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한국 교회를 위하여
분열된 한국 교회의 교만과 죄악을 용서하시고 오직 복음 안에서 하나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로 거듭나게 하소서
코로나로 위축된 한국 교회가 기도함으로 영적 위기를 돌파하게 하시고 멈추어버린 전도의 사명이 살아나게 하소서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10:17-22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께 나아온 네 번째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10:17이 사람은 아주 놀라운 사람입니다. 영생이라는 굉장한 주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이 사람은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이고 진실한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나타난 기사를 종합해서 좀 더 자세하게 이 사람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19:20을 보면, 본문에 나타난 사람의 신분은 청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2절을 보면 재물이 많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에는 이 사람이 관리였다는 말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8:18여기서 관리라고 하는 것은 유대 회당의 지도자나 산헤드린 회원에 해당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찾아온 이 사람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세 가지 조건 - 젊음, 재물, 권력 혹은 명예를 다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종교적인 경외심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과는 다른 이 사람의 구도적인 태도가 참 아름답습니다.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막10:17유대인 가운데 그 정도의 신분과 위치에 있는 사람이면 대개 예수님에 대해서 빈정대는 태도를 취했지만, 이 사람은 예수님이 길에 나가실 때 달려와서 꿇어앉았다고 했습니다. 신앙적인 겸손까지 갖춘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서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달려와서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어떻게 말했습니까? “선한 선생님이여!” 예수님까지 알아봤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비방의 대상으로 생각했지, 존경과 경외의 대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께 질문한 내용이 우리를 또 한번 놀라게 합니다. 그것은 자기 명예나 지위가 물질에 관한 질문이 아니고, 영혼에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꼭 집어 질문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헛 믿는 사람이 많습니다.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주변의 문제를 가지고 왔다갔다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아주 정확하게 신앙의 본질에 해당하는 단어 하나를 택한 것입니다. 그것이 ‘영생’입니다.
영생이 무엇입니까? 왜 이것이 이 부자 청년에게 중요했습니까? 영생이란 문자 그대로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그것은 현재부터 시작해서 죽음 이후에까지 이르는 생명입니다.
이 짧은 한 문장에서 우리는 이 사람이 대단한 사람임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청년의 영적인 갈급함과 요구가 진정한 영혼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허구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그러면 이 청년의 신앙에 어떤 허구성이 있을까요?
첫째로, 영생의 얻고자 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은혜와 믿음으로 영생을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행위로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마19:16여러분, 영생은 우리의 선한 행위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갈2:15-16질문을 하려면 정확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원래 기대한 것과는 전혀 다른 대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선한 행위를 통해서만이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질문을 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였으면 영생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을 텐데, 이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 무슨 선한 행위를 해야 하는지 행위에 대해서만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선한 행위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성경에는 의인은 없나니 한 사람도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에게 죄에서 해방되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행13:38-39"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막10:19예수님이 계명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이 사람이 행위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행위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계명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청년은 미소를 짖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만만하다 이거지요.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막10:20이 청년이 자신만만하게 모든 계명을 다 지켰다고 대답했습니다. 형식적으로는 다 지켰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실제로 깊이 들어가 보면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미움만 있어도 살인하는 것이라 하셨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이 과연 있을까요? 또 마음에 여자를 보고 음욕만 품어도 간음한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 청년에 과연 미모의 여성을 보고 마음속에 한 번이라도 음욕을 품지 않았을까요?
이와 같이 실제로 엄격한 의미에서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판단한다면 이 땅에 살아남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입을 육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심판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용서와 의를 얻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2그런데 이 청년은 행위에 자신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내가 다 지켰는데 무엇이 아직도 부족합니까?” 이때 예수님은 속으로 굉장히 웃었을 것입니다. “너의 행위를 다 알고 있는데 그런 엉터리 말을 하느냐?‘ 주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우리 중심을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막10:21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꼭 하나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물질을 포기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구원받으려면 오늘 집에 가서 재산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준 다음에 예수 믿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은 은혜로,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청년에게는 물질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막10:22그러면 이제 이 청년의 문제를 분석해 봅시다. 돈이 있습니다. 젊음이 있습니다. 명예가 있습니다. 도덕적 삶이 있습니다. 신앙적 겸손이 있습니다. 영생에 관한 질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와서 무릎도 꿇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들을 보시지 않은 것입니다. 거기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그 청년의 심령 깊은 곳에 물질에 대한 집착이 있음을 보시고 그것을 찌르셨습니다. 이 청년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주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갈등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지금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막고 있는 벽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이 청년의 비극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는 것까지는 좋았습니다. 근심하고 떠나버린 것, 이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근심하고 돌아와야 합니다.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갈릴리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적 받은 영적인 갈등거리를 치워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3년 1월 18일 오전 6: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