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0

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청년 세대들을 위하여

1.

이 땅의 청년들이 세상의 야망이 아닌 하나님이 주시는 건강한 비젼을 품고 그 비젼을 향하여 전진하게 하소서

2.

개인과 가정, 사회적 상황으로 인하여 포기하거나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십자가의 능력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승리하는 청년들이 되게 하소서

3.

성적 타락 및 각종 중독으로부터 청년들을 지켜 주셔서 거룩하고 순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친히 인도하여 주소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막11:1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벳바게와 베다니에서 어린 나귀를 타셨습니다. 베다니에서 예루살렘까지는 3Km의 오르막입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자 수많은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몰려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깔고 또 종려나무 가지를 꺾어다가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며 예루살렘이 진동할 정도로 찬양했습니다.

“호산나, 찬양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주님께서 그 환영의 찬양을 받으시면서 어린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신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그 분이 제일 먼저 찾아가신 곳은 어디입니까? 11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막11:11

주님은 왕이 거하는 궁궐을 찾지 않으시고, 로마 총독 빌라도의 관저를 찾지 않으시고, 볼거리가 많은 관광 지역을 찾지 않으시고, 곧장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왜 성전에 가셨겠습니까? 성전은 예배하는 곳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상징입니다. 다른 곳에도 하나님은 계시지만 예수님은 특별히 선택된 장소에 하나님을 만나러 가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신앙은 성전 중심의 신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2:41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열 두 살 때 부모를 따라 예루살렘에 가신 일이 있습니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절기를 다 마치고 부모들은 예수님이 따라오는 줄로 알고 그냥 갔는데, 하룻길을 간 후에야 예수님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는 애타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서 여기저기 찾다가 사흘 후에야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보고 놀라서 말했습니다.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이때 예수님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어렸을 때부터 성전을 사모했던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구약 시대에도 성전을 사랑했습니다. 여러분, 다윗을 보십시오. 다윗이 성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애인을 그리워하는 이상으로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23:6

다윗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27:4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시84:1-2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84:10

이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하나님의 교회에서 한 시간 예배하고 하루를 머무는 것이 다른 곳에서 천 날 있는 것보다 낫다고 노래했습니다. 이런 복된 가슴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윗 뿐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누구나 주의 전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에 올 때 기쁘고, 예배드리는 것이 기쁘고, 집에 돌아갈 때 아쉬워하는 사람이 복 받은 성도입니다. 그러나 주의 전의 한 날이 세상에서 한 시간보다 못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주의 전에서의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한 달보다 낫고, 1년보다 낫고, 3년보다 낫고, 1,000일보다 나은 복된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을 찾아오셨습니다. 아마 예수님은 성전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기 위하여 가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전에 들어서자마자 예수님의 눈이 이상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분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마21:12

예수님이 분노하셨으니 나도 분노해야 되겠다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죄 없는 자의 분노요, 우리의 분노는 죄인의 분노입니다.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분노, 하나님의 분노를 거기서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성전에서 장사하는 무리들을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즉각 돈 바꾸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엎으셨습니다. 그리고 비둘기 파는 자들의 모든 상행위를 물리적으로 저지하셨습니다. 그리고 노를 발하셨습니다.

11장 이전까지 예수님은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보이시지 않았습니다. 사탄을 꾸짖으신 적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신 적은 없습니다. 웬만하면 다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렇게 분노하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요한복음2:12 이하에 보면 예수님의 사역 초기에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었던 일이 나타납니다. 사역 초기에 한 번 그런 일을 하셨고, 지금은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바로 직전에 또 한 번 이런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예수님이 예배하러 가시다가 이런 거룩한 분노를 터뜨린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의 의도는 성전은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하고, 순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집은 하나님의 집이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며,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21:13

성전은 기도하는 집입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곳이지 정치하는 곳이 아닙니다. 성전은 예수 이름으로 장사하는 집도 아닙니다. 사회 개혁이나 구제 사업을 하는 곳도 아닙니다. 성전이란 교육 사업이나 병원 사업하는 곳도 아닙니다. 교회는 상처받고 버림받은 영혼들이 주님 앞에 와서 기도하는 곳입니다.

이 말씀은 사56:7에 나타난 이사야의 환상적인 예언을 예수님이 인용하신 것입니다.

