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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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북한을 위한 기도

1.

북한의 주체 사상이 무너지게 하시고 남북이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로 분단의 아픔에서 해방되어 복음적 평화 통일을 이루게 하소서

2.

북한 전 지역에 신앙의 자유가 주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이 선포되게 하시고 북한 전역의 3만 8천 여 개의 동상과 우상들이 철거되며 교회가 세워지게 하소서

3.

고난 중에도 믿음을 지키는 14만 지하교회 성도들과 수용소에 있는 성도들의 생명을 책임져 주시고 영양부족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북한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주소서

4.

목숨을 걸고 탈북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탈북민들이 무사히 정착하여 북한 선교의 마중물로 쓰임 받게 하소서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35-45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소문이 쫙 퍼졌습니다. 그 소문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 세상이 새로워진다. 예수님이 유대인의 메시아로 등극하시면 로마 세력은 물러나고 메시아의 시대가 온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가슴은 한껏 부풀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은 십자가를 지기 위함인데, 그토록 수차례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그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다른 것을 기대한 것입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10:35

여기서 세베대의 두 아들은 예수님과 혈연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야고보와 요한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요즘말로 하면 인척을 빙자한 인사 청탁입니다. 야고보와 요한만 그런 생각을 했나요? 오늘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나머지 열 제자들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을 24절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막10:41

열 제자는 말할 기회가 없었고 말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 사람들도 실제로는 세상적으로 출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화가 난 것입니다. 침묵한다고 다 거룩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시켜보면 딴 소리를 합니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의 장례식 때 겉으로는 눈물을 흘리고 슬퍼하지만 실제로는 더 많은 유산에 집착하는 형제들의 음모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그렇게 따랐고 배웠던 제자들이었지만, 그들은 아직도 세속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적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정치적 메시아, 군사적 메시아, 경제적 메시아, 사회적 메시아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자기들을 질병과 가난과 정치적인 혼돈 속에서 구원해 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참된 메시아는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고난받는 종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이 그렇게 사랑하셨던 열두 제자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부탁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막10:38-39

예수님이 마시는 잔은 십자가의 잔입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마26:39

제자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할 수 있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제자들입니다. 무지는 만용을 낳습니다. 무식한 사람은 용기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의 신앙에는 겸손이 있지 않고 교만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은 고백한대로 순교로써 그 잔을 다 마셨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의미는 하늘나라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편안하게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희생한 공로가 있어야 높은 자리에 올라갑니다.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값없이 받지만 하늘나라의 상급은 내가 십자가를 지는 만큼 받는 것입니다. 복음과 하늘나라를 위해서 나를 희생하고 십자가를 진 공로가 없이는 하늘나라의 높은 자리에 올라가지 못합니다.

세상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남보다 나아지려면 남보다 많이 투자해야 합니다. 시간을 투자하고,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높은 자리에 오르면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늦잠 자고, 빈둥빈둥 놀면서 높아지면 오히려 망합니다. 실력도 없이 높이 올라가면 자기도 망하고 남도 망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물며 주님의 일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크고 작은 일에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내가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 쓸 것, 놀 것을 다 챙기고 주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십자가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는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하늘나라의 상급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이 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막10:40

예수님은 영적으로 유치한 제자들, 뭘 모르고 큰소리치는 제자들을 야단치거나 냉소적인 태도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따뜻한 연민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예수님의 제자들은 희생 없는 성공과 축복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막10:42-44

이 말씀은 실로 엄청난 선언이요 혁명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권력자들은 섬김을 받습니다. 사람들 위에 군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정반대입니다. 누구든지 큰 사람이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려면 종이 되어라.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입니다. 여기에 참된 하나님 나라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믿음이 성숙한 사람은 군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섬기는 사람입니다. 종이 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는 데 위대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사셨다는데 위대성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나 교회의 참된 리더십은 섬김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권력을 휘두르고 능력을 과시하고 영향력이 많은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정반대입니다.

봉사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존경받습니다. 남몰래 궂은 일, 험한 일을 찾아서 하고, 병든 자들과 외로운 자들을 조용히 심방하고 위기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사람, 분쟁이 있는 곳에 화해를,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심는 사람들, 그 분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으뜸 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질서가 교회에 들어와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높을수록 낮아지고, 으뜸이 될수록 종이 되어 섬겨주며, 남모르게 희생하고 남모르게 고생하며, 남모르게 십자가를 지면서 주님을 섬기는 것이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교회 나와서 설교만 듣고 가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우리의 삶에 섬기는 자의 모습, 종의 모습, 희생하는 자의 모습이 있을 때, 거기에 빛과 소금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마지막으로 이런 결론을 우리에게 내려 주십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막10:45

예수님은 이 세상에 섬김을 받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어 세상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만 왕의 왕이시오, 만주의 주이신데 이렇게 철저히 낮아지셨습니다. 주님은 온 힘을 다해서 우리들을 섬기시고, 마지막에는 목숨까지 내어 주셨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어갈 때 한 말이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여, 당신은 위대한 분입니다. 나는 무력으로 온 유럽을 다 정복하고 호령을 했지만, 결국 버림을 받고 섬에서 외롭게 죽어가는데, 당신은 팔레스타인 그 좁은 땅에서 불과 3년여 동안 활동하시다가 십자가에 돌아가셨는데도 오늘날 당신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사람은 수도 없이 많군요”

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겠습니까?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다스렸지만, 예수님은 사랑으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버림을 당했지만, 예수님은 영원히 추앙을 받고 그를 위해서 수 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것은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금년에 교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종의 모습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종으로 섬기시는 모습을 보고 교회 처음 나오시는 분들이 감동을 받을 때 복된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섬김의 끝은 영광이 아니라 죽음입니다. 섬김을 받고 그 즉시 영광을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십시오. 그럼 부활과 영광은 어디에 있습니까? 죽은 다음에 오는 것입니다. 죽음 속에 부활이 있는 것이며, 죽음 속에 하나님의 영광과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내가 죽을 때 부활이 있습니다. 내가 죽을 때 영광이 있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15:31

내 고집, 내 주장이 죽을 때, 예수님만 나타나게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만 나타나게 될 때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됩니다. 나는 죽고, 날마다 예수님만 나타내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날마다 자신이 죽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한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1월 22일 오후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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