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예배

"오늘의 고백과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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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고백

Confession

기도 정치와 사회를 위하여

1.

대통령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주시고 늘 겸손한 자세로 나라를 이끌어가며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리더가 되게 하소서

2.

이 땅의 위정자들이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시며 이 나라가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아래 있음을 인정하게 하소서

3.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이 사라지게하시고 소통과 화합을 통해 분열된 국론이 하나 되게 하소서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막9:36-37

오늘도 참 좋은 날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되어서 다윗처럼 귀하게 쓰임 받고 승리합시다.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은 그들이 천국에 합당한 인물이 되도록 하는 데 있었습니다. 특히 십자가를 지실 때가 다가올수록 예수님은 대중에게서 벗어나 제자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시며 그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부족함과 믿음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습니다.

사복음서 전체를 놓고 ‘제자’가 어떤 사람인가 생각해 본다면 ‘항상 실망시키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번도 예수님을 만족시켜 드리지 못한 사람들, 늘 미숙하고 부족하며 연약하고 세속적인 사람들이 열 두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실망하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인내하고 기다리며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넘어지면 일으켜 주셨고, 잘못하면 고쳐 주셨고, 실수하면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천국 가실 때까지, 사명을 완수하실 때까지,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힘 있고,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만이 쓰임 받을 수 있다면 우리 같은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부족한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해 주시고, 다듬어 주셔서 귀하게 사용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대화를 들어보면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제자들이 아직도 영적으로 미숙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자들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누가 크냐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도대체 누가 서열이 높은가? 이것이 제자들의 관심이었습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막9:33-34

이것은 사실 제자들뿐만 아니라 모든 죄인들의 공통된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남자들에게는 누가 월급을 많이 받나, 누가 더 많은 영향력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아주 멋지고 겸손하게 말을 하지만, 그 내면을 파고들어 가면 결국은 자기 자리 문제, 위치 문제에 연연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일반적으로 여자들의 관심은 누가 더 예쁜가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못난 사람이라도 자기 외모에 지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누가 더 큰집에서 사는가, 누가 더 멋진 옷을 입었는가, 누가 더 좋은 차를 타는 가로 서로 비교하고 평가합니다.

이러한 관심들은 세속의 관심입니다. 그리고 죄인의 관심입니다. 바로 이것이 인류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불만족스럽다, 불행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 내 위치에 대한 갈등으로 인한 것이지 영생을 소유하지 못한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런 관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에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크냐의 문제로 쟁론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병으로 죽어 가는 아버지의 병상에서 자식들이, 어떻게 하면 아버지를 살릴 수 있을까를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죽으면 누가 더 많이 상속받는가를 두고 쟁론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상황이 임박했는데도 제자들은 이런 쟁론을 벌인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서로 짐은 나누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부부간에서 서로 짐을 나누면 기쁘고 즐겁게 인생을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남편이 어려움을 당하고 수고할 때에는 부인이 마음 깊이 동정하고 함께 짐을 져야 합니다. 물론 아내가 짐을 지고 있으면 남편도 아내와 함께 짐을 져야 합니다.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 함께 슬퍼해 주는 것이 너무 중요합니다.

세상에는 서열과 계급이 있습니다. 이것이 역사를 움직이는 중요한 하나의 원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보잘 것 없는 영혼이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마11:11

천국에는 작은 자가 없습니다. 서열이 낳은 자가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자녀일 뿐입니다. 이것이 천국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약속의 자녀요, 축복의 자녀일 뿐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비극은 천국 질서 대신 세상 질서를 좋아하는 데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장로석이 따로 있는데 득표 순서대로 앉는다고 합니다. 세상 질서를 교회에 그대로 가져오고 만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타락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천국 질서를 포기하고 세상 질서를 그대로 교회에 가져오는데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 안수집사, 권사는 계급이 아닙니다. 받은 은사요, 봉사하는 하나의 방법이요, 직책일 뿐입니다. 천국에는 계급이 없고, 버림받은 존재도 없고, 관심을 받지 못하는 존재도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높임을 받고 존귀함을 받는 영혼들인 것입니다.

제자들이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천국의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막9:35

천국은 세상과는 정반대입니다. 세상에서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자기를 높이고 내세울수록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지만, 천국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또 하늘나라는 자기를 낮추면 낮출수록 더 크게 쓰임 받습니다. 겸손해지는 것이 참 신앙의 시작입니다. 신앙이 점점 깊어지면 탐욕도, 교만도 점점 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우리는 항상 자신을 낮추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절대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높이거나 자기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나의 생명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고, 나의 지혜와 지식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내가 만든 것처럼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니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게 낮아져서 감사 찬양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질서는 무엇입니까? 계급과 서열이 아니라 겸손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교회의 질서는 무엇입니까? 교회의 참된 지도력은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목사나 장로나 집사라는 직분이 아니라 겸손에서 지도력이 나옵니다. 누가 이 교회를 진정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까? 겸손한 사람, 자기를 낮추는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막9:35

남 모르는 곳에서 예수님의 심정을 가지고 발을 닦아주고 섬기는 그 사람이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요 천국의 모습을 나타내는 자입니다.

겸손은 세월이 갈수록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 처음 믿을 때는 다 할 것 같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죽어도 살아나고 또 죽어도 살아나는 게 자기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아가 왕창 깨어졌다고 합니다만, 저는 절대로 그 말 안 믿습니다. 왕창 깨어진 사람을 본 일이 없어요. 왕창 깨어졌다는 교만을 또 하나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완전하게 깨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인간은 늘 깨어서 기도하고 하나님께 붙잡히지 않으면 교만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할 수 없이 고난의 방법으로 인간을 다스리는 것 같습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으면 인간은 겸손해지지 않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시119:71-82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니이다"

시119:67

대인 관계가 불만족스럽다는 것은 내가 강조되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불만이 없습니다. 그러나 뭔가 불평스럽고, 갈등이 있고, 괴롭다는 것은 내가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겸손해질 수 있을까요? 방법은 하나입니다.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는 것입니다. 겸손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제나 자기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의식되는 곳에는 언제나 교만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죄란 자기의식입니다.

"전에는 우리도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서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엡2:3

내 뜻, 내 주장, 내 방법을 자꾸 주장하고 싶을 때 이것을 죽여 달라고 기도해 봅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셨지만 인간이 되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는데 내가 왜 그것을 못합니까? 남편의 발도, 아내의 발도, 내가 미워하는 사람의 발도 씻어줄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나를 낮추게 하시고 예수님을 바라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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