 ‘아버지, 아바. 나의 아버지여’라고 불렀지,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위에서는 ‘하나님’이라는 공적인 칭호를 불렀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개인적인 부르짖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의 모든 죄를 공적으로 짊어진, 공적인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26절입니다.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막15:26

로마의 사형 법에 따르면 십자가에는 죄목을 붙여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죄목이 붙었습니다.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는 죄패를 붙인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반발했습니다.

"유대인의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라 말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 하니 빌라도가 대답하되 나의 쓸 것을 썼다 하니라"

요19:21-22

게다가 요19:20에 의하면 그 죄 패는 모든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히브리어와 로마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붙여진 팻말이었지만 그 분은 진정 유대인의 왕이셨고, 온 인류의 왕, 만왕의 왕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어떤 분은 그 당시 세계어인 히브리어, 로마어, 헬라어로 번역된 것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히브리의 종교와 로마의 법과 헬라의 철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증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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