"내가 그를 나의 성산으로 인도하여 기도하는 내 집에서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번제와 희생은 나의 단에서 기꺼이 받게 되리니 이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56:7

할렐루야!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 이 땅에서 병들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 와서 기도하고 치료받고, 위로 받는 집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사람들의 집으로 바꾸었고, 기도하는 집을 장사하는 곳으로, 강도의 굴혈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거룩한 분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단순하게 겉으로만 해석하면 오해의 소지가 참 많습니다. 좀더 주의 깊게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전이란 지성소와 성소가 있는 건물, 그 자체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은 성전 건물을 중심으로 관계된 모든 영역을 다 말하는 것입니다.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예루살렘의 뜰 그리고 대제사장의 뜰이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이방인의 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여인의 뜰까지도 가면 안됩니다.

문제는 지금 이방인의 뜰에서 이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제물을 매매하고, 돈을 바꾸고 비둘기를 팔았습니다. 그리하여 이방인들이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만든 것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은 일년에 세 차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이면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올 때 빈손으로 오지 못합니다. 두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 성전세를 내야 합니다. 성전세는 일종의 인두세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내야합니다.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 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

출30:13-16

예수님 당시는 로마 지배를 받고 있었기에 통용 화폐는 로마 화폐입니다. 그래서 성전에서는 로마의 시이저가 그려진 화폐를 받지 않고 성전에서 따로 통용되는 화폐만 받았습니다. 그리고 편의를 위해 유월절 기간에 일종의 환전소를 이방인의 뜰에 차려 놓고 돈을 바꾸어 줌으로써 성전세를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참 좋은 제도입니다. 성전에서 돈 바꾸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오해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돈 바꾸는 제도에 대하여 분노하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교인의 편리를 돕고 하나님께 예배를 더 잘 드리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좋은 제도를 나쁘게 이용한 것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잘 했겠지요. 그러나 세월이 지날수록 돈을 바꾸면 환전비를 받고, 돈에 눈이 어두워진 제사장들이 환전상에게 독점권을 주고 일종의 독점 사업을 유치했던 것입니다.

비둘기 파는 일이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에 절대 빈손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출23:15

뭔가 제물을 가지고 가야만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비싼 양을 바칠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은 양 대신에 비둘기 한 쌍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것이 비둘기를 바꾸어 주는 장사가 생기게 된 원인입니다. 또 하나는 어떤 사람들이 먼 길을 올 때 제물을 가지고 왔는데, 제물에 상처가 나거나 어떤 문제가 생겨서 온전한 제물이 되지 못하면 할 수 없이 바꿔야 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럴 때의 편리를 위해 그런 제도를 만들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타락한 제사장들은 성도들이 바치는 제물을 검사할 때 밖에서 산 제물은 다 퇴짜를 놓습니다. 이방인의 뜰 안에서 독점권을 가진 그 가게에서 산 것만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값이 같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폭리를 취한 것입니다. 성도들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제사장과 결탁한 상인이 파는 비싼 제물을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칼만 들지 않았지 강도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물론 그렇게 해서 생긴 이득을 성전 보수와 성전 유지, 도로 관리와 여러 가지 제사에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데에 썼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하는 척하면서 몇몇 사람들의 이기심을 만족시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치는 산 제사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수입을 더 많이 올릴 수 있느냐에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의 분노가 있었습니다. 제도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입니다. 종교적이고 거룩한 방법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사장의 이름으로 착취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위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교회에 이기적인 인간의 야심이 들어가면, 돈 버는 것에 관심이 들어가면 예수님의 거룩한 분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 교회의 문제는 순결입니다. 성경 공부, 지식이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배운 들 순종하는 태도가 없거나, 순결한 태도가 없다면 아무 쓸데가 없는 것입니다. 부부 사이에 제일 중요한 것도 순결입니다. 남편이 돈을 산더미같이 벌어와도 다른 여자를 하나 데리고 있다면 다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순결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순결을 원하십니다. 크고 작은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큰 예배당에서 수많은 사람이 예배를 드려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실 수도 있고, 반대로 강대상도 없고, 설교단도 없고, 그저 가마니 깔고 앉아 예배를 드려도 거기에 하나님이 임재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문제입니다. 중심이 문제입니다. 내적인 것이 문제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 앞에 겸손한가, 정직한가, 순결한가, 진실한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된 예배란 이러한 더러운 동기들, 잘못된 이기심을 청소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2023년 1월 28일 오전 6:35

Archive

지난 말씀 보기

지나간 날의 말씀을 다시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세요. 날짜를 선택하면 해당 날짜의 설교로 이동합니다.

전체 목록 보기

2026년 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