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신앙고백
Confession기도 우리 교회를 위하여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는 생명 공동체가 되어 스페인 복음화와 아프리카 선교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소서
목회자와 성도들이 성령으로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님을 닮아 자기를 부인하고 마음을 다해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함으로 기적이 일상화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막10:1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마가복음 10장에 들어오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그 다음 사역지인 유대 지방으로 가시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유대 지방으로 가시는 것은 십자가를 향해서 가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먼저 1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막10:1나사렛에서 자라나신 예수님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사역을 펼쳐 나가셨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1:14 이후부터 9장까지에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일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와 모든 약한 자를 고쳐주시는 예수님, 능력이 많으시며 사랑이 넘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이 이제 갈릴리 사역을 마치시고 유대 지방으로 가시는 것입니다. 갈릴리와 유대 사이에는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 자신들의 땅을 통과하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마리아를 피해 요단 강 건너편으로 빙 돌아서 유대 땅에 가시곤 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순수한 유대인의 혈통을 가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북 이스라엘이 BC 722년 앗수르에 망했을 때, 앗수르는 이방인들을 사마리아에 이주시켰습니다. 그들은 낯선 사마리아에 정착하여 생업을 하며, 원래 살던 자기네 나라에서 가져온 신도 섬기고 토속신인 여호와도 섬기는 혼합적인 종교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는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의 이중적인 생활을 비웃고 개처럼 취급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과는 아예 상종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사마리아 사람들과 유대 사람들은 서로 적대적인 감정만 쌓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유대인이므로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분이 갈릴리에서 유대에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피해 요단 강 건너편으로 빙 돌아서 유대 지경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 지방으로 가시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겠고 그들은 능욕하며 침 뱉으며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나 그는 삼 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니라"
막10:33-34여기서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대중들의 분노와 침 뱉음과 채찍질과 저주를 예수님은 미리 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참혹하게 처형당하실 것도 미리 아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죽은 후 삼일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도 미리 아셨습니다.
여기 오늘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심정으로 여기에 나와 계십니까? 겉은 다 멀쩡해도 속은 보통 속이 아닐 것입니다. 기막힌 심정을 가지고 앉아 계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남모르는 문제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해 죽으러 가시는 예수님의 심정을 우리는 이 본문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심정을 가지신 예수님께 네 종류의 사람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종류의 사람은 무리들입니다.
둘째 종류의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을 공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나쁜 동기를 가진 사람들로서, 가장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질문을 하는 바리새인들입니다.
세 번째 종류의 사람은 자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예수님께 안수 기도를 받기를 바라고 혼잡한 사이를 뚫고 들어오는 부모, 특별히 어머니들입니다.
네 번째 종류의 사람은 영생의 문제를 질문함으로써 율법적으로 완벽성을 보여 주고자 했던 어리석은 한 청년 같은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첫째 종류의 사람들을 살펴보고 나머지는 다음에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수많은 핍박과 능욕을 예견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떠나시는 예수님께 큰 무리가 찾아 왔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말씀을 가르치고 병든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겪는 많은 문제들 가운데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병입니다. 병에 걸려본 사람만이 그것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압니다. 감기 걸린 것은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 병이 아니라 고칠 수 없는 질병, 보통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는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예수님은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지시고 그들의 병을 다 고쳐주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에 얼마나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고침을 받았습니까? 나병환자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서 놓여났습니다.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손 마른 자가 고침을 받았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맹인이 눈을 떴습니다. 미친 사람들이 온전해 졌습니다. 심지어 무덤에 나흘 동안 있었던 시체까지도 예수님은 살려 주셨습니다.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에만 관심이 있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육체적인 삶에도 관심이 많으십니다. 인간의 육체가 무엇입니까?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우리의 육체는 한낱 땅 속에 썩어질 물질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년, 만년 살 것처럼 착각합니다. 우리는 이 썩어질 육체를 안락하게 하는 데, 멋지게 입히는 데 온 신경을 다 쏟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 육체가 병이 든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영원히 병들지 않게 됩니까? 아닙니다. 또 병이 드는 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려 주셨습니다. 그러면 나사로는 영원히 죽지 않습니까? 아닙니다. 그 이후 언젠가 죽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이런 유한한 인간의 몸을 예수님이 고쳐 주셨다는 것이 놀라운 일입니다. 이 땅에서 살면서 병과 싸우며 고통을 겪는 절망적인 인간들에게, 예수님은 친히 오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고쳐 주시고, 새로운 삶과 인격을 주셨습니다. 그 사실을 우리는 마19:2절에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큰 무리가 좇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저희 병을 고치시더라"
마19:2오늘날 교회의 중대한 잘못은 병을 고치고자 하는 예수님의 간절한 소원과 교회의 특권을 소멸시켜 버린 것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므로 주님의 성령이 임하시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들이 들어오며 나가며 병을 고침 받는 처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매우 강렬한 열정으로 병을 고치셨고, 병 고치는 역사를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10:8"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5:14-16예수님은 아주 집요할 정도로 우리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마음의 병인 슬픔을 고치시고, 육신의 연약함과 질병도 고치셨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임하여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오면 모든 슬픔과 육체의 연약함을 다 고침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14:12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시면서 성령님을 보내셔서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더 많은 병자가 고침을 받아야 마땅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