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3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가 기도와 예배의 영성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복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막14:47-5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베드로)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막14:47베드로가 잠을 자다가 눈을 떠보니 주위에 칼과 몽치를 든 사람들과 횃불을 든 사람들이 둘러서 있고, 가룟 유다가 예수님에게 입맞춤을 하고 있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칼을 뽑아서 순식간에 앞에 있는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쳤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고 잠을 자다가 문득 한 일이, 예수님을 위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한 일이지만 결국 예수님을 어렵게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가 그니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이 가는 것은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요18:8-9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성령님의 아무런 감동도 없이 ‘이것은 내가 교회를 위하여 하는 말이고 예수님을 위하여 하는 일이다’라고 하는 것은 교회를 유익하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교회를 사랑해서 한 일이고, 교회를 위해서 한 일이더라도 교회가 어렵게 됩니다. 무슨 말을 하기 전에,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기도하고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충동적인 행동을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적이요, 본능적인 행동을 합니다. 요즘 여러분이 하신 행동은 기도하고 하신 행동입니까? 충동적인 행동입니까? 육신적인 행동입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고 행하신 행동입니까?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충동적인 말을 하면 상대방이 상처를 받습니다. 본능적이고 인간적인 말을 하면 상대방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은 말을 하면 상대방이 치료를 받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이나 졸았습니다. 영적인 공백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는 칼을 빼어 충동적으로 앞에 있는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고 만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말고의 귀를 벤 것은 비극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드디어 그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이때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습니까?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26:52첫째는 검을 다시 집에 꽂으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지 않았다면 행동하지 마시고, 기도하지 않았다면 입을 닫고 말하지 마십시오.
둘째로,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무력으로는 결코 평화나 행복이 오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보복은 보복을 부르게 됩니다. 무력을 사용하면 더 큰 무력이 나옵니다. 무력이나 폭력은 어떤 의미에서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힘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영원한 힘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칼의 힘에 의해서 권력을 잡고, 정치를 하고, 남을 지배하고 통치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계의 역사를 보십시오. 칼을 쓰다가 칼로 망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결코 오래 가지 못하고 다 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칼을 쓰셨습니까? 칼집에 꽂으십시오. 그러면 칼을 써서 이미 귀가 잘려 나가 버린 그 결과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우리가 칼을 칼집에 다시 꽂으면 예수님이 그 사람의 귀를 고쳐 주십니다. 치유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겸손하게 회개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치유해 주십니다.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고 그 귀를 만져 낫게 하시더라"
눅22:51어떤 사람은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인 진리입니다. 칼을 무력을 상징하고 펜은 정신을 상징합니다. 정신이 무력을 이길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펜을 잡은 사람도 독한 사람이 많습니다. 비록 칼은 아니더라도 펜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더 잔인하고 무섭게 사람을 죽입니다. 그러므로 펜보다 더 강한 것은 사랑입니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롬12:20-21예수님은 자기를 잡으려는 사람의 귀를 만져서 낫게 해 주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사람들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것이 기독교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한 가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와 같이 고난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체포를 당하셔야 했을까요? 예수님이 무능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리요 하시더라"
마26:53-54예수님은 당장이라도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영 두 영 더 되는 천사를 보내어 이 악한 무리들을 순식간에 쳐부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하여 그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막14:48-50예수님께서 체포 되신 것이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체포되어 주신 것입니다. 얼마든지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지자들의 예언을 이루기 위하여 잡혀 주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이 즐겨 쓰는 표현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2-23"(헤롯이 어린 아기를 다 죽이려 하므로)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2:14-15"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눅24:44-48예수님의 전 생애는 그 탄생에서부터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이르기까지 예언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 분의 인생 전체는 예언의 응답이었습니다.
비가 무질서하게 내리는 것 같아도 아무렇게나 부딪쳐서 흐르는 것 같아도 그 빗방울은 틀림없이 냇물로, 냇물은 강물로, 강물은 바다로 흐릅니다. 이 세상이 막 소용돌이 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도 우연히 무의미하게 전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주권과 계획에 대해 순종하고 응답하는 사람과, 불순종하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가룟 유다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종종 악인을 사용하여 그 뜻을 이루실 때도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잠16:4대제사장과 가룟 유다가 짜고 예수님을 체포한 사건도 성경에서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건입니다. 여러분, 역사는 우연이 아닙니다. 필연이요, 섭리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자상에는 반드시 최후의 날이 올 것입니다. 심판이 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움직이시고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이 문을 여시면 닫을 자가 없고, 하나님이 닫으시면 열 자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노리개나 장남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주관하시지만, 인간이 자기의 의지를 잘못 사용해서 선악과를 따먹을 때에는 타락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고 다시 순종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갈 때에는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가룟 유다가 아니어도 누군가 예수님을 팔아야 했습니다. 로마 군병이 아니어도 누군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예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 돌아가게 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가룟 유다였는가에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가룟 유다가 아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셔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예언이요, 응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게그러지 말라고 얼마나 많은 권면을 하셨습니까? 가룟 유다는 의도적으로 마귀의 일을 자행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의의 병기로, 축복의 도구, 순종의 도구로 쓰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자녀를 낳고 키울 때, 그 아이가 공부를 잘해 주고, 잘 따라주면 대학, 대학원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왜 없겠습니까? 만약 자녀가 부모의 계획대로 잘 따라 준다면 부모는 어떻게 해서라도, 옛날식으로 말하면 논 팔고 소 팔아서라도 자식을 대학에 보낼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공부해야 할 때 공부하지 않고, 술 먹고 담배 피우고 나가서 밤 늦도록 놀기나 하고 가출하면 부모가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좀 생각이 있는 부모라면 잡아다가 종아리를 때려서라도 고치고 싶을 것입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 분의 계획대로 잘 따라가면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복을 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여 주십니다. 하늘의 왕자와 공주로 우리를 세우시고 축복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가룟 유다처럼 어긋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일은 내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잘 믿을 수도 있고, 잘 안 믿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며 살 수도 있고, 거역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 의지까지 하나님은 억압하지 않으십니다. 그것은 내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의지가 여기서 이렇게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께 순종하고 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편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이 예비하신 풍성한 복을 누리시게 될 것입니다.
2023년 3월 24일 오전 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