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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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튀르키예 (옛 터키)와 시리아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1.

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이 실종되고 죽은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2.

실종자 수색과 구조가 신속히 잘 이루어지고, 필요한 생필품과 약 그리고 거처를 공급하여 주시옵소서

3.

한국에서 긴급 파송한 구조대가 사명을 잘 감당하여 수많은 사람을 구조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12:28-3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마가복음 11장부터는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 중 마지막 고난 주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주일에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다음날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가르쳐 이르시되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장사꾼들과 결탁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꾀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날 화요일에 예수님이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권위의 문제로 도전합니다. “무슨 권위로 이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이에 예수님이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대답하라 그리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에게로 부터냐 내게 대답하라” 저희들이 묵묵무답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참 선지자로 여기는데,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라고 말하면 그렇다면 너희들은 왜 요한을 믿지 아니하였느냐고 하실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어 세금 문제로 도전합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참 대답하기 난처한 질문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라 해도 문제가 되고, 바치지 말라고 해도 문제가 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셋돈을 내게 보이라.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셨습니다.

이번에는 부활이 없다하는 사도개인들의 도전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도개인들의 도전을 물리치시자, 또다시 바리새인들이 계명의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서기관 중 한 사람이 그들이 변론하는 것을 듣고 예수께서 잘 대답하신 줄을 알고 나아와 묻되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이니이까"

막12:28

본문만 봐서는 서기관이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 의도를 알 수가 없지만, 마태복음 병행구절을 보면 질문의 의도가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대답할 수 없게 하셨다 함을 바리새인들이 듣고 모였는데 그 중에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마22:34-36

본문에 바리새인 가운데 특별히 서기관이 등장하는데,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하는 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인쇄술이 발전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은 서기관들의 필사에 의해서 전해 내려 왔습니다. 그들은 한 점의 오류도 없이 바로 기록하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했습니다. 이 분들의 공로로 오늘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보게된 것이니까, 우리는 서기관들의 수고에 감사해야만 합니다. 서기관들이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필사하다가 보니까 율법의 전문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서기관이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도 하는 율법사 혹은 교법사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율법 전문가였기 때문에 자기의 전문지식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자기 전공에 자신 있는 사람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전공 때문에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못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유대 랍비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토론하고 끊임없이 변론하기를 좋아했습니다. 토론의 결과로 생긴 산물이 그 유명한 탈무드입니다. 그들은 율법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율법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요14:21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마23:1-7

율법사의 질문 :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이것은 예수님의 대답을 듣기 보다는 자기들의 전공 지식으로 예수님과 논쟁하여 트집 잡으려는 의도였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힐렐과 삼마이로 대표되는 두 파로 갈려 있었습니다. 저들의 질문의 요지는 이들 위대한 학자들이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어느 한 파의 견해를 찬성하면 당연히 다른 파의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을 듣고 어느 한 파의 견해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지체 없이 구약의 율법 중 가장 큰 계명을 명쾌하게 선포하셨습니다. 29-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첫째는 이것이니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곧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시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막12:29

예수님은 구약 율법의 가장 핵심적인 정신, 모든 율법의 원리가 되는 큰 계명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신6:4-9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쉐마’에서 인용된 말씀입니다. ‘쉐마’란 들으라 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신6:4-9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뻐하고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리기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가르치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하나님 사랑하라고 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2:29-30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이 율법 가운데서 가장 큰 계명일 뿐 아니라 첫째 되는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반대는 자기 사랑입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기 사랑, 자기 만족, 자기 성취를 위해 싸우고 서로 착취합니다. 자기라는 우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지요.

교회에 오는 것도 자기를 위해 옵니다. 자기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하나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중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해 있습니다. 그래서 지배 대신에 섬김의 삶을 삽니다. 투쟁 하는 대신에 희생하고, 받는 것 대신에 주는 삶을 삽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세 가지 태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머리의 사랑이 아니라 가슴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느끼고 싶은 데 안 됩니까? 머리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마15:8-9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사1:11-13

둘째로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짜 사랑은 목숨을 건 사랑입니다. 가장 높으신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어찌 그렇게 시시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그렇게 시시한 사랑을 해놓고 어찌 위대한 사랑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그 분의 생명을 걸고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시시하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 고귀한 사랑을 너무 무가치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사랑이 변덕이 많듯이, 하나님의 사랑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명을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조건 없는 절대적인 사랑이었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도 목숨을 걸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생명을 걸고 사랑하지 않으면 깊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명을 걸고 사랑하는 것만이 사랑입니다.

셋째는 뜻을 다하여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온 정성을 다하여, 모든 생각과 의지를 동원하여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힘과 능력, 즉 돈. 시간, 정열, 모든 은사를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상대적이거나 부분적이거나 일시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최상의 존재요, 최고의 존재입니다. 최상의 존재, 최고의 존재에게 드리는 사랑은 나의 최선의 것, 나의 최상의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은 옥합을 깨뜨린 여인처럼 나의 최선의 것, 나의 최상의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예배요, 참된 사랑입니다.

시간이 있으니까 나와 주고, 돈이 있으니까 헌금을 좀 하는 것은 예배가 아닙니다. 다니엘처럼 바쁜 시간을 쪼개어 드리고, 가난한 과부처럼 자신의 생활비 전부인 두 렙돈을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주의 첫날, 하루의 첫 시간, 소득의 첫 소산물을 드리는 것이 예배인 것입니다.

여인이 옥합을 깨뜨렸을 때에 예수님이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마26:13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려고 칼을 들었을 때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창22:16-18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길 때 그 속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서 경험해 보지 못한 놀랍고 거룩하고 신비하고 새로운 것들로 가득 찬 것을 느낄 수 가 있는 것입니다.

2023년 2월 17일 오전 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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