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7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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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위하여

1.

한 영혼을 바라보며 목양에 힘쓰는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을 축복하여 주시고 지역사회를 복음화 하는 데 귀하게 쓰임 받는 능력의 종이 되게하소서

2.

교회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좌절하거나 낙심치 않게 하시고 도시 교회들이 사랑의 마음으로 농어촌 교회와 개척 교회를 돕는 데 더 열심을 내게 하소서

3.

코로나로 인한 사역 환경의 위기 속에서도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시고 그들의 수고가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막9:3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오늘 우리는 본문 말씀에서 사람을 어떻게 대할까를 배우게 됩니다.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 것이 하나님께 칭찬받고, 내게 복이 되는 것일까를 배우게 됩니다.

먼저는 어린아이와 같은 미비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 영향력이 없는 사람도 예수님 대하듯이 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는 재산이 없습니다. 자식도 없습니다. 권세도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내게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습니다. 오히려 도움을 받을 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권세도 없고, 그래서 내 사업과 내 인생 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사람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아이 같이 하챦은 사람, 그 사람을 영접하는 것이 우리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훌륭한 사람, 권세 있는 사람, 지식 있는 사람, 많이 가진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정중하게 대하기를 쉽습니다. 그러나 하찮은 사람은 멸시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찮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은 항상 깃발만 날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찮은 사람이라도 항상 하찮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뀔 수가 있습니다.

한 아버지가 그의 아들을 공부시키고 싶은데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아침마다 부잣집에 물을 팔아서 아들을 공부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잘 사는 부잣집에 물을 갖다 주면서 쌀밥과 고깃국을 얻어먹고 오는 데, 아들은 집에서 늘 보리밥이나 죽만 먹는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루는 염치를 무릅쓰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오늘은 아버지를 따라가자. 이밥 먹으러 가자.”

이밥은 쌀밥을 말합니다.

물지게를 지고 아들과 같이 부잣집으로 갔습니다. 물 짐을 다 지고 나니 가정부가 밥상에 고깃국과 쌀밥 한 그릇을 갖다 주었습니다. 처마 밑에 앉아서 밥 한 그릇을 아들과 같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것을 본 주인은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부엌을 향해서 소리쳤습니다. “여보게, 밥 좀 넉넉히 갖다 줘서 아들도 먹게 해. 좀 넉넉히 갖다줘.”

그 말에 부잣집 아들이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처마 밑에 앉아서 밥을 먹고 있는 학생을 보니 같은 학교 친구였습니다.

“아버지, 아버지, 저 아이 내 친구예요.”

그러니까 그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아, 마루에 올라와서 먹게, 자네 아들이 내 아들과 친구라네. 마루로 올라와.”

그리고 부엌에 대고 다시 소리쳤습니다. “많이 갔다 줘. 넉넉히 줘”

세월이 지나 중학생이던 물장수 아들이 인민군 장교가 되어서 서울로 쳐들어왔습니다. 서울에 쳐들어와서 부자들을 잡아 죽였습니다. 인민군 장교가 즉석에서 인민재판을 하여 한 명 한 명 죽이는데, 부잣집 주인이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같은 반 친구 아버지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죽은 목숨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 영감을 보는 순간에 “여보게, 마루에 올라와서 먹게. 넉넉히 갔다 줘”하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영감님, 제가 바로 영감님의 아들 000의 친구입니다. 영감님이 제게 따뜻하게 해 주셨지 않습니까?” 하며 무조건 석방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자리에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원수도 외나무다리에서 만나지만, 내가 선을 베푼 그 사람도 외나무다리에서 나를 도와줄 때가 있습니다. 하찮은 사람, 오늘 비실거리는 사람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그 사람이 나를 흥하게도 할 수 있고, 망하게도 할 수 있고, 나를 살리고 죽일 권세를 가진 권세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약하다고 업신여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 대하듯 잘 대하면 훗날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내 이름으로 영접하라”고 권면 하십니다. 때 묻고 자기중심적인 성인의 탈을 벗어버릴 뿐만 아니라, 순수하고 겸허한 어린아이를 영접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천국으로 만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란 이미 세속에 물들어 굳을 대로 굳어 버린 어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새로운 피조물이며, 영적으로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의 마음 상태가 어린아이와 같이 변해야 합니다.

마리아와 약혼한 요셉은 마리아가 이미 잉태한 것을 알고 소리 소문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합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1:20-23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에 계십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요14:10-11

따라서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곧 하나님 아버지를 영접하는 자가 됩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마10:40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따라서 제가 예수님이 명하신 일을 하러 나갈 때 사람들이 저를 반갑게 받아들여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면 그것은 저를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저를 보내신 예수님을 영접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저를 박대하면 저를 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박대하는 것이 됩니다. 구역장님이 구역 식구를 심방하러 갈 때에도 예수님의 종으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들을 영접하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요, 그들을 박대하고 쫓아내면 예수님을 박대하고 쫓아내는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행9장을 보면 사울이 교회를 핍박하여 많은 성도들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그것도 모자라 다메섹에 있는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서 가는 중에 겪은 사건이 나옵니다. 대낮에 갑자기 하늘에서 눈부신 빛이 그를 내리비추었습니다. 사울은 그만 땅에 엎드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사울은 예수님을 직접 핍박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하고 성도를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에게 “너는 나를 핍박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고, 주의 성도들을 핍박하는 것도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 됩니다. 반면 교회와 성도를 도와주면 그것은 예수님을 돕는 것이 됩니다. 교회와 성도는 예수님과 일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오는 사람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오는 사람이므로 그들을 환영하고 잘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린아이 하나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잘 대접하고 잘 돌보면 예수님을 돌보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린 이웃과 좋은 것을 나누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2023년 1월 8일 오전 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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