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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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담임목사를 위하여

1.

말씀의 은사를 충만하게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마다 죽은 영혼이 살아나고 병든 자들이 치유되는 역사가 있게 하소서

2.

영적인 민감성을 주사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을 내리게 하시고 성숙한 리더십과 사랑으로 모든 성도를 품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하소서

3.

목사님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온전히 사역에 집중 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허락하여 주시고 가정에 평안을 주소서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막11:27-28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신 예수님은 또다시 종교 지도자들과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시련을 겪으시게 됩니다. 그것은 집요하게 계속되는 도전이었고 질문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질문입니다. 두 번째는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공격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부활에 관한 질문, 네 번째는 첫 계명에 관한 질문을 함으로 그들은 피상적인 공격을 시도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권위의 문제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먼저 27-28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거니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누가 이런 일 할 권위를 주었느냐"

막11:27-28

그들은 두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한 가지 질문은 도대체 네가 무슨 권위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느냐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질문은 네게 그런 권위가 있다면 그 권위는 누구로부터 받은 권위인가? 누가 너에게 그런 권위를 주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구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지만, 권위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는 권위에 도전하는 시대가 되어 있습니다. 권위가 싫어서 모든 영역의 권위를 다 파괴하는 것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도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권위에 항거하고 그것을 무너뜨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권위를 불편하게 생각합니다. ‘권위’하면 벌써 알레르기 반응이 옵니다. 그리고 권위가 없는 세상에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권위가 없으면 세상은 무너집니다. 권위가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집니다. 신앙의 근거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권위가 왜 이처럼 중요합니까?

권위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요, 권위의 근거도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우주 최고의 권위자이시기 때문에 권위는 거기에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권위를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것이 되고, 하나님을 부인하면 신앙 자체가 부인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더불어 또 하나의 권위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권위에는 토론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변론하려는 태도를 가진 자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규례가 없느니라"

고전11:16

만약 성경이 인간 사유의 산물이라면 그것은 권위가 아닙니다. 성경은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단과 죄란 무엇입니까? 사단은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하나님이 위치를 탐내 쿠데타를 일으켜서 하나님으로부터 내어 쫓긴 천사장 루시퍼입니다.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사14:12-15

천사장 루시퍼는 피조물인데 피조물이 창조주의 권위를 거역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의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처럼 되려하고 하나님과 일대 일로 대좌하여 거역하려는 태도가 곧 죄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고 나쁜 짓을 하는 행동 - 절도, 강도, 사기, 음란 - 이런 것들은 현상에 불과합니다. 가장 본질적인 죄는 거역하는 영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뭔가 반항적이고 뭔가 분노하고 뭔가 거역하는 영들은 이미 사탄의 영향권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무리 정의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더라도 거역하고 반항하고 비판하고 부정적이고 파괴하는 영들은 하나님의 영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탄의 본질이 거기에서 출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혹시 여러분이 성장과정에서 생긴 쓴 뿌리로 인해 항상 반항하며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든지 늘 불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그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하나님을 섬기기가 참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권위 자체를 인정하고 성경의 권위에 가지를 맞추려고 할 때 그 사람은 변화되고 또 은혜를 입게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역사는 폭력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마26:52

러시아를 보십시오. “노동자여 일어나라”고 했던 것은 한 때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구호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면 이 권위는 누구에게 허락하셨을까요?

먼저 하나님은 이 권위를 세상에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 질서가 움직이는 원리입니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롬13:1-2

이 말씀에 대해 논쟁이 많습니다. 악한 권세인 히틀러에게도 순종해야 되느냐 하는 논쟁이 바로 여기서부터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지 기본적인 원리는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벧전2:18

권위가 무너지면 세상은 대혼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마귀가 얼마나 교활한지 아십니까? 권위가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와 비슷한 권위주의를 만들어 권위의 중요성을 가려 버렸습니다. 재림이 중요하니까 마귀는 다미 선교회를 만들어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혼돈시켜 놓았습니다. 구원이 너무나 중요하니까 마귀는 구원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적으로 이것을 구분해야 되는 것입니다. 구원파가 그렇게 떠들어도 구원은 중요하며, 재림파가 그렇게 떠들어도 재림은 다시 강조되어야 하며, 권위주위가 그렇게 세상에 많아도 권위는 다시 강조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은 이 권위를 가정에 주셨습니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엡5:22-23

가정의 영적 지도력은 남편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남자를 먼저 만드시고, 그 후에 남자의 갈비뼈를 뽑아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분명히 영적 질서가 있습니다. 남편이 잘났든 못났든, 존경받을 만하든, 못하든, 그것은 사람의 문제요. 일단 남편은 권위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이라는 가정의 영적 권위의 원리에 우리는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가정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의 교수님이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내쫓는 일은 없어야 됩니다. 권위를 무시하는 일들은 정말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싫어도 부모입니다. 남편이 아무리 싫어도 남편입니다. 이것이 지켜져야만 가정이 지켜지고, 세상이 지켜지고, 학교가 지켜지는 것입니다.

그럼 불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순결해야 합니다. 반항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기독교에는 순교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반항하는 힘보다 책임을 지고 기도하는 기도의 능력이 더 위대하다고 믿는 것입니다. 소리 지르는 능력보다 무릎 꿇고 기도할 때 하나님이 역사를 바꾸어 주신다는 확신과 믿음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교회에 이 권위의 질서를 주셨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살전5:12-13

영적 지도자들을 하나님이 교회의 권위자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너의 연소함을 사람들이 업신여기게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이 나이가 들고 어리고, 잘났고 못 났고,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고 없고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권위가 그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권위를 대적하는 자를 엄하게 다스리십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

민12:1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 아니하느냐 여호와께서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시고 떠나시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문둥병이 들려 눈과 같더라"

민12:8-10

"레위의 증손 고핫의 손자 이스할의 아들 고라와 르우벤 자손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과 벨렛의 아들 온이 당을 짓고 이스라엘 자손 총회에 택함을 받은 자 곧 회중에 유명한 어떤 족장 이백 오십 인과 함께 일어나서 모세를 거스리니라"

민16:1-2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민16:32-33

"여호와께로서 불이 나와서 분향하는 이백오십 인을 소멸하였더라"

민16:35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유1:8-10

셋째로, 그러면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은 이 권위를 주신 하나님께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한 마디로 순종입니다. 순종을 단순한 맹종이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틀린 줄 알면서도 속아 주고 따라가는 사람이 제일 무섭습니다. 몰라서 속는 것도 아니고, 몰라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알지만 그것이 영적인 능력이요 질서이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통하여 미움을 이기고, 용서를 통하여 분노를 이기고, 순종을 통하여 모든 부정을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정과의 타협이 결코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순종의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위하여 믿음이라는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온갖 귀한 선물과 축복을 받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얻은 구원을 어떻게 잘 유지하고 열매를 맺습니까?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구원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순종으로 완성됩니다.

성경은 한 번도 분노와 비판과 불순종과 항거의 방법으로 선을 이루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남을 희생하고 죽이고 정죄함으로써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의를 위하여 민중 봉기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소리지르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죄와 불의와 타협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저 잠잠히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자신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귀하게 쓰신 것은 다윗은 여호와의 마음을 아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가로되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 다윗이 일어나서 사울의 겉옷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그리한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을 인하여 다윗의 마음이 찔려 (이것이 아니다)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다윗이 이 말로 자기 사람들을 금하여 사울을 해하지 못하게 하니라"

삼상2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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