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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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1.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지역 사회의 연약한 영혼들을 섬기게 하소서

2.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가 기도와 예배의 영성을 회복하여 하나님께 영광 올려 드리는 복된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3.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11:3-10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막11: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동네 맞은편에 가서 나귀와 새끼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의 물건을 값도 치르지 않고 가져옵니까? 예수님이 아무 갈등 없이 이런 명령을 내리십니다.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면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이 말씀을 잘못 사용하면 비극이 생깁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을 오용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니까 내놓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갈등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교회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잘못 행동하는 일이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르시되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마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깨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막11:2-3

이 말씀은 상식에 맞지 않는 말씀입니다. 남의 나귀는 돈을 주고 사거나 빌려야 합니다. 돈도 주지 않고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나귀를 풀어서 끌고 오는 것은 강도짓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을 시키신 것입니다. 우리 생각과 우리 상식에 맞지 않습니다. 비합리적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주님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보기에는 남의 것이지만, 만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예수님의 나귀인 것입니다. 나귀의 주인도 예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미안하다는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풀어서 끌고 오라고 하신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오신 분은 “네 수입의 십일조를 바쳐라”라는 말씀에 주춤하면서 “교회에 와도 돈 타령이네”라고 하시겠지만, 아닙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8-10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생각에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것 같아도 그것을 판단하면 안됩니다.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내 키로 자가 정확한지 정확하지 않은지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가 내 키를 측정합니다.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으로 설교를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성경이, 설교가 여러분의 인격을, 여러분의 삶을 측량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제자가 “주님, 그런 말씀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순종하지 못하겠습니다”라고 하지 않고,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마을에 갔더니 그 마을 앞에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었습니다. 고삐를 푸니까 어떤 사람이 와서 물었습니다.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막11:5-6

그 주인도 주님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증거는 두 가지입니다. 한 가지는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귀에 잘 들어오는 분은 구원을 받은 분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분은 구원받지 못한 분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구원받은 사람은 자기 것이 모두 주님의 것인 줄로 압니다. 그래서 내게 필요한 것이지만, 주님께서 필요로 하실 때 내어 놓는 믿음이 있습니다.

한 선교사님이 자동차를 운전하며 평양시를 달리다가 장로님이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은 소처럼 쟁기를 매고 있고, 아들은 아버지를 소 삼아 쟁기를 잡고 밭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차를 세워놓고 물었습니다.

“장로님, 소는 어떻게 하시고 장로님이 소가 되셨습니까?”

“아,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소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데 바쳤습니다. 그래서 제가 소가 되었습니다.”

대답을 한 뒤에 허허 웃으며 다시 밭을 갈았습니다. 그것을 보고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다. 한국 교회는 희망이 있다.”

그런 장로님이 계셔서 우리나라가 이만큼 복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나귀의 주인이 누구인지 성경에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나귀의 주인은 분명히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숨은 제자였을지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이 사람은 예수님이 선택한 사람이고, 하나님이 준비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쓰시겠다고 하실 때 기쁜 마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미국 링컨 대통령 기념관에는 링컨 대통령이 쓰시던 만년필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게 오랜 된 구식 만년필을 보배처럼 진열한 것은 링컨 대통령이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귀한 분이 사용한 것이기에 귀한 것입니다. 그것도 귀한 일에, 노예 해방 선언문에 서명했기 때문에 더욱 귀한 것입니다.

여러분, 만 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님이신 주님께서 쓰시겠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재능을, 우리의 시간을, 우리의 물질을 쓰시겠다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에 제자들이 새끼 나귀를 어미 나귀와 같이 데려왔습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7-8절을 보겠습니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막11:7-8

지금 예수님이 나귀 새끼 위에 앉으셔야 하는데 안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기들의 옷을 벗어서 나귀 위에 깔아 드렸습니다. 이것이 봉사요, 이것이 헌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분수에 넘게 헌신하고 봉사하라고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겉옷밖에 없으면 예수님께 겉옷을 깔아 드리십시오. 그것이 사랑이요 봉사입니다.

그렇게 했더니 어떤 일이 일었습니까? 8절에 보면 제자들이 옷을 벗어 나귀 새끼 위에 얹는 것을 보고 그 옆에 있던 무리들도 겉옷을 다 벗어 길에 깔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길가에 있는 종려나무를 베어 길에 폈습니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막11:9-10

무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

‘호산나’는 오늘날로 말하면 ‘만세’라는 뜻입니다. 저는 이것이 바로 크리스천의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보면서 흥분하고 열광하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예배할 때 큰 소리를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은 미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술 먹고 소리 지르고 할 짓, 못할 짓 다하는 것은 인간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뻐하고 박수치고 춤추는 것은 너무 감정적이라고 욕을 합니다. 세상일에 흥분하는 것은 괜찮고, 하나님 일에 흥분하는 것은 안됩니까?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때에 베 에봇을 입었더라 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부르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 오니라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저를 업신여기니라"

삼하6:14-16

여러분, 다윗이 되고 싶습니까? 미갈이 되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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